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 스타샤 자요비치 인터뷰 (1)

스타니슬라바 스타샤 자요비치(Stanislava Staša Zajović)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 게시일2023.10.04
  • 최종수정일2023.10.05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에이드리언 리치 

여성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며, 2023년 웹진 결은 해외 전시 성폭력 및 여성인권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글로벌 여성평화운동 단체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25주년에 항의하는 의미로 일군의 여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1988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처한 지역과 상황에 따라 전쟁, 군사주의와 폭력이 여성들에게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위민 인 블랙은 고정된 조직이 아니라 실질적 소통과 행동을 강조합니다. 서울의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이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의 활동가 스타샤 자요비치(Staša Zajović)를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 지금 만나 보시죠.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스타샤 자요비치

저는 1991년 창립된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의 공동 설립자이자 활동가 스타샤 자요비치(Staša Zajović)라고 합니다. 그 전신인 유고슬라비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의 마지막 모임은 1991년 6월 류블랴나에서 열렸습니다. 일찍이 1978년 베오그라드에서 동유럽 최초의 페미니스트 회의가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모두 우리의 페미니스트 유산입니다. 
 

스타니슬라바 스타샤 자요비치 ⓒRIMSS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유엔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만든 여성인권 국제규범들이 위민 인 블랙 운동에 어떤 의미를 갖나요? 가령 유엔이 제시하는 여성인권 담론 및 키워드가 위민 인 블랙 활동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나요?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가 여성인권 국제규범을 만드는 데 참여한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스타샤 자요비치

우리는 시민단체로서 국제기구 외부에서 활동하며,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93년부터 대안적인 회의들을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 국제기구로서 유엔이 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입니다. 예를 들어, 1993년 6월에 우리 중 약 20명이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전쟁에서 강간당한 보스니아 여성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권리가 곧 인권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1994년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인구회의에도 참가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아랍 국가 등에서 온 여성들과 함께 근본주의, 즉 문화적 목적으로 종교·문화유산·인종을 남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에 있었습니다. 유엔 대표보다 시민단체 출신이 더 많았고, 낙태가 여성의 인권이라는 공식적 차원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이 회의는 역사적이었습니다. 또한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광범위하고 세계적이며 위험한 운동이 일어났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근본주의자가 함께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독교 및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조직적으로 여성과의 전쟁을 시작한 상황이며, 오늘날 세르비아에서 공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바티칸에서 시작되었고, 폴란드와 크로아티아 등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세르비아에서 출산율이 낮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한 민족주의 정책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도 초대를 받았지만 끄라이나(Krajina. 편집자 주: 크로아티아 내에서 독립을 선언했던 국제 미승인 세르비아계 국가) 사람들의 추방 문제와 시기가 맞물려서 가지 않았습니다.

1993년 5월 25일은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유엔이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자행된 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를 헤이그에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헤이그전범재판소가 없었다면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어떤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지 알 수 없으므로 유엔이 한 일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 법률 전문가에 귀 기울인 유엔 대표단의 노력 덕분에 유엔이 사상 최초로 강간을 전쟁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인류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것도 매우 위대한 성취였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진행 중일 때 유엔에서 있었던 이 일은, 무엇보다 보스니아 여성과 보스니아 여성 활동가들의 시너지 덕분입니다. 그들은 유엔 관료가 아니었지만 여성의 자유에 엄중한 기여를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1998년의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또한 인도에 반한 죄에 성폭력의 개념을 확장시켜 포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로마 규정은 러시아, 미국, 중국과 우크라이나에서 비준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규정에 가입한 나라가 123개국이라는 점에서 ICC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ICC가 푸틴 대통령을 우크라이나 전범으로 기소한 데 대해 그 법령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인권 규범의 실행 여부는 지정학적 전개와 유엔에 대한 공세에도 달려 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호도 수립되었습니다. 특히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폭력을 포함한 집단 학살과 반인륜 범죄 및 전쟁 범죄에 대한 불처벌 종식과 기소 책임을 명시적으로 국가에 지우고 있는 11조 때문에 우리는 이 결의안을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엔과 그렇게 많이 협력하지 않습니다. 유엔의 힘은 주요 강대국들에 비해 많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우크라이나 항구를 통한 곡물 수출 협정을 맺었지만, 이후 푸틴은 유럽 및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한 반격으로 흑해를 봉쇄해버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에 의존하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통받았습니다.[1]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을 파괴하는 대규모의 글로벌 캠페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돈바스에서 충돌이 있었을 때 우리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여성들은 포럼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이 돈바스에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푸틴이 파견한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정치적 의도를 가졌던 것처럼, 평화유지군은 때때로 매우 모순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보스니아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성범죄 가해자였으며 위민 인 블랙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면책권 폐지 캠페인을 펼쳐 2016년 이를 채택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리아, 예멘, 우크라이나 등 모든 곳에서 더 이상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한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국제기구를 통한 평화유지군뿐 아니라 민간 평화 사절단이 우크라이나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실 내부 모습 ⓒRIMSS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전시 성폭력을 둘러싼 침묵에 관하여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1991년 김학순이 일본군‘위안부’ 경험을 증언하기 전까지 수많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 같은 문제는 여전하여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침묵하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서 침묵시위의 저항성 혹은 급진성 등에 관하여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가 생각하는 바를 듣고 싶습니다.
 

스타샤 자요비치

여성에 대한 강간은 전쟁의 의무처럼 간주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전쟁에서 입은 피해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강간당한 여성들과 함께 일해 보았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지금까지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는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낙인의 문제이며, 가족에 대한 보복, 가족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성들은 모든 차원에서 불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여성은 남편과 형제들에게 그들이 겪은 피해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사회 공동체나 국가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여성을 지키는 것이 남자의 명예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은 더욱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에서는 코소보 전쟁에 20만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저는 코소보에서 50km 떨어진 세르비아 중부에서 온 여성들과 함께 일하면서 남성들에게 코소보에서 경험한 일을 물어본 적이 있는지, 그들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르비아 여성의 30%가 가족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들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세르비아에서는 코소보 출신의 세르비아 여성이 알바니아인에게 당한 성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소보 출신의 알바니아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녀들은 세르비아인에 의한 강간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 코소보보다 세르비아에서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여성들의 경우에도 자신이 세르비아인들에게 당한 강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한국에서 전개된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흐름 중에는 콩고나 동티모르 등 다른 지역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전쟁에서 발생하는 살상과 강간은 전쟁 이후에도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가령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 및 그 2세의 문제, HIV 감염 등의 문제는 전시 살상 및 강간이 전후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진 사례입니다.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는 반전운동 이외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하는지요? 또 어떠한 형태의 직접행동을 전개하시는지요? 이상의 질문과 관련하여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가 전시 성폭력 관련 의료 및 심리 지원을 전개할 때 어떠한 전략과 방법을 취하는지 궁금합니다. 
 

스타샤 자요비치

1991년 시위를 시작한 이래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는 공화국광장에 가서 전쟁에 항의하고 전시 성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요구했고, 전시 강간을 전쟁 범죄로 인정하도록 세르비아에 압력을 가했으며, 2015년 유엔은 6월 19일을 분쟁 중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날로 제정했습니다. 우리는 매년 이날 공화국광장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합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구 유고슬라비아 친구들과 제3국에서 끊임없이 회의를 했습니다. 이는 접점과 연결 통로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는 범죄 현장 방문도 여러 번 조직했습니다. 우리는 범행을 저지른 현장을 찾아가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조문하고 장례를 치렀으며 2005년부터 특별재판소에서 전범 재판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살해당한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그곳에 옵니다. 대부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가 2005년부터 그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온 결과입니다. 

한편, 다양한 국적과 지리적 영토의 여성들이 2015년 구 유고슬라비아 여성 법정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목격자들은 ‘평화를 위한 연대의 어머니들’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스레브라니차 혹은 1999년 NATO 폭격 중에 RTS에서 사망한 아들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2] 
 
여성 법정에서 증언한 여성들은 그들만의 비공식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브라츠 섬에는 크로아티아 여성들이 독일인들에게 물려받은 집이 있는데, 모든 국적의 여성들이 매년 2주씩 그곳에서 휴가를 보냅니다. 우리는 1년에 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페미니스트 실천 아이디어 등을 함께 배우는 데 깊은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에게 엄청난 진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판 없는 사과를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화해 프로그램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상호 신뢰를 배웁니다. 화해의 개념과 실천이 의전으로 전락하고 국가공무원들의 무의미하고 공허한 경험으로 전락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RIMSS

 

각주

  1. ^ (편집자 주)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 기사들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045602.html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84479.html
  2. ^ (편집자 주) RTS(Radio-televizija Srbije)는 1929년에 창립한 세르비아 공영방송이다. 코소보 전쟁 중 1999년 4월 23일 NATO군에 의한 폭격으로 16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연결되는 글

  •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 스타샤 자요비치 인터뷰 (2)
    ‘위민 인 블랙 베오그라드’ 스타샤 자요비치 인터뷰 (2)

    페미니스트 배려 윤리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를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저질러진 범죄의 피해자를 보살피는 것이 지식과 ​​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니슬라바 스타샤 자요비치(Stanislava Staša Zajović),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2023.10.04

글쓴이 스타니슬라바 스타샤 자요비치(Stanislava Staša Zajović)

위민 인 블랙의 공동 창립자이자 활동가로,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지금도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활발히 조직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글쓴이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시즌1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시즌4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격주로 모여 국제법 관련 자료를 함께 읽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젠더기반폭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동시대적인 문제의식 속에 녹여내며 함께 공부해 왔습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국제법은 하나의 실천(조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진행해 오는 동안 한국에서는 두 건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판결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 제국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선구적인 판례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원고들의 소를 각하했습니다. 우리 세미나 팀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러 보고서와 판결문, 의견서, 포로심문서 등을 읽으면서 무력 충돌 하에서의 젠더기반폭력, 국제전범재판에서의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불처벌 문제, 범죄행위로서의 식민지배와 이에 대한 불처벌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료들을 읽어가며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떠한 문제 제기가 가능할지 고민해 온 맥락에서 이번에 ‘위민 인 블랙’ 런던과 베오그라드의 수 핀치 선생님, 스타샤 자요비치 선생님 두 분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김수용 김엘림 심아정 이슬기 이은진 이지은 장수희 장원아 장은애 조시현 홍윤신 후루하시 아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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