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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인터뷰 포스트메모리 시대 역사학자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황병주 편사연구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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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코순이〉(이석재, 2022)는 이제까지 나온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말 연합군 포로심문보고서 49호에 ‘KOKO SUNYI’로 기록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의 삶을 추적하면서, 영화는 무엇보다 매우 트랜스내셔널한 시야를 보여준다.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로드무비이자 탐정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코코순이〉의 ‘주연배우’이다. 그는 미얀마 미치나 지역 포로심문보고서에 등장한 20인의 조선인 ‘위안부’ 명단, 그 가운데 ‘코코순이’라는 이름의 ‘코코’가 한국 성씨 ‘박(朴)’의 일본식 발음인 ‘보쿠’일 수 있다는 중요한 직관을 제공하고, 경남 함양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호적등본을 뒤지고,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을 심문한 일본계 미군 생존자를 만나려고 미국까지 감독과 동행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전문가적 자문과 해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포스트메모리 시대에, 역사학자로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학술기획팀장이 황병주 편사연구관을 만나 보았다. 이헌미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당시 일본군‘위안부’ 및 전쟁범죄 자료 수집 사업의 일원이었습니다. 김득중 선생의 아이디어로 2017년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분이 관심을 두었던 것이 버마(미얀마)에서 포로로 잡힌, 코코순이가 포함된 20명의 조선인 ‘위안부’였어요. 사안이 워낙 독특해서 이를 주제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KBS PD와 접촉했습니다. 그 결과 〈시사기획 창〉에서 8.15 특집으로 2부작이 제작되었죠. 1부를 이석재 기자가, 2부를 류호성 기자가 맡았어요. 이석재 기자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로까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펀딩을 받게 되면서 제작 여건이 마련되어 영화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헌미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안부-전쟁범죄 조사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지금은 종결된 사업인가요? 황병주 종결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시대 불문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문제죠. 사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기초 토대를 튼튼히 하고 확대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대 일본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군사력이고, 일본 내외부적으로 군사주의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일본 군부의 행위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전쟁범죄까지 포함해 자료를 축적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새로 재편되지 않았습니까.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며 보편주의를 지향하고 그 실물적 틀거리로 UN을 만들었죠. UN의 이념적 근거로서 보편적 휴머니즘, 자유주의, 민주주의, 인권 등의 체제를 만들어냈고 그 체제하에서 한국이라는 근대 국민국가가 세워졌어요. 그러면서 미국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재판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어요. 전후 세계 질서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식민지로 전쟁에 동원되면서 가해와 피해가 뒤얽힌 경험을 하게 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자료를 축적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범재판을 우리의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 설명,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학적 판단 또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국내 최고의 자료집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한국에서 ‘위안부’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일종의 장르화가 되면서 민족적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차별성이 눈에 띄었어요. 기존의 다른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는 국내 피해생존자의 삶이나 일본, 미국에서의 활동가와 피해자 간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 많은데, 〈코코순이〉는 경남 함양, 제주, 미국, 호주 브리즈번, 파키스탄, 몽골 등 전혀 다른 시야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코코순이’라는 이름에서 ‘박순이’를 추정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트랜스내셔널했고요. 영화에 참여하면서 이 부분을 의식하셨는지요? 황병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전쟁을 통해 사건들이 어떻게 뒤섞이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코코순이는 미얀마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는 것까지 대략의 행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귀국까지의 과정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 인도의 포로수용소였죠. 저희가 취재 막판에 함양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하나 확인했는데, KBS 방송 당시에는 시간이 없어 추적 조사를 못했어요. 이석재 기자가 영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부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적부상에는 박순이 씨가 10대 후반에 중국을 갔다가 2004년도에 귀국한 것으로 기록돼있어요. 고향은 전라도 남원이고, 함양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다 여차저차해서 ‘위안부’로 가게 된 것이라고 추정돼요. 박순이 씨 조카분들을 통해 박순이 씨가 중국 내몽고 지역의 고려촌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얀마,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갔던 거예요. ‘위안부’ 20명 중 상당수가 집단 이주를 한 것 같은데, 아마 몇 분이 중국 경험이 있거나 했겠죠. 박순이 씨의 그러한 삶을 통해 트랜스내셔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헌미 〈코코순이〉의 시놉시스와 홍보물을 처음 보았을 때, 다소 선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인 버마 미치나 지역에서 생포된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모두 나온 포로 사진이 굉장히 주목성이 강하고 흥미를 돋우는 동시에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선생님은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황병주 충격적이었죠. ‘위안부’가 집단으로 찍힌 사진이 거의 없어요. 제가 본 것 중에는 영국에서 찍은 것이 하나 있네요. 지역은 태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어요. 여성 대여섯 명에 남성 2~30명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죠. 여성들은 옷을 양식으로 잘 차려입었고, 남성들은 체육대회였는지 스포티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위안부’였고 남자들은 B·C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조선인 포로 감시원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제외하고는 단체 사진이 정말 드물어요. 제가 처음 본 ‘위안부’ 사진은 증언집에 실려있던 것이었는데, 현재의 모습이 찍힌 것만 있었기에 과거 모습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에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갖고 있다가 직접 마주하니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미군 통역병이었던 니세이(Nisei. 일본계 미국 이민자 2세)들의 표정이랄까, 심지어 웃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찍혔고 무엇을 이야기해주는 것인지 호기심을 갖게 됐죠. 이헌미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다큐멘터리 속 역사학자의 관습적 이미지(양복을 입고 연구실이나 서재를 배경으로 한 자문)로 출연하신 분량도 있고, 함양에서 버마 미치나, 미국까지 동행하면서 위안소의 위치를 비정하거나, 가장 위험하고 험한 최전선에 조선인 ‘위안부’를 배치했다고 해석하는 등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시각 또한 보여주고 계신데요.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다큐 제작에 관여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저희는 사료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간혹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특히 김득중 선생이 원 로이 챈이라는 중국인 장교에 많은 관심을 두었는데요. 그는 관리자급인 엘리트 장교였고, 1차 심문관이었던 니세이들과는 차이를 보였어요. 니세이는 ‘위안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좋아야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정도고, 나쁜 경우 알렉스 요리치처럼 윤색과 주관적 판단이 가미된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반면에 원 로이 챈은 ‘위안부’에 상당히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를 추적해보면 미얀마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다른 무언가를, 예컨대 공식 기록이나 사진이 아닌 개인의 일기 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추가 조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거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늘 느꼈고 욕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득중 선생이 방송까지 제안했던 것이죠. 이헌미 많은 이들이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흡수하는 시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가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재현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그런 때인 만큼 역사가가 이런 종류의 다큐 영화에서 가지는 역할이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역사 연구자는 자료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 등 제한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이 영화는 심문보고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역사학자가 지배적인 서사를 더 줄 수도 있고 관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병주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는 이석재 감독의 것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해주고 참고 자료를 제공하며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이고요. 다만, 각자의 전문분야가 다른 만큼 공동작업을 통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가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개인에게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요즘의 역사부정론자들은 사료나 이미지를 생산, 유통시키는 권력이나 맥락에 대한 비판 없이 한 부분만을 절취하여 실증인 것처럼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위안부’의 사진을 앞에 내세우지만 프레임 밖의 이야기들에 접근해요. 그런 접근이 역사부정론자가 역사를 사용하는 방식과 대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병주 사료가 중립적·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문서도 어찌 됐든 사람이 쓴 것이에요. 포로심문보고서만 놓고 보더라도 국가의 제도와 이데올로기 등이 큰 틀에서 작동하죠. 군대는 명령 차원뿐만 아니라 주체 스스로가 구조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압력을 내재하고 있어요. 특히 니세이는 가족들이 대부분 수용소에 들어가 있고, 자신은 모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니세이들을 심리전이나 포로 심문에 활용했는데 자신들이 왜 그런 역할로 쓰였는지 알았겠죠. 새로운 조국인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본인을 확인시켜줘야 했던 거예요. 구조적 압력과 개인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가족사적인 배경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그런 보고서가 나온 것일 텐데, 그것들의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요리치 보고서는 다른 보고서와 비교해도 많이 튀어요. 원래 보고서라는 것이 간단하고 드라이하게 핵심을 적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요리치 보고서는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분석한 보고서이기에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군 보고서라고 보기에는 수식어도 많고 화려해요. 사실 너머에 화자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면과 심리 상태를 갖고 있었기에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을까 호기심이 들었죠. 컨텍스트를 대입해보니 그는 니세이였고, 하층민 출신 사병에서 소령까지 진급한 사람이었어요. 그만큼 군대의 구조적 압력을 잘 소화하는 인물이었겠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전시 성폭력을 피해자의 수치로 돌리는 문화 속에서는 피해의 규모나 피해자들의 신원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남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증인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역사부정론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위안부’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는 남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병주 추가적인 자료 발굴도 물론 중요하겠죠. 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거예요. 코코순이의 행적은 많은 걸 보여줍니다.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사는 상황이었고,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위안부’로 가게 되었죠. 큰집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못한 것이라고 봐요. 일제강점기 때는 그런 상황이 워낙 많았어요. 사회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거죠. 박순이 씨를 구성하고 있었던 다양한 압력들이 무엇이었는지 복잡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Credit 인터뷰어: 이헌미 인터뷰이: 황병주 정리: 퍼플레이 강푸름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장소: 국사편찬위원회(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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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논평 페미니즘 국제정치학: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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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요 내용은 황영주, 2021, “페미니즘 국제정치이론,” 박건영·신욱희 편, 『국제정치이론』(서울: 사회평론 아카데미)에 근거하고 있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사주의(militarism) 연구로 유명한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가 1983년, 『카키색이 너에게 어울릴까?(Does Khaki Become You?)』라는 기념비 같은 저작을 통해서 여성의 삶이 군사주의와 서로 양립될 수 없다는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 학문 영역에 비해서 국제정치학 분야에 있어서 젠더의 수용은 ‘많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각(遲刻)’은 국제정치학이 갖는 학문적 속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은 이론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을 국가와 국제정치체제에 두는 경우가 많다. 즉, 국제정치학의 주요 이슈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제정치체제 유지다. 또한 국제정치학은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확보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나 국제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정향이 있는 반면에, 군사력 확보 및 동맹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입장도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국제정치체제를 분석의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분석 방법으로서 젠더 수용이 늦어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국가와 국제정치체제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적 속성상 젠더 또는 여성(개인)의 수용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냉전체제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확보와 그것을 매개로 하는 권력(power) 행사에 학문적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젠더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로의 군사주의 비판은 시대를 앞선 혜안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실제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시작은 냉전 해체라는 국제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1990년대 초반의 후기구조주의 접근을 수용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국제정치학이 젠더를 분석의 도구로 수용하게 된 것은 국제정치학자들의 다양한 또는 대안적 방법론 모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해체에 따른 국제정치 현실의 변화는 국제정치학에서의 전통적 접근 방법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정치학에서는 비판이론,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이론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젠더 또는 페미니즘으로 국제정치학을 분석하는 방법도 나타났다. 1992년 안 티커너(J. Ann Tickner)의 『여성과 국제정치 : 국제안보 달성을 위한 페미니즘 관점(Gender in International Relations: Feminist Perspectives on Achieving International Security)』(한국어판: 안 티커너 지음, 황영주 외 옮김,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1)은 국제정치에서 젠더를 수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저작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티커너는 국제정치학의 전통적 주제인 안보를 각각 국가안보, 환경안보, 경제안보로 세분한 다음, 안보와 관련된 전통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어 이 전통적 관점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체한 이후, 젠더를 수용하여 ‘달리 보이는’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크게 두 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세대는 국제정치학이 갖는 전통적 방법론, 인식론, 존재론에 도전하는 비판적 입장을 갖는 접근이다. 이들의 노력은 90년대 초반의 후기구조주의의 학문적 세례와 함께 진행되었다. 티커너 이외에도 국제관계를 ‘관계의 국제화’로 재정의를 요구하는 크리스틴 실베스터(Christine Sylvester)의 『페미니즘 국제관계이론: 끝나지 않은 여정 (Feminist International Relations: An Unfinished Journey)』(2001)이 제1세대의 대표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세대는 1세대의 이론적 재구성에 힘입어 그것을 국제정치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응용해 나가는 경향이다. 제1세대가 국제정치의 방법론, 인식론, 존재론에 대항하는 방법론적 다양성을 모색했다고 한다면, 2세대는 이미 확보된 방법론적 다양성을 실제 국제정치에 적용하는 노력에 집중한 세대이다. 그 대표적인 접근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저작은 한국인 2세인 캐서린 문(Katherine H. S. Moon)의 『동맹 속의 섹스: 한미관계에서 군사 매매춘 (Sex Among Allies Military Prostitution in U.S.-Korea Relations)』(1997년)(한국어판: 캐서린 H.S.문 지음, 이정주 옮김, 삼인, 2002)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대 구분 이외에도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일반 국제정치학 이론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국제정치(학)에서 여성의 존재 확인(경험), 남성의 경험을 추상화하는 국제정치(학) 비판(비판), 여성의 경험이 투영된 바람직한 국제정치(학) 만들기(규범) 등으로 그 특징을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여성의 경험을 국제정치학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국제정치(학)에서 여성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행위자로서의 여성에 관한 관심일 뿐만 아니라, 극히 젠더화된 국제정치에서 여성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기존의 국제정치(학)가 갖는 기본적 가설 들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여성의 경험과 활동을 확인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making the invisible visible)’노력인 것이다. 이는 인로의 공헌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다양한 저작물에서 신흥공업국의 경제발전에서 어린 여공들의 헌신, 외교 관계에서 외교관 부인의 가사노동과 공헌, 매매춘 여성들의 외화벌이와 국가 경제와의 상관성 등 국제정치에서 여성의 존재에 주목했다. 두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기존의 국제정치학에 대한 매우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주로 국제정치학이 남성의 경험만을 추상화한다는 비판은 제1세대에서 제기되었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비판적 특징은 국제정치와 그 이론이 남성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성을 포함하는 인간의 경험과 이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가의 권력 추구행위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볼 때는 ‘지배적인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의 이념형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설 중 하나인 ‘국내-질서/국외-무질서’는 젠더의 사회적 구성과 극히 유사한 것이 된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국내-질서-남성성/국외-무질서-여성성이라는 이원적 대립구조로 병치하여, 국제정치이론 자체가 젠더화된 속성을 갖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세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대개 규범적 입장을 갖는다. 부분적이며 왜곡된 남성의 경험으로 형성된 국제정치(학)는 여성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서 개선시켜 나가야만 한다. 권력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지배적 남성성을 가진 남성과) 다른 경험은 현재의 무질서한 국제정치 현실을 바로 잡는 데 적절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제정치를 국가 권력 추구 및 안보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 국제정치에서 인간의 보편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으로 그 관심을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티커너의 저서에서, 안보(security)는 국가의 안전(safety of state)이라는 제한된 정의(definition)에서 벗어나 젠더 관계를 포함하는 모든 불평등한 사회관계의 제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이렇듯,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의 노력은 그 이론에서 다양한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도약 중 하나는 군사주의 비판과 페미니즘 평화이론이라고 할 것이다. 인로가 보여준 관심과 같이, 군사주의와 여성의 삶과의 길항관계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학)의 궁극적 가치인 국가 안보 쟁취를 위한 군사력 의존은 군사주의의 재생산과 함께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만다. “국가 안보와 결합한 군사주의는 외부 적과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 보호를 핑계 삼아, 남성 우위의 기존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유지·강화하는데 핵심적 기제로 작동한다.”[1] 제2세대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소개한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는 1970년대 미군 군사기지촌 인근의 ‘양공주’로 명명되는 여성들의 육체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 안보를 위하여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를 담고 있다. 미군 철수에 대응하기 위하여 매매춘 여성에게 ‘깨끗한 성(clean sex)’을 강제하고 그를 통해서 국가 안보를 구현하고자 하는 1970년대 국가의 군사주의적 폭력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적 국가의 속성을 확인하게 되지만,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에서 보면 여성의 몸으로 체현(體現)되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국제관계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수용은 어떨까? 한국의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국제정치학 분야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되고 있는 강한 가부장제를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더군다나 국제정치학 분야는 국가 권력 및 안보를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관여를 극도로 저어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대치 상황은 국제정치이론에서 현실주의 관점이 우선시되어 페미니즘적 시도를 ‘순진한’ 것으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제정치학을 다루는 대표적인 학자들이 특정 국가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페미니즘적 접근을 대단히 낯설어했을 가능성도 높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그동안의 국제정치에서 다루지 못한 영역에 혜안을 제공할 수 있다. 전통 국제정치이론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양국의 외교 갈등의 원인으로만 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시각을 채용한다면 ‘위안부’와 관련되는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데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를 국가의 외교 문제로 그 관심을 두는 대신에, 각 국가 내부의 젠더 구조와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양국 간의 갈등 구조를 완화 또는 격화시키는지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여전히 낯선 학문적 여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면서 국제정치학의 젠더화된 측면을 비판하고, 무엇보다도 폭력을 종식하고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에 합당하는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각주 ^ 황영주(2021), 앞의 책,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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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논평 전쟁은 분명,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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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관통당한 몸: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한겨레출판, 2022) 서평 솔직히 힘이 들었다. 고통을 직시하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라, 나는 이 책을 하루에 한 챕터 이상 읽지 못하였다. 도저히 사실이라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잔인함과 너무나도 압도적인 숫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말 그대로 ‘글로벌’한 르포였기 때문이었다. 겨우 한 챕터를 읽어낸 뒤 용기를 내어 다시 책장을 넘기면, 거대한 참혹이 장소를 옮겨 또다시 재생되었다(이 지면에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자세한 내용 언급은 생략할까 한다). ‘전시(戰時) 성폭력’이라는 이다지도 거대한 부정의(不正義)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프리모 레비의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인가?”[1] 나는 조선 중기 광해군대에 발간된 행실도인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다루어 석사 학위논문을 완성했다. 본래 행실도는 효, 충, 열이라는 유가의 세 가지 중대한 가치를 지키거나 충실히 이행한 이들을 모범으로 기록한 책이다. 일종의 미담 사례집인 셈인데, 조선시대 내내 수차례 발간된 다른 행실도들과 달리,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매우 특이하다. 임진왜란 이후 제작된 행실도이기에 대부분이 국내의 사례일 뿐 아니라, 인물 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확고한 가부장제 속에서 그 형체조차 찾기 어려웠던 여성들이 대규모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1,587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행실도에는 821명, 그러니까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2]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던 걸까?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녀도’에 수록된 다음의 사례가 그 이유를 잘 말해준다. 처녀 류씨(柳氏)는 서울 사람으로 …(중략)… 나이 열넷일 때 임진왜란을 만나 외조모 김씨를 좆아 강에 빠졌다. [지나가던] 뱃사람이 손으로 건지고자 하니 류씨가 하늘을 우러러 이르되 “구차히 삶을 구함이 몸을 지켜 죽음만 못하니라”하고 드디어 빠져 죽었다. 소경대왕[선조] 대에 정문(旌門)하셨다.[3] 그러니까 저 이상한 이야기에서(목숨이 위태로운 판에 외간 남자의 손을 잡지 않겠다는 결의를 외치고 죽는 소녀의 이야기면 충분히 이상하고도 남는다) 외할머니와 열네 살 소녀가 강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자살 시도였던 것이다. 나는 저 이야기가 조선 남성 권력자들의 상상일 것이라고 의심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행실도를 출간했던 남성 권력자들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시 성폭력이 만연했고 그 때문에 여성들이 차라리 자살을 택할 만큼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 그림 속에 슬쩍 보이는 무장한 ‘왜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목숨을 바쳐 ‘정절’을 지킨 여성을 칭송함으로써 생존자들에게 낙인을 찍었고, ‘여성의 실절’에 대한 남성의 공포를 무마하려 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소개할 책, 『관통당한 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는 태곳적부터 어디에나 있었던 현상이란 말인가?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강간당한 여성의 수는 전시 강간을 ‘전쟁의 흔한 부산물’로 여길 만한 수치를 훨씬 넘어섰다. 강간의 목적은 적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기를 꺾는 것만이 아니었다. 야디지족과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 로힝야족에게서 내가 목격한 것처럼 파키스탄군에게는 강간도 체계적인 전쟁 무기였다. “개별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닙니다. 고의적인 정책이고 이념에 근거한 정책입니다.”[4] 즉, 전시 성폭력은 명령 체계 안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전쟁 무기’라는 것이다. 심지어 하버드대학교 공공정책학 교수 다라 케이 코언(Dara Kay Cohen)은 ‘전투원 사회화(combatant socialization)’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장 집단들이 전시 성폭력을 그들 내부 집단의 ‘사회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342쪽). 그러므로 집속탄이나 생화학무기, 핵무기가 국제적으로 금지되는 것처럼, 성폭력이라는 전쟁 무기 또한 공식적이자 국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르포답게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실증’은 때론 위험하다.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반복되는 자극은 감각, 심지어 도덕적인 감각마저 무디게 만든다. 성폭력과 학살, 고문이 생생하게 재생될수록 그 참극은 탈맥락화한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끔찍하기 그지없는 사례들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독자의 도덕적 미성숙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로힝야족이 겪은 고통에 아웅산 수치가 눈을 감는 이유는 정치 때문이지만, 이 책은 각 사례의 맥락을 깊이 있게 살피지는 못한다. 전시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으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군대의 규율이 잘 잡힌 곳에서는 성폭력이 불가피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456-457쪽)는 순진한 서술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강점은 비극을 생생히 재생하는 점에 있지 않다. 책을 펴자마자 쏟아지는 비참의 평원에서 독자는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지만, 조금 정신을 차리면 이 책의 서술 대부분이 ‘증언’이라는 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저자가 취재한 것은 문서 더미나 증거 사진이 아니었다.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존자 혹은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들은 악몽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통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난과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147쪽) 새로운 정의를 위하여 고통의 순간을 증언하는 이들의 기억, 눈빛, 말, 그리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서서히 자리 잡는 공감과 연대.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괴로움 따위를 감히 말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에도 여전히 전시 성폭력은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전쟁 범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 전쟁은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1980년대 학교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울 때 교과서에는 집단 강간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남자들의 전쟁처럼 보였다.(240쪽) 이브 엔슬러[5]는 나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성폭력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남자들은 다 어디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남성들의 문제입니다.”(343쪽) “보편적으로 비난받는 범죄인 강간이 어떻게 전시에는 문제시되지 않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241쪽)라는 저자의 질문은 정확하지 않다. 전시이든 평시이든, 성폭력은 애초에 보편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남성들의 발언처럼, 그리고 성폭력 희생자가 오히려 저주를 받은 메두사의 사례처럼, 많은 남성이 성폭력을 여전히 “정상인 것처럼”(382쪽) 여긴다. 이 책은 분명 전시 성폭력을 다루고 있으나, 저자는 긴 후기에서 전쟁터 외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을 덮는 독자는 ‘전시’를 떼고 현실을 바라봐야만 한다. 이 책 속의 비극이 비단 전쟁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나 역시 책을 덮고 현실을 바라본다. 명백히 여성만을 대상으로 삼은 범죄를 두고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성폭력 과정에서 여성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그 여성이 피해를 ‘당할 만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닌다.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남성에게 ‘심신미약’이라는 방어막이 마련된다. “이건 남성들의 문제”임에도, 그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피해자보다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는’ 기분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발언과 주장이 가볍디 가볍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무거운 책인 만큼 매우 세심하게 번역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제목의 번역은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Our Bodies, Their Battlefield’이다. 물론 ‘관통당한 몸’이라는 제목도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번역으로, 전시 성폭력을 다루는 책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근거 없는 의심(?)을 하게 된다. ‘젠더 이슈’라는 말조차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2022년 한국 사회에서,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분이 어떤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이 책의 목소리를 전시의 상황일 뿐이라고 제한적으로 읽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콩고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오랜 시간 치료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니스 무퀘게 박사는 “한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정할 때 그건 자신이 회복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내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게 놔둘 수 없다고 말하는 것”(492쪽)이라고 했다. 그러니 앞서 소개했던 ‘류씨’의 상상된 목소리가 아니라, 이 책 속 실제 여성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소중히 담아 듣고 그들의 귀환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쉽게, 그리고 아프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당연한 말에도 무엇인가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더욱. 여자들이 돌아온다. 멀리, 영원으로부터, 그리고 ‘바깥’으로부터. 마녀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황무지로부터 여성은 돌아온다.[6] 각주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할 것. 정일영, 「『東國新續三綱行實圖』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고찰: 시대적 배경과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국어사연구』 17, 2013. ^ 『동국신속삼강행실도』(영인본), 559쪽, 《柳氏投江》. ^ 크리스티나 램, 『관통당한 몸』, 강경이 옮김, 한겨레출판, 2022, 121쪽. 이후부터 이 책을 인용할 때에는 본문에 쪽 수만 표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 편집자 주: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주요 저서 『버자이너 모놀로그』, 『아버지의 사과 편지』 등 ^ 앨런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 박혜영 옮김, 동문선, 200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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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인터뷰 [최은영-양경언 대담] 여성의 글쓰기, 위로와 치유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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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 2021)은 ‘증조모-할머니-어머니-나’에 이르는 여성 4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를 배경으로 장대한 서사를 엮어낸 이 작품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시간을 불러내 기억하고 공유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물들은 다치고 깨지기도 하지만, 끝내 일어나 서로의 손을 잡고, 일상을 살고, 삶을 일궈나간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어 여러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읽기를 넘어 공감, 위로,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자료센터가 지난 9월 <문학은 기억한다: 여성의 시간과 (불)가능한 치유>를 주제로 개최한 『밝은 밤』 북토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최은영 작가와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밝은 밤』을 중심으로 나눈 둘의 깊은 사유를 전한다. 양경언 『밝은 밤』은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성씨가 다르지만 누구보다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최은영 처음부터 여성 4대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첫 시작은 증조모 ‘삼천’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말하는 형식으로 썼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삼천과 연결돼있는 사람일 테고, 그렇다면 가족일 것이고, 딸이겠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손녀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여성 4대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양경언 『밝은 밤』을 읽은 독자들은 대체로 이런 감상을 먼저 꺼내는 것 같아요. 새비와 삼천, 영옥과 희자와 명숙, 미선과 명희, 정연과 지연, 그리고 지우와 같은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같다고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언니, 여자친구들이 떠오른다는 얘기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쓸 때 작가님에게 특히 영감을 주었던 여성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리고 작가님에게 영감을 준 인물을 소설로 형상화할 때 고민했던 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저는 소설을 쓸 때 저의 캐릭터를 쪼개 넣어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모든 인물 안에 제가 들어가 있어요. 이번 작품에는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성격도 많이 반영됐고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을 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지연의 엄마인 미선은 저희 엄마와 정말 다른 캐릭터의 인물이지만 엄마와 갈등을 겪었을 때 엄마가 저에게 바랐던 것들, 엄마의 가치관 등이 미선의 캐릭터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고, 엄마에게 제 고민을 이야기하니 무엇이든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양경언 결국 나의 삶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힘든 지점이 있겠고요. 나의 삶을 떼어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다 보니 생채기가 날 수도 있고, 그것을 보기 싫어도 봐야만 하잖아요. 인물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모습들이 반영되는 것이 괴롭진 않았나요? 최은영 저는 오히려 글을 쓸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머릿속의 어지러운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화하면 덜 고통스러워지더라고요. 특히 소설을 쓰면서 제 일부를 떼어 인물을 만들 때는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아요. 양경언 『밝은 밤』에는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가령 증조모가 어머니와 헤어지고 증조부와 개성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으로 일본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힘없는 집 여자애들”이 “끌려”갔던 일이 등장한다거나, 피폭된 이들의 사연이 히로시마에서 돌아온 새비 아저씨를 돌보던 새비 아주머니를 통해 전해지기도 하고요. 피난길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한국전쟁 이후 남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부장제를 이어가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려지는데요. 이런 장면들을 그릴 때 작가님이 특별히 유념했던 바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들을 토대로 공부하셨는지, 그 과정 중에 이전에는 몰랐다가 새삼 알게 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작가로서 이때 들었던 고민과 생각들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최은영 제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써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어요. 가짜를 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죠. 어렸을 때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요. 그 작품들에서 남성 인물은 철학적이고 생각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 인물은 항상 현실에 희생당하는 대상으로 그려졌어요. 우리 역사가 여성의 몸을 통해 은유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이었죠. 굉장히 거북하고 기분이 나빴어요. 그래서 한국전쟁을 그릴 때 그런 식으로는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그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작품이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사람을 폭력적으로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전쟁은 제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할머니에게 피난 당시의 상황을 물어봤어요. 아군이고 적군이고 구분 없이 여자는 강간하려 했고, 할머니 자신도 두려웠다고 말씀해주셨죠.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이 쓰신 작품들, 전쟁 이후 민간인들의 삶에 관한 연구 자료들, 피폭 관련 도서들도 읽어봤고요. 사실이 아닌 것을 임의로 추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하며 썼습니다. 양경언 소설은 결국 사실적인 기율을 존중하며 형성되는 허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관념적으로 다루고자 하지 않았다’, ‘가짜로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위안부’, ‘피폭’, ‘피난길 풍경’ 등 고통을 서사로 재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재현의 방법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셨을 텐데, 그 과정에서 작가님이 세운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최은영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인물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들을 도구적으로 전시하듯 써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어요. 인물의 고통이나 슬픔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며 글을 썼습니다. 인물은 작가의 마리오네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물의 마음에 최대한 집중해서 그 마음을 함께 느끼고자 노력했습니다. 양경언 작가의 덕목은 삶에 대한 존중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한편, 이런 얘기도 이어서 해보면 어떨까요? 소설을 통해 고통을 직면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요. 증조모가 자신의 출신 조건 때문에 마을 공동체에서 차별당하고, 새비 아저씨가 통증을 겪으며 인간이 벌이는 전쟁의 끔찍함을 전할 때, 이러한 이야기가 고통스럽더라도 독자들이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최은영 읽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공감해요. 그런데 인간 자체가 가만히 있으면, 그러니까 노력하거나 성찰하지 않으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인간은 쉽게 잊어버리는 속성을 갖고 있잖아요. 인류 공동체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모르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반복하고, 그로 인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저항하는 시민들이 절대다수라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픽션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어요.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생각도 하지만 인물 안에서 실제로 그들의 고통을 감각해요. 이야기가 다 사라지고 나서도, 감정은 남아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순간이나마 내 것으로 느낀 경험이 개개인의 인간을 공감하는 주체로 깨워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순간적인 자극이나 즐거움만 좇는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무뎌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 능력은 말 그대로 능력이기에, 그런 능력을 잃을 때 자기 자신에게도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읽을 때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러운 독서의 경험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경언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 반응 자체가 능동적인 독자가 되는 출발점일 수도 있겠고요. 최은영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걸 죄악시하고 낭비라고 교육받으며 살아왔잖아요. 그것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인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읽으면 감정적으로 동요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느끼지 않으려고 억압했던 감정이 올라오며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소설을 읽는 것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양경언 증조모인 삼천은 천성이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무리 지어 날아가는 하늘의 새들을 쳐다보느라 넋을 놓”을 줄 아는 사람(35쪽)으로 그려집니다. 할머니 영옥은 “할머니도 케이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없어 못 먹죠”라고 장난스레 답하는(28쪽) 장면 등에서 사랑스럽게 그려지고요. 증조모와 할머니를 그릴 때 이런 성품의 사람들로 그리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최은영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쓴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쓸 때 제 삶의 주도권을 갖고 싶었거든요. 저는 그때 제게 고통을 준 인간들에 대한 분노로 하루하루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정작 그들은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데, 왜 잘못하지도 않은 내가 고통받아야 하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삶을 온전히 살지 못했어요. 그로부터 1년 정도 흐르니 그들을 탓했던 시간 동안 제 삶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줘버리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에게 미안해지더라고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저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아가고 싶었어요. 그런 지향 안에서 저를 돌아보는 과정이 있었고요. 큰 고통을 겪고도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그런 분들은 유머감각이 있어요. 실제로 저희 할머니가 게임도 좋아하시고 농담도 좋아하세요. 험한 일들을 겪으셨지만 정말 즐겁게 살고 계셔서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소설 쓸 때 녹아든 것 같아요. 양경언 새비와 삼천이 나누는 감정적 교류나 편지를 보면, 이들은 웬만해선 시대를 탓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아요. 이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힘을 북돋고, 그 힘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삼천과 새비는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강한 사람들이에요.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나는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들에도 나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는데, 그건 제가 이야기한 것과도 연결돼요. 자기 삶에서 일어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말은 ‘다 내 잘못이야’라는 식으로 자기를 내모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과정에서 나는 주체였어, 어떤 일이 있든지 나는 내 삶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라는 결의가 담긴 강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양경언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말 자체가 ‘응답하다(respond)’와도 연결되는데, 자기가 겪은 삶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단절’하고 보자는 얘기들도 나오는데,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관계를 단절적으로만 다루지 않는 것 같아요. 지연과 미선, 미선과 영옥, 이들 모녀 관계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방향으로 소설이 나아가는데요. 상처를 주고받은 관계를 그릴 때 작가님은 인물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모든 관계에는 인연에 따라 기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저희 할머니를 보면 오래 가는 관계도 드물지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무것도 못 드셨을 때 옆집에 사시던 분이 음식을 만들어다 주시면서 먹고 살아나라고 해주신 적이 있었대요. 그런 돌봄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할머니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고, 80대까지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그 분을 만나러 다니셨어요. 삼천에게는 새비가 그런 존재였을 것 같아요. 양경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일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혹시 이 작품을 쓰면서 포기할까 싶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집필 중에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어떤 장면을 그릴 때였나요. 그때 작가님이 갖고 있었던 ‘질문’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마련하셨는지요. 최은영 2화가 끝난 뒤 인물들이 대구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그 후의 그림이 구체적으로 안 그려져서 정말 막막했어요. 결국 명숙 할머니가 어느 정도 알아서 해주셨지만, 전쟁이 끝난 뒤 희령으로 가게 되면서 또 막혔어요. 그래서 3화는 초고를 버리고 완전히 다시 썼어요. 최대한 그 세계 안에 있으면서 인물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에 3화를 쓸 때는 인물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거의 다 살려뒀었는데요. 친구가 보더니 ‘언제까지 이들을 다 살려둘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3화를 다시 쓰면서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어요. 새비 아주머니가 가실 때는 정말 이별하는 느낌이 들어 많이 울었어요. 그게 소설 쓰기인가 봐요. 3화를 쓰면서 ‘내가 과연 끝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인물들이 알아서 해주더라고요. 고비를 넘겼더니 4화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됐어요. 양경언 『밝은 밤』을 읽다 보면, 공적인 역사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고 떠돌았던 여성의 시간을 ‘문학’으로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에 이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것은 태양과의 연결 속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달이 어둠 한가운데서 길을 내는 듯한 ‘밝은 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요. 작가님 역시 문학작품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접하고 치유에 이른 경험을 갖고 계신지요. 최은영 치유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책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했어요. 최근에 샬롯 브론테가 쓴 『빌레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 학교 교사를 하며 혼자 사는 여성의 이야기예요.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이 들었고 인물에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면서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작가는 몇백 년 전에 죽었고, 책 속의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도 관계가 없지만 위로를 받은 거예요.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어요. 양경언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이 독자를 읽어주는 것이란 말은 마지막 질문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은영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살아볼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고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세상과 단절되고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소외감을 느끼고, 그런 소외감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발생하곤 해요. 저는 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와 끊어지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토록 다른데도 본질적인 것은 닮아있구나’ ‘우리가 겪는 고통은 비슷하구나’라는 점에서 인간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곤 해요. 양경언 『밝은 밤』을 통해 작품과 독자들이 공동체의 기억을 새로이 형성해나가는 과정과도 연결되는 말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여쭈면서 오늘의 대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은영 내년 여름에 세 번째 단편집을 낼 것 같아요. 단편집은 5년 만이에요. 올해 겨울에 마지막 한 편을 쓸 예정인데, 그간 써온 단편들을 잘 묶어서 내고 싶습니다. Credit 인터뷰어: 양경언 인터뷰이: 최은영 정리: 퍼플레이 강푸름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장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42-22 카페스페이스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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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논평 증언, 공동의 목소리 - AI 인터랙티브 증언콘텐츠 전시 〈증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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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과의 우연한 조우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중앙대학교 HK+접경인문학연구단이 주관한 AI 인터랙티브 증언콘텐츠 전시 〈증언을 만나다〉가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7일까지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렸다. 인터랙티브 증언콘텐츠가 중심이긴 하지만, 이번 전시는 기술적 상연을 넘어 증언을 한다는 것, 그리고 증언 이후 증언을 마주하는 장에 관한 다양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특히 “증언을 만나다”는 국문명보다 “Encountering Testimonies”라는 영문명이 전시의 성격을 보다 잘 보여주는데, ‘증언들’과의 예상치 못한 마주침, 하나가 아닌 복수의 증언들과의 마주침의 계기들을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증언은 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닌 마주치는 것이다. 이 마주침이 가능한 이유는 증언이 이미 행해졌고 그로 인해 그 자리에 던져졌기 때문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시 서문은 증언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증언은 이들의 기억뿐 아니라, 현재 삶의 모습, 방향, 의지를 드러내는 ‘말’ 모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발화되면서 증언자를 떠나, 그 자체의 생명을 지니며 퍼져나갔다.” 여기에서 행해진 증언은 더 이상 피해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닌 피해자를 떠난 말들이다. 도미야마 이치로[1]가 지적했듯이 ‘증언’이 대신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모순적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위의 소유격과 행해진 말의 소유격의 비일치에서 증언을 둘러싼 담론장의 곤경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증언의 발화 행위가 필연적으로 청자를 소환한다는 점에서 증언은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닌 집단의 발화 행위가 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나치 친위대(SS) 군인들의 ‘청자 없음’에 대한 경고가 생존자들에게 지속적 잔상으로 남아 있음을 지적하며 증언자와 청자의 문제를 연결시킨다. 시몬 비젠탈은 SS 군인들이 냉소적으로 포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면서 즐거워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중략) 설령 몇 가지 증거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너희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너희가 얘기하는 사실들이 믿기에는 너무도 끔찍하다고 할 거야. 연합군의 과장된 선전이라고 할 거고 모든 것을 부인하는 우리를 믿겠지. 너희가 아니라. 라거(강제수용소)의 역사, 그것을 쓰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될 거야.” 희한하게도 이와 똑같은 생각(“우리가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이 한밤의 꿈의 형태로 포로들의 절망의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2] 발화의 유효성은 청자에게 도달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염려를 동반한다. 증언은 늘 청자를 염두에 둔 말하기라는 점에서 공동의 발화를 요청한다. 또한 소영현의 지적처럼 증언이 이루어지는 구술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증언이 “‘말하는’/‘듣는’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합적 목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3] 그렇다면 이 집합적, 공동의 목소리는 누구에 의해 누구에게 어떻게 도달 가능한 목소리인가? 이어 말하기 이번 전시는 증언집과 같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증언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는 전시는 아니다. 그것보다 이미 행해진 증언이 다른 시기와 형식 속에 놓였을 때의 맥락과 수용에 대해 고민해보는 전시다. 전시는 크게 네 개의 파트로 이루어졌다. 인트로 영상과 정정엽 작가의 회화 및 사진 작업, AI 인터렉티브 콘텐츠, 그리고 최경준 감독의 미디어아트 작업이다. 관람순서를 바꿔볼 수도 있겠지만, 관람객이 많지 않다면 일직선으로 나열된 각각의 공간을 따라 이동하는 동선이 가장 자연스럽다. 인트로 영상은 피해생존자 고(故) 김학순의 증언을 시작으로, 이후 이어진 증언의 과정과 증언하기의 고통, 그럼에도 증언을 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피해생존자들은 증언하기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증언을 계속했고, 이를 통해 “지지자들을 만났”으며 “자신도 조금씩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피해자, 운동가, 증언자”로 등장하고 “영원한 증언자로 남았다.”[4] 여기에서 증언은 피해생존자를 규정하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이런 증언의 절대성에 대해 프리모 레비는 ‘운 좋게’ 생존한 이들은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5] 그리고 증언은 행해진 말뿐만 아니라 신체에 각인된 폭력의 흔적(정정엽, <벚꽃보다 나팔꽃이 더 예쁘다>)이나 삐뚤빼뚤 쓰여진 글씨(최경준의 미디어아트 작업)와 같이 비언어적 형태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음성화되지 않고, 가시화되지 않은 경험도 증언이 될 수 있을까?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과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는 이런 발화되지 못한 증언과 발화되었으나 가시화되지 못한 증언들에 주목한다. ‘찾은 시(found poetry)’라는 이름을 붙인 에밀리 정민 윤의 작업은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시의 형태로 재구성하면서, 시의 여백과 증언 사이의 함축과 침묵, 공백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보드랍게> 역시 피해생존자 고(故) 김순악의 생전 인터뷰 영상에 기반한 일종의 ‘찾은 장면(found footage)’ 영화인데, 여기에선 왜곡의 우려로 인해 발화되었으나 삭제된 김순악의 귀환 후 삶이 조명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found’ 작업과는 달리 두 작품은 자신들이 발견한 작업물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돌출하기보다 다른 맥락들 속에 ‘원본’을 다시 꺼내듦으로써 일종의 이어말하기와 따라 쓰기로서 ‘증언’의 재독해를 요청한다. 이는 이번 전시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증언’을 따라 말하고(최경준, 박문칠의 작업), 관람자가 직접 필사하고(필사테이블), 말해진 언어들을 자신의 표현 수단을 통해 재배치(정정엽, 에밀리 정민 윤의 작업)함으로써 말해진 증언은 다시 생명을 얻는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증언의 청자들에 대해 “청자는 기꺼이 증언을 공유하고, 증언자의 시공간을 확장하도록 돕는 공동의 목격자, 또는 2차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6] 행해진 증언을 따라 말하고, 다시 쓰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청자는 단순히 듣는 사람이 아닌 공동의 목격자가 되고 이를 통해 증언은 다시 공동의 목소리가 된다. 듣기에서 ‘다시’ 묻기로 전시장의 메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AI 인터랙티브 증언 콘텐츠로, AI 기술을 이용해 이용수와 이옥선 두 명의 피해생존자의 사전 녹화된 증언 데이터베이스에서 질문자의 질문에 호응하는 답변을 찾아주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당초 더 이상 증언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예비하며 증언의 지속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처음 이름은 ‘영원한 증언’이다. 그러나 증언의 다양한 경험들이 이야기하듯 증언은 증언자와 증언이 놓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증언 자체가 변하기도 하고, 해석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증언의 영속화는 불가능한 기획에 가깝다. 또한 모니터 화면(screen)을 통한 대화가 어쩌면 증언의 생동성을 가리는 장막(screen)이 되는 것은 아닐지, 또 테크놀로지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들과 ‘매칭 시스템’이 증언을 평면화하고 모범적 답변들만을 제시하는 일종의 ‘계몽용’ 프로젝트가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 역시 관람 전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전시 프로젝트를 마주하는 순간 증언이 놓인 담론장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으로 바뀌었다. 전시는 두 개의 스크린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관람자는 각 스크린을 통해 이용수, 이옥선을 각각 대면하게 된다. 실물 크기로 제작된 초고해상도의 화면은 전시 서문에 쓰인 “본 전시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한다. 특히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던 화면 속 인물들이 금세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할 때는, 관람 전 가지고 있던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비인간성에 대한 경계는 사라지고, 뜻밖의 친밀감마저 형성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사말을 하고 난 뒤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 어떤 언어로 물어야 할지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함을 덜어주고자 전시에는 예시 질문들이 준비되어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에 익숙한 이들에게 오히려 이 질문지는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고, 그렇다고 정형화된 질문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내기에 나의 상상력은 빈곤하다. 결국 한참의 고민 끝에 내뱉은 말이 “식사는 하셨어요?”다. 결국 나는 한참이나 근황에 관한 질문만 이어가야 했다. 그 순간, 증언집 4권 이후, 그리고 이용수의 기자회견 이후 제기되었던 ‘청자의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묻기에서 듣기로’의 사고 전환 과정에서, 정작 듣기란 묻기를 포함하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실감형 AI 인터랙티브 증언콘텐츠가 관람자에게 던지는 질문의 유효성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엇을 들을까가 아닌 무엇을 물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제기하는 것. 잘 물어보기 위해서는 질문자의 끊임없는 고민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묻기로의 재전환이나 회귀가 아닌 듣기의 과정 안에 묻기를 복원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AI와의 대화가 개방된 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루어진다는 점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증언자의 증언이 사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든,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든, 그것이 공적 장 안에서 다루어지는 한 공적 발화의 성격을 지닌다면, 질문자의 질문은 그동안 공적 장에서 쉽게 가려져 왔다. 질문자의 언어는 매끈하게 정리된 채로 기술되거나, 질문자 자체가 카메라 뒤로 물러나 있거나 하는 과정에서 질문자의 목소리와 얼굴은 지워진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질문자는 개방된 장소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해야만 한다. 수많은 트라우마적 사건의 증언자들이 고백하듯 증언하기는 증언자에게 고통을 남긴다. 증언함으로써 사건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통과 더불어 공적 장에서 발화해야 하는 행위 자체가 불러오는 주목의 문제가 여기에 존재한다. 김수진은 대면 인터뷰 상황에서 질문자 역시 트라우마적 전이를 경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7] 물론 이번 전시 프로젝트에서는 스크린이라는 막이 이러한 전이 경험으로부터 관객을 ‘보호’한다. 그럼에도 관람자는 자신의 언어가 공적 장소에서 ‘얼굴이 공개된 채’ 발화될 때 그 무게와 곤경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앞서 말한 증언콘텐츠가 갖는 단순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비디오 증언이 법정의 증언이나 자전적 기술과 다른 점은 “멈춤, 침묵의 시간, 불완전한 문장, 빈정거림과 같은 열린 단락의 여지를 남기는 덜 정교한 형태”를 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8] 물론 이 말은 비디오 증언 역시 편집이나 자막, 사운드 보정 등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비디오 증언이 언어가 드러내지 못하는 증언자의 제스처, 표정, 휴지(休止)를 초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9] 그러나 증언자의 침묵과 제스처는 AI 콘텐츠에서는 삭제되거나 제한되고, 침묵을 대신한 기술적 오류들–질문자의 질문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질문에 매칭되는 답이 없거나 하는 오류들–이 증언자가 아닌 관람자의 휴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기술적 오류들은 어느 정도의 개선이 가능하겠지만, 모든 질문에 가능한 모든 대답 영상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AI 증언콘텐츠의 한계를 직시하되, 다른 한편에서 이런 오류는 증언콘텐츠가 생산된 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애당초 모든 것을 증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눈은 피해생존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말해진 것을 어떠한 맥락과 형식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이를 각자의 몽타주로 그려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한 청자, 공동의 목격자, 공동의 목소리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 도미야마 이치로(2002), 『전장의 기억』, 임성모 역, 이산. ^ 프리모 레비(201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소영 역, 돌베개. ^ 소영현(2019), 「목격-증언의 자리와 공진하는 ‘위안부’의 몸」, 『구보학보』 22. 673-702쪽. ^ 따옴표 안은 인트로 영상에서 발췌. ^ 프리모 레비, 위의 책. ^ Assmann, A. (2006). “History, Memory, and the Genre of Testimony”. Poetics Today, 27(2), 261–273. ^ 김수진(2013), 「트라우마의 재현과 구술사: 군위안부 증언의 아포리아」, 『여성학논집』 30(1), 35-72쪽. ^ Assmann, A. 위의 글. ^ 그러나 이 몸짓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거나 위반되는데, 김한상(2021)은 카메라 앞의 증언자의 몸짓이 이들이 마주하는 특정한 사회적 역할과 맥락 속에 놓인다는 점에서 이를 ‘사회적 몸짓’의 인용과 모방이라고 말한다 (김한상, 「다큐멘터리의 몸짓과 영상사회학적 실험/실천: <숨결>과 <보드랍게>의 피해생존자들의 경우」, 『현대영화연구』 44, 29-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