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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 안에서 궁글린 목소리들 -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 대하여
    2021년 논평 몸 안에서 궁글린 목소리들 -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 대하여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밀리 정민 윤, 한유주 옮김, 열림원, 2020)   일본군 ‘위안부’, 증언의 끝은 있는가     증언, 그 목소리란 어떻게 퍼져가는 것일까.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밀리 정민 윤, 한유주 옮김, 열림원, 2020)[1]을 읽고 난 후 수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일본군‘위안부’의 재현에 관한 한 강연에서 존 바에즈[2]가 「메리 해밀턴(Mary Hamilton)」을 부르는 동영상을 청중들과 함께 감상하며 끝을 맺은 적이 있다. 이 강연은 1년 쯤 후에 긴 논문이 되고, 두어 해쯤 후에는 강연의 기획자인 문학평론가 오혜진이 편한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권보드래 외, 민음사, 2018)에 조금 수정되어 수록되기도 했지만[3], 강연 당시 내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신해 들려준 것만 같은 그 노래의 울림까지 담지는 못했다.  「메리 해밀턴」은 한국인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번안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그 구절을 부르노라면 바람과 비에게라도 묻고 싶은, 사라진 것은 정말 무엇일까 하는 막막함과 슬픔을 어린 시절의 나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이 노래가 번안을 통해 상실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차마 지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깊고 투명한 서정성으로 박정희 독재에 저항했던 포크송이었다는 사실[4]을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서야 후일담처럼 알게 되었다. 그 원곡이 영미 전통 발라드의 하위장르인 살인 발라드(Murder Ballad) 중 하나인 「메리 해밀턴」이라는 것[5], 더불어 스코틀랜드에서 기원한 가사가 이토록 사무치게 다가온 것은 전적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그 증언의 종식은 있는가를 생각하면서부터다. 시적 화자인 메리 해밀턴은 왕의 아이이기에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여야 했던 왕비의 궁녀로, 교수형에 처해져 죽임을 당한 자, 그러니까 영혼이다. 노래 말미에는 자신 말고 다른 세 명의 메리들이 더 있었다고 전한다. 그 노래하는 영혼은 자신만이 아니라 그저 메리들일 뿐이었을 궁녀들의 비극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연을 준비하던 당시, 남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를 셈하는 것이 아베 정부와 박근혜 정권이 맺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둘러싼 긴급한 절박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셈을 중단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죽으면 끝이라는 건가? 애초에 일본군‘위안부’가 몇 명이고 그 생사가 몇인지 셈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게다가 이미 생존자들이 목격한 잔인하고도 숱한 죽음에의 증언이 있지 않았는가. 이 노래는 죽음이 증언의 끝, 역사의 종말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증언의 끝은 없으며 따라서 역사의 종언 또한 섣부른 것이다.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그 증언이다. 이 시집은 수어 년 전 나를 사무치게 만들었던 「메리 해밀턴」처럼, 아니 보다 더 강렬하게 단번에 폐부에 깃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엔 「황금주」, 「진경팽」, 「강덕경」, 「김상희」, 「김윤심」, 「박경순」, 「김순덕」이 있기 때문이며, 더하여 이들의 기억과 고통, 증언을 전하는 ‘나’가 있기 때문이다.       ‘찾은 시’, 증언의 시적 전승     에밀리 정민 윤의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을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 Comfort Woman』(박은미 옮김, 밀알, 1997)나 이창래의 『척하는 삶 A Gesture Life』(정영목, 알에이치코리아, 2014)처럼 일본군‘위안부’를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결부지어 포스트식민의 상흔을 다룬 재미 코리안 문학의 계보 속에서나 근년 간 증가한 문학과 영화 텍스트의 경향성 속에서 다룰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무엇보다 이 시집은 몸을 멈칫하게 만드는 일본군‘위안부’ 증언의 강렬한 시적 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들은 시간적 전개에 따라 감춰진 진실-일본군‘위안부’였음-을 드러내는 서사 양식과 달리, 청자들 앞에 나타나 단번에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말한다. 극적 현전이랄 수는 있지만, 직접성의 환영을 의도한 효과는 단연코 아니다. 이 시들은 ‘찾은 시’(found poetry)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시들이 “시각예술에서 자주 쓰이는 ‘콜라주’와 비슷하게, 존재하는 텍스트를 부분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형태나 내용의 시를 만드는 기법”으로 쓰였으며, 사용된 텍스트들은 녹취, 채록, 번역된 증언 텍스트이며, 그것을 “단순 복제하지 않고, 내용과 언어를 선택적으로 추출하여 재배열하고 내 언어도 소량 추가하여 시라는 형태로 변형시켰”[6]다고 한다. 이것을 나는 증언의 시적 전승이라고 하고 싶다. 이 시집의 제작 과정은 아카이브를 파헤쳐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상을 구축하는 지적인 과업일 뿐만 아니라 마치 전통예술의 전수자와 같이 몸의 수행(performance)을 요구한다. 에밀리 정민 윤에게 있어 문서고의 언어들이 시로 변형되는 과정은 자신의 몸에 부딪는 말들을 몸 안에서 궁글리면서 목소리로 표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38선까지 내내 혈혈단신으로 걸었다.   미군들이 내게 DDT를 너무 많이 뿌렸고        이가 전부 떨어져 나갔지   12월 2일이었다   나는 자궁을 잃었고        이제 일흔이다.          -「증언들」(황금주) 부분(43)[7] 규칙적이지 않은 행갈이와 긴 휴지인 듯한 띄어쓰기가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와 관련하여 상호참조적인 텍스트가 없지 않다. 네 번째 증언집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 풀빛, 2011)가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사회학자 김수진에 따르면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준비하면서 증언팀은 “증언을 문서자료를 보충하는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기초한 자료로 위치시켰던” 시각에서 “증언을 서발턴[8] 역사쓰기”로 전환시키고자 했다고 한다. 그것은 구술 채록자 및 연구자의 위치를 묻는 자에서 청자로 이동시키면서 구술 발화자를 중심에 두는 구술 방법론 및 다시 쓰기의 전환이었다.[9] 증언4집의 증언 연구자들이 고민했던 것과 유사하게, 에밀리 정민 윤의 시에서 행갈이와 긴 휴지는 증언자들의 지속되는 고통과 오랜 침묵, 떠듬거림과 머뭇거림에 대한 시적 일탈을 통한 미메시스[10]일 것이다. 하지만 분량상 증언 텍스트보다 짧아진 시적 증언은 여타의 증언 텍스트보다 단도직입적으로 트라우마의 근원이 된 성노예 강간 경험과 해방되어 조선으로 살아 돌아왔어도 여성-몸의 고통 속에서 환기될 수밖에 없었던 이후의 삶을 응축한다. 위의 「증언들」처럼 “나는 자궁을 잃었고/이제 일흔이다”처럼 살아온 나날들인 세월을 셈하기도 무색한, 트라우마에 달라붙어버린 삶으로서 말이다. 이 시들에서는 묻는 자도 청자도 존재하지 않기에 시제인 ‘위안부’피해자가 우뚝 서 있는 것만 같은 현전성은 증언의 용기와 주체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만을 다루었다면 이러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증언의 시적 전승이 지닌 힘은 여러 매개를 거친 증언 텍스트들과의 비교, 대조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 없이는 시가 쓰여질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승자 자신에게서 그 힘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승자는 왜 증언을 전승하고자 했는지 자신이 깨우친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맥락화하고 병치시킴으로써 그 힘을 생성시켰던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포함된 집단과 연루된 집단의 역사와 사회적 삶에 대한 증언자이자 목격자로 자신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시절 한국에 살다가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 간 시인은 자신이 포스트식민과 냉전의 역사가, 그리고 인종적 위계를 만들어낸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가 부조해낸 아시아 여성 몸으로 존재했음을 증언의 시로 말한다. “귀가 해year라고 말할 때 목은 귀ear라고 말했고”(「종 이론」(81)), 백인 소녀들과 같지 않은 검은 직모의 머리카락과 탄 듯한 피부색을 지닌 “나”(「머리카락」(88))는 역사와 당대를 자신, 여성의 몸 위에 이렇게 교차시킨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기억은 현재에도 지속되는 “일상의 불운” 속에서 환기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오리엔탈리즘의 젠더화된 스테레오타입 속에서 ‘나’를 야만적인 유혹자로 간주하여 끊임없이 회귀하는 자아의 실정성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명령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나를 만지지 마라」(76~77))   “일상의 불운”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서 “일상의 불운 An Ordinary Misfortune”은 여덟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제이다. 한 온라인 라디오 방송[11]에서 시인은 “‘일상의 불운’이라는 시제를 통해 ‘위안부’피해자뿐만 아니라 몸에 가해지는, 특히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한다. 어느 역사책에서 일본군‘위안부’를 언급한 부분에서 본, 가난한 여성들이 성착취를 당하는 것은 너무 빈번한 일이어서 일상의 불운 “ordinary misfortune”이었다는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것을 시제로 삼아 시를 쓰기 시작했고, 번역자 한유주와의 대화를 통해 일상의 불운이라 번역되었다고 한다. ‘평범한’이나 ‘보통의’보다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불행’보다 ‘불운’이라는 번역어를 택해 ‘순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12]이 떠올랐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든 여성들의 행렬과 포스트잇 물결이 알려주듯, 살해당한 것은 당신이 아닌 나일 수도 있었으며, 이 살인사건은 구조화된 여성혐오 폭력이었다. 에밀리 정민 윤이 “일상적 불운”이라 명명한 것은 이러한 구조화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불운이란 터질 듯 들어찬 전차. 너무 약한 칵테일. 바에서 한 미국 남성이 하는 말 :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에서의 네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지. 의미: 고마워해라. 캐나다 여자 친구가 던지는 질문 : 너희가 그냥 잘 지내면 안 돼? 너희 : 일본과 한국. 의미 : 넘어가라.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넘어가라, 넘어가라, 넘어가라, 기차에 탄 소녀들. 목적지 : 위안소. … (하략) -「일상의 불운」 부분(25)  이 시집의 첫 번째 「일상의 불운」은 “내 불운이란 터질 듯 들어찬 전차”와 같이 대중교통수단에서 여성들이 겪곤 하는 성추행처럼 일상의 불운의 연쇄를 따라 과거로 거슬러 가면 위안소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를 탄 소녀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들은 “콘돔” “돌격1호”가 연거푸 발사되는, 병들고 죽어도 그만인 과녁일 뿐이었음을, 또 다른 「일상의 불운」에서는 너무 능하게 쓰이는 “나무”와 같아 베어지고 버려지는 “마루타”(「일상의 불운」, 35~36)였음을 폭로한다. 이 시 외에도 통사적으로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한 단어들, 구의 단속적 연쇄로 이어진 에밀리 정민 윤의 많은 시들은 독자에게 현기증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능란한 언어적 역능에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그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오히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맥락들을 넣어 독해하는 해석 공동체의 일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어느 말엔가 걸려 넘어진다. 실족한 그곳에서 성찰할 것을 청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율적 가상 속에서 분리된 것들을 연결하라고 말한다. 정치, 운동, 역사와 같은 일들이 진영화된 정치열 속에서 소진되어버리고 협애한 의미에서의 당사자 외에 정치적인 것을 확장하는 성찰과 연대에 냉소적인 한국의 분위기에서 에밀리 정민 윤의 시 작업이 통쾌한 일침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는 자신의 시의 해석 공동체 일원들이 “우리 종들”(our species), 즉 다른 종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잔혹함의 속성을 지닌 인류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을 부기해둔다. 배 속에 플라스틱을 가득 담은 채 떼죽음을 당한 향유고래를 통해 인류세의 폭력을 다룬 「변신」(127~132) 같은 시는 에밀리 정민 윤이 가닿을 정치적이고도 윤리적인, 그리하여 진정 문학적으로 감당해야 할 세상사가 어디까지인지를 말해준다.   각주 ^ 이 시집의 원서는 다음과 같다. Emily Jungmin Yoon, 『A Cruelty Special To Our Spescies』, HaperCollins Publishers, 2018.    ^ (편집자 주) Joan Baez(1941년생).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인권 운동가, 반전 평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 이혜령, 「그녀와 소녀들」, 오혜진 편,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민음사, 2018. ^ 박기영의 연구에 따르면, 존 바에즈의 「Mary Hamilton」의 번안곡은 한국 모던포크 성립기(1968~1975년), 그리고 대마초 파동 직후인 1976년도까지 나온 포크 음반 170장의 앨범 중 7회나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 번안인 「아름다운 것들」은 한국의 첫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는 방의경이 노랫말을 쓴 것으로, 양희은과 서유석의 대표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박기영, 「이식 그리고 독립: 한국 모던포크 음악의 성립과정(1968~1975년)」,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121~136쪽, 222쪽 참조.) 번안곡의 비중이 적지 않았던 한국 모던포크 음악의 퇴조에는 1975년 긴급조치 9호 공포에 따라 이루어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약칭 예륜)의 공연활동 정화대책과 불건전 외국 가요백서가 놓여 있다. 존 바에즈는 불온, 반체제, 반전을 노래하는 포크 뮤직 가수 중 하나로, 밥 딜런, 비틀즈, 존 레논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박소현,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 따른 서양 대중가요의 유입에 대한 분석: 1910년부터 1987년까지의 번안가요를 중심으로」,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2021, 89~92쪽 참조.)   ^ 「메리 해밀턴」은 1960, 70년대 흑인 민권운동, 반전운동 등에서 불렸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 대중가요로 번안된 영미 전통의 살인 발라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노신, 「영미 전통 민요로서의 발라드(Ballad) 연구 : 살인발라드(Murder Ballad)를 중심으로」, 『비교문학』74, 한국비교문학회, 2018. ^ 에밀리 정민 윤, 「한국어판 서문: ‘찾은 시’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종족의 잔인함」, 앞의 책, 18쪽. ^ 에밀리 정민 윤, 앞의 책, 43쪽. 이후 인용은 본문에 괄호 안 쪽수로 표기한다.  ^ (편집자 주) subaltern. 여성이나 노동자, 이주민과 같이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되고 억압당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 ^ 김수진, 「트라우마의 재현과 구술사 : 군위안부 증언의 아포리아」, 『여성학논집』 제30집 1호,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2013 참조. ^ (편집자 주) mimesis. 예술 창작의 기본 원리로서의 모방이나 재현. ^ <네시이십분 라디오> 89회-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에밀리 정민 윤, 2021.02.27.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13/episodes/23958113 (2021.11.29.검색완료)  ^ (편집자 주) 2016년 5월 17일 한 남성이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 있는 주점의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 당시 이 남성은 앞서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7명은 그대로 내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타깃으로 삼아 살해했다.

    이혜령

  • 독자에게 듣는다. 2021년 웹진 〈결〉 어땠나요?
    2021년 좌담 독자에게 듣는다. 2021년 웹진 〈결〉 어땠나요?

    다사다난했던 2021년. 벌써 2년째 계속되고 있는 COVID-19로 인해 모두의 일상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웹진 <결>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각도에서 알리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러한 노력이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가 닿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시절인 만큼 서면을 통해 독자 의견을 받았지만, 덕분에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에 거주하는 독자의 의견까지 폭넓게 청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짧은 글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기대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고백하며, 소중한 의견을 나눠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참여 독자(가나다순) 권지명(충북대학교 사회학 전공 /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펠로우 참여) 김현정(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 대표)  정용숙(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2021_결_독자의_편지_1. 다리에서 쓴 편지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생각’에 ‘잠기’며, ‘웃음’을 ‘터뜨린다’. 말에는 언중(言衆)의 인식이 담겨있는데, 일례로 ‘생각’이라는 명사에 ‘잠기다’라는 서술어를 쓰는 이유는 생각에 몰입한 상태와 물에 잠긴 상태 사이에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엔 또 어떤 참신한 서술어를 연결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술어는 ‘뻗다’이다. ‘마인드맵’ 덕분에 생각이 나무와 같이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알다시피, 마인드맵의 필수 조건은 ‘연상(聯想)’이다. 처음 ‘결’을 보았던 날부터, ‘결’은 쭉 내게 생각을 잇고, 뻗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누군가 ‘결’의 특이점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나는 각주를 떠올릴 것이다. 각주에 짤막하게 적힌 사건과 책, 영상을 찾아보며 생각은 가지를 뻗었고 이는 분명 일반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답을 내리고 떠난 다른 글들과 달리, ‘결’의 글이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느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더 알고 싶다면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각주를 무시하지 못한 독자들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따라갔고, 덕분에 ‘위안부’문제를 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결’의 콘텐츠 중 가장 좋았던 기획은 2021 기림의 날 특집으로 나온 <박필근을 만나다>이다. ‘위안부’ 전체가 아닌 한 명의 이야기를, ‘위안부’ 피해 이후의 삶을 소개하는 기획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위안부’를 교과서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교과서나 책을 통해 ‘위안부’를 접하다 보면 ‘위안부’를 “일제강점기 시절,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기 쉽다. ‘위안부’를 교과서로 기억하던 독자는 포토스토리, 논평,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으로 쓰인 박필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부’ 문제를 현실로 끌고 올 수 있다. 포토스토리에 담긴 박필근 님의 주름에서, 눈물 나는 밤에 우황청심환을 드신다는 에세이 속 진술에서 ‘위안부’는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자 개개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사건을 극복하고, 왜 오늘날에도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려워하는지(생애사를 듣는 과정에서 박필근 님이 “그 말 모하니더(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인터뷰가 중단되는 상황이 잦았다고 한다) 등은 모두 현재의 문제와 연결된다. 독자는 <박필근을 만나다>를 통해 가부장제적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피해자가 겪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며, 정형적인 피해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뭉뚱그려졌던 ‘위안부’ 피해자 각각의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화투를 치며 행복을 찾는 박필근 님의 삶을 통해 누구는 위안을 얻고 또 다른 누구는 피해자의 정형성을 깬다. <박필근을 만나다>를 가장 좋았던 기획으로 뽑은 이유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획을 보고 소감을 남기거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열어놓았다면 더욱 깊이 있는 사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행위가 ‘위안부’ 문제를 보다 ‘나’의 이야기로 끌어당기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결’을 읽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학생이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연구원이 아닐까 싶다. ‘결’이 ‘소개’란의 바람대로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위안부’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독자에게 소통의 기회를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음모론이나 2차 가해와 같은 문제로 인해 다시 피해자가 상처받고 거짓 정보가 퍼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모아 일부를 소개하는 등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고, 이를 통해 아무개들의 경험이 공유된다면 기존의 독자는 단순히 콘텐츠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참여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결’은 다리로서 나의 곁에 존재해왔다. 다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독자는 그 위에서 사색을 이어갈 것이다. 다리는 공간의 경계를 지우는 속성이 있다. 시간과 사람, 사건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끊임없이 현재로, 내게로 ‘위안부’를 끌어오는 ‘결’에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 ‘결’의 논의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독자는 풍성한 논의 위에서 촘촘히 자신만의 결을 짜낼 것이다. 덕분에 오늘, 나는 ‘결’ 위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결을 이야기할 미래를 그린다. 권지명 충북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환경에 관심이 깊다. 전공 수업과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펠로우 활동을 통해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2021_결_독자의_편지_2. 결에 바란다 3년 전, 8월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라는 전문기관이 처음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만들어졌을 때, 멀리 미국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피해 생존자 분들이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을 위해 줄기차게 싸워 오신 근 30년이라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 산하에 아직 그런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은 매년 갱신해야 하는 1년짜리 프로젝트로서 장기적 사업구상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나, 이제 연구소는 실력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여 반가운 마음이 크다. 연구소가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과 활동이 있겠으나 외부인들이 그것을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웹진 ‘결’은 연구소의 활동 성과를 보여주고, 국내외에서 필요로 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생각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이기 때문에 ‘결’이 훌륭한 웹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구성 : 웹진이기 때문에 온라인 잡지의 구성을 띠고 있고, 그 안에 좋은 글들이 많이 있으나, 연구소의 취지대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각종 연구사업의 결과를 집대성한 허브 역할이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30년간 이어져 온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운동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일본정부의 역사 부정과 수정주의가 판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어떤 군 문서나 사료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증언을 문서, 비디오, 오디오, 시각자료 등으로 잘 정리하여 각 언어로 제공하는 것은 연구소와 ‘결’의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정치적, 사회적 논란으로서만 ‘위안부’ 문제를 접하는 대중이 이 사이트에 들어왔을 때 간결하게 정리된 언어로 독자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소개 글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영어판 <결>과 같이 ‘연구소 소개’, ‘웹진 결 소개’ 메뉴를 상단 메뉴로 디자인 수정을 하면 좋을 것 같다. ​ 제공 언어 : 우선 한글과 영어 두가지 버전으로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작 가해자 일본과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역사수정주의와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을 일본어판으로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분류 : 현재 인터뷰, 에세이, 논평, 좌담, 자료해제, 전체보기로 나누어져 있는 분류 방식은 좋으나, 각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는 글들의 제목들이 모두 나열되어 있는 페이지가 없어 아쉽다. 각 카테고리에 어떤 글들이 있는지를 보려면 일일이 페이지를 넘겨가며 검색을 하거나 키워드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글들을 모두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결’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와 교육에 있어 연구소와 ‘결’의 맹활약을 기대한다.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 CARE 대표 2021_결_독자의_편지_3. '위안부'문제의 논의와 합의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결>의 독자이지만, 창간과 제작에 참여한 초기 편집위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기억의 일부가 웹진 <결> 좌담 코너에 ‘편집회의’로 남았네요. 재작년 초의 일이었을 뿐인데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지는 건, 그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교육홍보팀장으로 웹진 <결> 창간과 초기 발간을 담당했던 소현숙 선생님을 비롯해 우리가 고심했던 것은 학술적 엄밀성과 대중적 친화성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위안부’문제는 넘어서지 못한 과거를 대표하는 주제입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범죄 ‘과거청산’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소환되는 주제이죠. 그런 만큼 학계와 예술·문화계의 많은 분이 노력해온 결과가 쌓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위안부’문제를 여전히 모른다 생각하고 그래서 알려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런 온도 차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걸 좁히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즉 ‘위안부’ 지식의 공공화가 웹진 <결>에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전문 연구 결과를 전하는 <자료해제>, <좌담>, <논평>, 그리고 이 주제에 관여하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에세이>와 <인터뷰> 모두 다섯 개의 코너가 기획된 배경입니다. 웹진 <결>은 학생이나 일반인이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궁금한 게 생겼을 때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식창고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매 호 차곡차곡 쌓이는 글을 기술적으로 연결해 독자들이 웹진 <결>의 바다에서 파도타기 하듯 연관 지식을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라서, 저를 포함해 전문 연구자가 쓰는 글은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해도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글을 쉽게 쓰는 문제가 아니라, 지식 자체를 완전히 다른 목적과 독자에 맞게 구성하는 일이었고, 별도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인 저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가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눔의 집 김대월 실장 인터뷰(2019년 10월 8일자)나, 원래 연재 글로 기획한 <할머니의 방>을 흥미롭게 봤죠. 연구자나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활동가의 세계와 김대월 실장님의 표현을 빌린 “퇴근 후” 할머니들의 일상이 손에 잡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허윤 선생님의 글 「지구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 영화 <나는 부정한다> 다시보기」(2021년 11월 22일자)도 유익했습니다. 피해자들이 한 분도 안 남게 되는 날이 오면 ‘증언’과 ‘기억’도 사라질 거라는 많은 이들의 걱정에 훌륭한 답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료해제>는 독자에게 가장 인기 없는 코너이겠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기획으로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웹진 <결>의 운영 주체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소속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입니다. 이 기관들은 여성가족부의 지원과 감독을 받고 있지요. 박물관과 기념관의 나라인 독일에서는 그것을 유지하는 일을 해당 주 정부가 맡아서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입니다. 돈을 준다는 이유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박물관과 전시관이 정부 지원으로 운영됩니다. 나랏돈이 들어가는 만큼 국가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돈은 ‘나랏돈’이 아니라 ‘공공자금’이므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이것은 나라가 원하는 방향을 따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죠. 그럼 ‘공공의 이익’은 누가 정하느냐, ‘위안부’문제에 관한 ‘공공의 이익’은 뭐냐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이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시민’인 우리가 의논하고 합의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웹진 <결>이 이런 논의가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정용숙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조교수 adieu2021 ⓒ백정미

    웹진 <결> 편집팀

  • 수많은 “성찰”의 연속에서 -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 후기
    2022년 에세이 수많은 “성찰”의 연속에서 -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 후기

    COVID-19와 온라인 개최 덕분에 얻은 특혜  지난 10월 중순, 아시아연구 가을학기 대학수업의 일환으로 학부생들 20여명과 함께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COVID-19로 국제 컨퍼런스가 온라인으로 개최된 덕분에 학부생들과 함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최근 연구와 토론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영상으로 개최된 덕분에 컨퍼런스가 끝난 지금도 생각날 때 마다 유튜브 영상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컨퍼런스에 함께 참가한 학생들은 K-POP을 즐기고 열광하는 학생들이다. 코로나 이전 까지만 해도 석 달에 한번, 심지어는 한달에 한번씩 서울을 오가며 팬 미팅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주말에 친구들과 혹은 엄마와 함께 여행삼아 한국을 오가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일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세대 프레임”이 일종의 설득력을 가질 만큼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했다.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_현장사진 한편 이들은 대학에 와서야 ‘“위안부’”문제를 알게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공교육을 통해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의 감정은 회의 둘째 날 세션4의 “전쟁의 성별성과 평화의 문제”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학생들 나름의 반응이었다. 즉,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같은 또래 여학생이 ‘만약 나였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나와 결부시켜 보면 어떨까?라는 히라이 미쓰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정곡을 찔렀던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고 치가 떨린다고 했다. “관부재판”을 지원한 일본시민들  실은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봄학기 대학수업에서 막 출판된 “관부재판”이란 신간도서(花房俊雄・花房恵美子,『関釜裁判が めざしたもの: 韓国の おばあさんさちに寄り添って』,白澤社/現代書館、2021年)를 함께 읽으면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5월에 번역서로 출판되었다.[1] (왼쪽부터) 도서 『관부재판』의 일본어판, 한국어판 표지 ⓒ권향숙 제공 이 책의 저자 하나후사 도시오씨와 하나후사 에미코씨는 “전후 책임을 묻는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하는 모임)”을 조직하여, 관부재판의 원고를 돕고 입법 활동을 펼친 일본인 부부이다. 이 책은 관부재판을 지원하면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고, 어떻게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1998년 판결 이후 일본 사회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 28년간의 활동과 원고들과의 교류를 담은 기록이다. “지원하는 모임”은 2013년에 해산했다. 책에서는 이들이 그동안 할머니들과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할머니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진정한 화해와 바람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활동과 원고로 참여한 할머니들의 증언 내용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바람직한 “지원”과 성찰 역사적 사실과 증언에 대한 참고자료와 함께 이 책을 과제도서로 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위안부’와 ‘정신대 피해자’와 함께 지내온 28년간을 돌이키며 “지원운동을 하면서 느낀 의문과 고통”을 함께 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람직한 ‘지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독자 스스로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저자인 하나후사씨 부부가 할머니들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위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지원하는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의 소박하고도 인간적인 면면들이 마지막 장에 고스란히 기술되어 있다.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재판을 지원하고 할머니들의 삶을 내면화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시민 활동은 차세대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책의 행간을 통해 “나의 문제”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 이 “성찰”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한 단어와 만났다. 그 단어는 바로 '마이크로어그레션 (microaggression)'이다. 일본어로 잘 옮겨지지 않아 카타카나로 번역서가 출판되어 있다. '아주 작은(micro)'과 '공격(aggression)'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해석하면 미세하지만 공격적인 차별을 일컫는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의 대상은 인종, 젠더, 신체 등으로 겹겹이 얽히고설켜 있으며, 이러한 차별은 경계 사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머조리티(majority)의 몰이해가 근원이다. 한국어로는 “먼지차별”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전시 성폭력 피해가 역사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어났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제국의 국가 책임은 물론 “텐노우세이(천황제)”에 대한 제도적 폭력을 쟁점화하고, 진정한 사죄를 받기 위한 목소리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자로서의 삶을 “나의 문제”로 생각할 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의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무지했던 나”, “행동하지 않는 나”,  “방관하는 나”, 이런 내가 할머니들을 먼지 차별 속으로 몰아가는 구조적 폭력의 가담자이지는 않았을까? 그 어딘가에서 아픈 경험을 털어 놓지 못한 채 숨죽이고 계실 그리고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리며 이런 성찰을 해 본다. 새로운 관계를 위한 시작으로 “질문”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여러 물음에 대한 사색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의식의 밑바닥을 맴돌고 있다. “너무 몸이 아파서 죽고 싶다. 그렇지만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고운 옷도 입어 보고 싶다.” 고인이 되신 피해자 할머님의 역설적인 말씀이 소개되면서 던져진 폐회사 물음과 맺음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과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들을 것인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위한 시작점.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사람(human being). 부단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 나 자신이 수많은 관계 개선을 만들어나가는 시작이고 싶다 .  함께 읽기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 폐회사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 정유진)  

    권향숙

  • ‘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2022년 논평 ‘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훼손된 몸의 (비)재현 얼마 전 제27회 제네바국제영화제에서 가상현실(VR)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소요산>(김진아, 2021)은 이른바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성병 치료를 명분으로 강제 수용했던 장소를 배경으로 이 작품을 만든 김진아 감독은 전작 <동두천>(2017)을 통해서 1992년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에게 살해당한 여성 윤금이 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영화의 촬영과 형식이 가상현실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과 다루고 있는 주제가 미군 ‘위안부’ 문제라는 점뿐 아니라 바로 그 두 공통점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감독의 고민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1992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벌어진 윤금이 씨 살인사건은 피해 기억의 재현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악명이 높은 사례를 만들어 놓은 사건이기도 하다. 피의자 마클의 신병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성이 부각되면서 SOFA의 개정과 주한미군 범죄 근절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 문제에 대중의 주목을 원한 운동단체들이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그대로 일반에 공개했던 것이다. 훼손된 시신과 참혹한 사건 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이 이미지는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하며 운동의 확산에 기여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와 같은 재현이 갖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운동 내부에서 큰 논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때 이 운동을 접했던 김진아 감독은 그와 같은 “폭력의 재현은 보는 사람에게도 그 피사체에게도 굉장한 폭력”[1]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피해자(의 이미지)를 착취하지 않고” 이 사건을 재현하는 문제를 25년 가까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2] 그 오랜 고민 끝에 만든 <동두천>은 1992년의 사진과는 달리 폭력의 피해를 손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360° 가상현실 카메라로 촬영된 동두천 거리에서 관객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보아야 할지 쉽사리 판단 내리지 못한다. 셔터가 내려간 클럽 뒤편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군가의 하이힐 소리가 들리고, 그 발소리를 따라 혹은 스치듯 마주치고 지나간 어느 여성이 사라진 쪽을 따라 들어가면 비좁은 단칸방에 도달한다. 방금까지 누군가 있었을 듯한 그 좁은 방바닥에는 널브러진 옷가지 사이로 흥건한 피가 고여 있다. 김진아 감독은 이 작품에서 자신이 취한 전략을 “몸의 부재(absence of the body)”라고, 다시 말해 가상현실로 관객이 도달한 사건의 현장에 “사체는 없지만 대신 살해의 흔적이 남아”있도록 하는 ‘보여주지 않음’의 전략이라고 말한다.[3] 시체구덩이 사진(death pit photograph) 윤금이 씨의 시신 사진 공개가 제기하는 재현 윤리의 문제와 이에 대한 <동두천>의 대답은 김진아 감독의 표현처럼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4]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후기식민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피해는 어떻게 재현되며 여기에는 어떤 응시가 작동하는가의 문제, 그 응시가 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제국주의적 폭력에 저항하는 명분으로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자 한 이들은 그 사진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믿었)으며 또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인가의 문제. 비슷한 재현의 문제는 그 이후에도 반복되었는데, 2002년 주한미군이 모는 장갑차에 두 명의 중학생이 치어 숨진 사건 당시에는 SOFA 개정 운동과 함께 두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 현장 사진이 시위 장소에서 피켓이나 리플릿에 인쇄되어 배포되었다. 그리고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되어 2018년 일반에 공개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구덩이에 쌓여있는 사진과 영상기록물은 그처럼 훼손된 신체의 사진적 재현이 인터넷2.0이라는 플랫폼을 만남으로써 제국주의 피해에 대한 문제적 응시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편재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연구팀에 의해 디지털로 배포된 영상은 언론사의 채널들을 통해 즉각적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되었고,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개인의 일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사진 1] 참조. 문제가 되는 사진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였다).  이른바 ‘시체구덩이 사진(death pit photograph)’으로 불리는 이러한 유형의 피해기록들은 서구 사회의 홀로코스트 피해 기억 재현에 있어서도 박물관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자주 활용됐으며, 가해자 집단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훼손된 신체들이 사물처럼 쌓여있는 사진적 기록들은 이미지 자체의 충격적인 도상적 표현과는 무관하게 실상 그 피해를 낳은 폭력과 피해당사자가 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도 제공하지 않는다. 사진사학자 야니나 스트럭은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과거의 파편(fragment)이기 때문에 그 파편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진적 이미지가 과거의 진실을 반영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오히려 그 이미지를 현재에 공개하고 전시하는 이들에 의해 언제든지 이미지의 서사가 새롭게 가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비판한다.[5] 중국 윈난성에서 30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학살당한 사건은 연구팀이 영상자료와 함께 공개한 미군 작전일지 문서자료에서 확인되지만, 공개된 시체 구덩이 영상자료가 이 문서자료 속 사건의 결과를 찍은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영상 공개는 오히려 이 영상자료에 대한 NARA 메타데이터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일본 극우 역사 부정론자들과의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 즉, 이 사건에서도 영상자료는 그 자체만으로는 과거의 파편일 뿐, ‘위안부’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증거 역할을 하거나 그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후기식민지 여성과 시체 구덩이의 응시 미디어학자 바비 질라이저는 한발 더 나아가 잔혹한 피해의 사진적 재현이 잔혹 이미지를 도상적으로 친숙하게 만듦으로써 “잔혹행위의 정상상태화(normalization)”를 초래할 수 있음을, 따라서 현재에도 존재하거나 언제든 발생 가능한 고통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6] 윤금이 씨의 시신 사진도, 일본군‘위안부’ 추정 피해자들의 시신이 쌓인 구덩이를 찍은 영상도 그들이 그와 같은 폭력에 노출되기까지 삶의 구조적, 문화적 맥락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해줄 수 없고, 단지 발생한 폭력을 도상적으로 스펙터클화하여 관람자들이 관음적으로 소비하게 만들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적인 비판에 그칠 것이 아니라 김진아 감독이 말한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의 문제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홀로코스트의 시체 구덩이와 달리 후기식민지 한국에서 바라보는 2차대전 당시의 시체 구덩이는 잔혹함의 구덩이일 뿐 아니라 어떤 실패의 상징이기도 하다. 식민 상태에 있었기에 존재할 수 없었던, 그래서 피해자들을 구출할 수 없었던 민족국가의 실패, 그리고 민족국가의 수립 이후에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7]한 가부장의 실패. 사진학자 존 택은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적 이미지가 관람하는 자와 관람되는 자(피사체) 사이를 특정한 지배와 종속의 온정주의적 관계로 봉인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 증거’라는 밋밋한 레토릭보다는 ‘경험에 관한 감정에 호소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작동하기 때문이라 말한다.[8] 파괴되기 쉬운, 구출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여성, 그리고 그러한 구출의 참혹한 실패라는 감정의 드라마가 동두천 셋방과 중국 윈난성 마을의 시체 구덩이 이미지를 향한 응시로 완성되는 것이다. <동두천>에서 사람이 없는 빈 단칸방을 VR로 보여준 김진아 감독의 ‘보여주지 않음’의 전략은 달리 말하면 빈 구덩이만 보여주는 전략, 아니 그보다는 그 빈 구덩이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실패한 ‘구출’의 대상으로 타자화, 사물화된 시체 더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 구덩이 밖에서 구출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누군가로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는 재현, 그 구덩이 속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재현. 이것은 어쩌면 일본군‘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각주 ^ 씨네21, 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PIFAN Daily, “‘소요산’ ‘동두천’ 김진아 감독, VR을 통해 여성 재현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했다”, 2021.7.1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동두천’, ‘소요산’의 김진아 감독 인터뷰”, 2021.7.17. https://medium.com/ixi-media/case-study-동두천-소요산-의-김진아-감독-인터뷰-af0277d1a246 (2021.12.17. 검색완료)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위의 글.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위의 글. ^ Janina Struk, Photographing the Holocaust: Interpretations of the Evidence, New York: Routledge, 2004, pp.212-213. ^ Barbie Zelizer, Remembering to Forget: Holocaust Memory through the Camera’s Ey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212. ^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 사건 당시 슬로건. ^ John Tagg,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Essays on Photographies and Histor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pp.8-12.

    김한상

  • 이용수 선생님 방문기 2 - ‘세렌디피티 인 대구’
    2022년 에세이 이용수 선생님 방문기 2 - ‘세렌디피티 인 대구’

    원투텐? 원투원! “아.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렛 그랜마 리 카운트 텐.” “할머니, 하나부터 열까지 세보시래요.” “하나, 둘, 셋…” 10월 25일 아침. 이용수 선생님 댁 거실은 마이크 테스트가 한창이다.  영국 다큐멘터리 취재진이 선생님을 촬영하기 위해 방문했다.  카메라, 마이크 기술 테스트. 연출자와 카메라맨이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틈에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민 선생님은 뒤에 있는 프로듀서의 팔을 톡톡 두드린다.  “<아이 캔 스피크> 봤어요?”  “노.. 이즈 잇 다큐멘터리?” 느닷없는 선생님의 말 걸기에 선생님 허리에 마이크를 채우던 프로듀서가 관심을 보인다. “노, 잇츠 무비.” 통역사가 선생님 대신 답한다. 미 하원에서 ‘위안부’문제 관련 결의안(HR121)을 통과시킨 이야기가 담긴 이용수 님에 관한 영화라고.    “와우~! 한 번 봐야겠어요.” 프로듀서의 대답을 받아낸다. 탁월한 방송 코디네이터의 감각.   원투텐? 하나부터 열까지 갈 것도 없이 ‘원투원’으로 치고 나오신다.  당신을 취재하러 왔다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아닌가. 엄한 곳으로 에둘러 가기 전에 당신이 생각하는 중요 포인트를 콕 짚으신다. 어떤 코디네이터도 능가하는 감각적인, 진격의 코디네이트.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수야 선생님은 본인의 침실 문을 스윽 열어 주신다. 화사한 병풍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 머리맡에 펼쳐진 병풍 속에는 서예를 즐기고, 한가로이 나물을 캐고, 바람결에 연을 날리는 어린 수야(용수의 ‘수’. 어린 시절 가족들이 부르던 아명)가 있다. “하도 원통해서 내가 처녀 적에 이랬다고 이걸 맞췄어.” 프로듀서는 연 날리는 모습이 제일 좋다고 했다.  다들 그림에 넋을 놓고 있는 와중에 선생님은 방의 형광등을 탁! 켜신다.  ‘조명빨’도 놓치지 않는 방송 전문가의 면모.    비비안나 다음엔 화장대 거울에 달린 십자가 목걸이로 이동하신다. 이 묵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현직 교황 프란시스의 선물이다.  교황님께 직접 선물을 받은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 진귀함에 모두가 놀랄 즈음, 십자가에 입 맞추시고 고개를 들어 “비비안나” 세례명 투척. “오, 뷰티풀.”  프로듀서의 감탄사는 어쩌면 예견된 수순일 뿐.  이것이 끝인 줄 알면 쑤야 선생님을 띄엄띄엄 안 것이다. 초록색 파우치 안에 고이 접힌 하얀 미사포를 살포시 꺼내신다. 카메라도 없이 속출하는 방송‘분량’들. 프로듀서는 이 모든 것을 나중에 다시 촬영해도 괜찮겠냐고 여쭙는다. “찍어야지. 기도하는 것도 찍어야지.” 그러라고 준비해 두신 것 아니겠는가. 단박에 촬영 하이라이트와 ‘분량’까지 코디네이트 완료! 곱은 거 이번엔 야외촬영이다. 촬영진을 태운 승합차는 시내 한복집 앞에 멈춰 섰다.  ‘금오실크’. 선생님이 자주 가시는 한복집이다. 댁에서 가까운 이곳에는 “코리안 드레스 뷰티풀-”을 외치는 또 한 명의 진격의 캐릭터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용수 선생님과 한복집 사장님은 방송을 위한 촬영 스케치에는 간단히 임하셨다. “곱은 거(=고운 것) 함 입히볼까?”  “응.”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영국서 온 프로듀서에게 대뜸 한복을 입어보라고 종용하신다.  “노노노노. 쿄오와 다분 이소가시이까라.” 일본어를 잘하는 영국 여성 프로듀서는 당황하여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오늘은 바쁘다고 완곡하지만 완강하게 거절했다. “이소가시꾸 나이. 다이조부.”   흔들림 없는 ‘그랜마 리‘의 단호한 “다이조부”(=괜찮다)로 게임 오버.  한사코 겉옷만 걸쳐보겠다던 프로듀서는 ’치마저고리‘부터 입어야 된다는 그랜마 리의 성화에 결국 탈의실로 끌려간다.   “빨리 나오세요~~!”   “아니야. 천천히~~!”  탈의실 앞에서 목을 빼고 조르는 그랜마 리와 ‘천천히~’를 외치는 사장님의 우당탕탕 주문들은 통역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촥! 촥!”  양쪽으로 커튼이 걷히고 프로듀서가 나타났다. “와~ 이뻐 이뻐…!”  가게 안은 물개박수와 탄성으로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진분홍 치마와 은박이 수놓인 흰 저고리, 화사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한복이 프로듀서와 썩 잘 어울린다.  자신들의 연출작에 뿌듯해진 두 총괄 연출가들은 “사진 좀 찍어두자”며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으시다.   오마이갓 다음 행운의(?) 코리안 드레스 모델은 카메라맨. 순순히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타국에서의 촬영 첫 날. 취재진의 긴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두 연출가 앞에서   카메라맨은 온 몸을 두른 우주복 같은 촬영 장비를 하나씩 해체하는 중이다.   남자 한복은 처음 보는 것이라 기대된다며 프로듀서도 이 ‘장꾸’(장난꾸러기) 대열에 합류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생각만해도 우섭다 “하이고 우섭다. 생각만 해도 우섭다.” 카메라맨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선생님은 연신 “재밌다”를 연발하신다.  카메라맨이 키가 큰데 과연 옷이 맞을지 궁금하다고 프로듀서도 거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이윽고 바지저고리에 도포까지 성장(盛裝)을 한 카메라맨이 등장했다. “모자! 머리 머리, 빨리 빨리.” 패션의 완성은 갓이다. 사장님의 주문에 직원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갓과 옷 여밈 장신구들을 챙겨 내온다. “까르륵 꺄르륵” “어메이징~”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터질 듯한 명랑한 소용돌이. “우째 그게 또 맞는 게 있노.” 다들 반신반의했던 의혹은 걷히고, 키 큰 카메라맨에게 맞춤한 듯 딱 떨어지는 핏. 갓을 쓴 그의 모습이 어엿하다. “양반, 양반” 어느 틈에 그의 옆에 선 선생님은 양반의 복장이라며 기념 촬영 중간 중간에 적절한 해설을 더하신다.      메즈라시이 프로듀서가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메즈라시이…” “에-엔니”   선생님은 사진을 가리키며 ‘드문, 희귀한(메즈라시이)’ ‘영원한(에엔니)’이라고 반복하신다. “아. 소우데스네. 포레버-” 프로듀서가 화답한다. 번갯불에 회오리바람 같은 ‘뷰티풀 코리안 드레스’ 런웨이는 성공적이었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오는 법. 두 연출가의 피날레 촬영이 이어진다.  앙드레김 패션쇼의 마지막 포즈, 이마가 닿을 듯 말듯 우아한 이 몸짓의 메시지는 아마도 ‘이 순간 주인공은 나야 나’. 트렌드세터 다음 행선지는 고즈넉한 한옥 마을에 자리 잡은 힙 플레이스, 카페 아눅이다. 단골 쑤(야) 선생님이 오셨다는 말에 출타 중이던 사장님이 돌아오셨다.  갓 구운 베이커리를 손수 내오신다.  선생님은 이 집의 양송이 크림 스프를 특히 좋아하신다. 오늘도 사장님은 선생님을 위해 양송이 크림 스프를 각별히 포장해 내어 주신다. 사장님은 처음엔 이용수 선생님이 ‘의외로’ 이곳을 자주 찾아주셔서 놀랐다고 한다.  트렌드세터(Trendsetter)에게 늘 따라 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의외’이다.    선생님은 이 곳에서 힙스터들과 어울리며 요즘 감성을 즐기신다.  오늘의 화제는 단연 카페 아눅 바리스타님의 타투였다. 왼쪽 팔뚝 전체에 커피나무를 새겨 넣은 바리스타님의 문신을 본 일행들은 ‘대단하다’며 몰려들었다.   조선 사람이기도 한 쑤야 선생님은 ‘좋다’ ‘신기하다’는 말 대신 연신 바리스타님의 팔뚝을 쓰담 쓰담 하신다. 2021년 대한민국을 사는 조선 힙스터의 유연한 리액션. 셀러브리티 인 대구 “그랜마 리 이즈 셀러브리티 인 대구.” (리 할머니는 대구의 셀럽이구나.)  선생님을 뵌 지 반나절도 안 되어 프로듀서가 질문인 듯 혼잣말인 듯 중얼거린다.   셀럽의 필수코스는 포토타임이다. 카페 앞에서 사진 촬영 요청을 수락하신 선생님은 시크하게 엄지와 검지를 포개 스몰하트를 날려주신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메라맨이 슬그머니 자기 손가락을 겹쳐 본다.  그의 심장도 추출 성공.  한 주먹도 필요 없고, 손가락 두 개로 심장을 꺼내 흔들며 깔깔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문득 ‘대구의 힘’이 떠올랐다.    ‘喜움’   일본인들의 ‘혼마찌‘[1]였던 종로 한 복판에 희움이 살아 있는 것도,  그 희움에서 고(故) 김순악 선생님이 “난 너거캉 지금 얘기하는 게 막 재미가 나서 죽겠다”고 하셨던 것도, 이용수 선생님이 오늘 마실을 다니시며 골백번 “재밌어”를 연발하시는 것도  다 깊은 내력이 있음을 알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끌려간 출발점인 고향을 다시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구의 생존자들은 돌아왔을 뿐 아니라 그 땅에서 웃고 떠들고 잠을 청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희움 역사관’ 등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곳에는 희움을 ‘喜움’이라 부르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응달진 날에도 뜻밖의 기쁨을 동력으로 삼는 일, 형태가 없었던 즐거움을 두 손으로 주조하는 일, 펄떡이는 심장을 움켜쥐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에 대해 이곳 사람들은 흔쾌히 ‘예’라고 말하는 듯하다.  각주 ^ (편집자 주) 本町. 일본인 집성촌

    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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