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많은 일본계 미국인 교민사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미국에 있는 자산이 동결됐다. 당시 미국은 증거가 부족하고, 일본계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시민권을 가진 2세였음에도 사보타주범이나 간첩으로 활동할 가능성을 의심해 1942년부터 강제 이주를 실행, 1945년 말 폐쇄되기까지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이 최대 3년 동안 강제 수용돼 고통을 겪었다. 2011년 수용소 부지에 당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박물관인 ‘하트마운틴해석센터’가 개관했으며,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배상에 이어 2022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 9066호를 통한 강제 구금에 대해 사죄한 바 있다.
독일 한인 2세들이 2008년 베를린에서 결성한 이주민 자조단체에서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파독 노동자 2세를 비롯한 한인 커뮤니티의 관점을 대변하며 독일 정부·지자체에 정책을 제언하는 한편, 학술 워크숍, 아시아영화제, 전시회 등을 통해 독일 사회에 한국을 알려왔다. 이후 중국, 베트남계 등 다른 아시아계와 연대해 반(反)아시아계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쪽으로 활동을 넓혔고, '아시아계 독일인(Asiatisch-Deutsch)'이라는 자기규정과 정체성을 독일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대표적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3부. 미 전시정보국(OWI) 49번 보고서
『광주시한교협회회원명부』와 『광주시대한교민회회원명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해방 전‧후 중국 광저우 지역 ‘위안부’ 실태
이들의 몸을 횡단하는 방사성 물질은 이들의 몸속 세포만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딸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을 요구받는 여성들의 삶을 굴절시켰다. 한국 여성 원폭 피해자의 생애사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신체에 갊아 있는 민족과 국가, 원폭증 장애, 그리고 가족과 여성이라는 굴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전쟁과 점령, 그리고 특별이란 수식어로 감추어진 공창제
베를린 ‘위안부’ 운동 40년과 소녀상 ‘아리’ 존치운동에서 확인하는 빛나는 연대
38년 동안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한 두레방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약자의 역사를 무시하고 삭제하는, 여성들 최후의 공간을 빼앗는 인권의 문제이다.
도미야마의 예술-운동은, 시공간적 거리와 인/종적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채 삶을 버텨온 존재들을 알리고 연결시키려는 끊임없는 시도였다.
이미지 작가의 ‘위안부’ 탐구 3부작 프로젝트 ‘입’과 《망시토리》전시 이야기
‘위안부’ 피해 기억과 트라우마를 재현해온 매체로서 다큐멘터리가 이룬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나아갈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