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사스키아 E. 위어링가 (Saskia E. Wieringa)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명예 교수

  • 게시일2020.12.07
  • 최종수정일2021.09.13

 

1965년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2015년 11월 12~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이 열렸다. 2015년은 적게는 50만 명에서 많게는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희생된 인도네시아 집단학살이 시작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인도네시아 집단학살 범죄의 가해자는 인도네시아 군대, 그리고 군대에서 지도하고 훈련시킨 여러 민병대였고, 피해자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이하 PKI) 당원이나 관련 민중 단체였다. 이들 민중 단체는 농부, 노동자, 여성, 예술가,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의 열성적 지지자, 대부분이 중국인 진보단체인 시민 협의회(Baperki)[1] 회원이었던 화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965년부터 PKI 당원(으로 간주된 자)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살이 벌어지면서 수십만 명이 수감되거나 인도네시아 부루(Buru) 섬을 비롯한 집단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수감자 대부분은 고문을 당했고, 특히 여성(과 일부 남성)은 성폭력에도 노출되었다. 집, 사무실, 학교, 개인 재산은 모두 수탈되었다. 집단 학살이라는 반인도적 범죄가 시작되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수하르토 장군은 수카르노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차지했으며 1968년 인도네시아 제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사건은 1965년 9월 30일, 중간 계급 군인들이 고위급 장군 6명(과 실수로 중위 한 명)을 납치해 살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9‧30운동', 혹은 '9‧30쿠데타'라 불리는 사건이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이들 6명의 장군을 납치해 수카르노 대통령 앞에 데려가자는 것이 '9‧30 쿠데타'의 초기 계획이었다. 당시 PKI 의장도 장군들을 납치하는 작전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이들을 살해할 생각은 아니었다. 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산당 간부와 일반 당원들은 이 작전을 알지 못했다. 의장이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살해되어 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곧 습격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듣고도 상관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았던 수하르토 장군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도네시아 집단학살의 가해자 중 어느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축출되고 1998년까지 이어진 수하르토 장군의 독재 정권 하에서는 PKI가 스스로 파멸을 자초했다며 비난하며 집단 학살의 피해자를 국가의 배신자로 묘사하는 공격적인 선전이 벌어졌다.  당시 활동했던 공산당원들과 후손들은 여전히 그러한 낙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집단학살 피해자들의 가족은 직업을 잃었고, 아이들은 대학 입학을 거부당했다. 수천 명의 공무원과 군인이 수카르노를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연금을 받지 못하고 해고당했다.

1998년, 수하르토 장군의 독재가 끝나자 집단학살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Komnas HAM)'는 2012년 보고서에서 당시 자행된 잔혹한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요약문과 함께 공개된 이 획기적인 보고서는 학살 목격자와 생존자 349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받은 법무장관실에서는 절차상의 이유를 근거로 보고서를 돌려보냈고, 지금까지 법무장관은 집단학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도 2012년에 조슈아 오펜하이머(Joshua Oppenheimer) 감독의 영화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이 개봉되고 나서야 이 비극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액트 오브 킬링>의 개봉 뒤인 2013년 3월, 인권 활동가, 언론인, 연구자 등 인도네시아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헤이그에 있는 우리 집에 모였다. 오펜하이머 감독, Komnas HAM 위원 한 명, 저명한 여성이자 인권 변호사인 누르샤바니 까챠숭까나(Nursyahbani Katjasungkana)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누르샤바니 변호사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이하 2000년 여성법정)에서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검사장을 맡기도 했다. 누르샤바니 변호사에게 2000년 여성법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참석자들은 국제민중법정을 통해 인도네시아 대량학살 사건에 관한 국가적이고 국제적 수준의 침묵을 끝내고,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을 돕고 재발도 방지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망명한 사람들과 활동가들이 누르샤바니 변호사에게 인도네시아 집단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을 조직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가 1965년 10월부터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를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목소리가 억압당하거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도록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우리는 누르샤바니 총괄 조정관,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네덜란드 헤이그 각각에 사무국을 둔 수평적 조직을 운영했다. 헤이그의 사무국은 재판 심리를 준비했다. 법정 준비를 위해 조직위원회(OC) 위원들이 이끄는 여러 팀도 만들어졌다. 누르샤바니도 자카르타 팀을 이끌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힘썼다. 인권 운동가나 피해자 단체와 함께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었고 인도네시아 검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으며 판사들에게 참여를 부탁하는 초대장을 보냈다. 정기적으로 헤이그에서 우리 업무를 감독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국제민중법정재단(Foundation International People's Tribunal)'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법정 주최 비용을 충당할 기금을 간신히 모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많은 기금 지원 기관에서는 이 문제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국제 사법 재판의 도시로 알려진 헤이그에서 민중법정을 여는 것이 좋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1965년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전경 (사진 제공: 사스키아 위어링가)

 

 

50년의 침묵을 깨다


우리는 '50년의 침묵을 깨다(breaking 50 years of silence)'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법정을 개최한 2015년은 집단학살과 PKI의 붕괴뿐 아니라 수카르노 대통령의 축출로 이어진 '1965년 사태'가 있은지 5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판사단 최종 보고서(Final Report of the Panel of Judges)는 2016년 7월에 발표되었고, 2017년에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로 공개되었다. 세계의 연구자와 활동가 40명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최종 보고서의 결론은 여전히 내용 열람이 금지된 2012년 Komnas HAM 보고서의 분석과 일치한다.

특히 최종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음의 4가지이다. 첫째, 판사단은 망명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시민권을 박탈당했다고 판단했다. 망명자들 중에는 1965년 9월 당시 해외에 있다가 인도네시아로 돌아오지 못한 공산당원들과 학생, 외교관들이 포함되어 있다. 판사단은 보고서에서 “비자발적 혹은 강제적 망명은 반인도적 행위와 별개로 상당한 규모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국가적 공격의 한 부분에 해당하며, 박해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반인도적 범죄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자발적 혹은 강제적 망명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서 반인도적 범죄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2012년 Komnas HAM 보고서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판결로 논의가 시작된다면 좋을 것이다.

둘째, 살인 조장 선동에 관해 다루었다. 특히 “공산주의자 여성들이 '루방 부아야(Lubang Buaya)'라는 들판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면서 장군들을 거세하고 죽였다”는 허위 선전을 군대가 만들고 퍼뜨렸다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판사단은 “루방 부아야에서 포로들에게 벌어졌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완전한 거짓이다. 수하르토 장군 휘하의 군 간부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고 …(중략)… PKI와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 선전전은 이들에 대한 박해와 억류, 살해를 정당화했다. 또한 앞서 기술한 성폭력과 일체의 반인도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 30년 이상 계속된 이 선전은 생존자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박해가 지속되는 데 기여했다. 폭력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허위 선전을 퍼뜨리는 것은 폭력을 행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범죄를 준비하는 행위는 범죄 자체와 별개로 논할 수 없다. 선전은 학살을 포함한 반인도적 행위를 조장했으며, 광범위한 폭력의 시작이자 일부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셋째, 검사는 다른 국가, 특히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서도 공모 혐의를 제기했다.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들 세 국가에도 법정에 출석해 변론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응한 국가는 없었다. 판사단은 공모의 정도는 다르지만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가 모두 반인도적 범죄에 연루되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기소장에 따르면 특히 미국은 “인도네시아 군대가 대량 학살과 기타 범죄 행위를 자행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도네시아 군대의 반인도적 범죄 공모 혐의를 정당화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민중법정은 집단학살의 발생 여부를 다루었다. 검사가 기소장에 집단학살 혐의를 포함하지 않았지만, 연구 보고서에서는 학살 혐의를 뒷받침하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집단학살 혐의가 기소장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집단학살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h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집단, 즉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 집단”에 속하지 않는 집단에게 '집단학살(genocide)'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데에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소장에 집단학살 혐의가 포함된다면,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다룸에 따라 이미 심한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검사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민중법정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정은 진실을 담는 아카이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정치계에서 지배적이었던 '가해자들의 아카이브'는 '피해자들의 아카이브'로 대체되거나 보완될 수 있었다. 세상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비록 가해자에게 정의를 구현하지 못했고 어떠한 보상이나 배상도 뒤따르지 않았지만, 법정을 통해 피해자와 그 가족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집단학살과 여타 반인도적 범죄를 둘러싼 침묵을 깨고 그러한 범죄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이 법정은 무엇보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누르샤바니 총괄 조정관이 국제민중법정의 개정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스키아 위어링가)

 

 

각주

  1. ^ 인도네시아 시민협의회(Badan Permusyawaratan Kewarganegaraan Indones, Baperki). 영어 명칭은 Consultative Body of Indonesian Citizenship으로 1954년 설립되었고, 이후 1965년 수카르노가 수하르토에게 실권을 이양한 후 공산당과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해산되었다.

연결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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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2000년 여성법정은 시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글은 2000년 여성법정의 영향을 받아 2015년에 열린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에 관한 이야기다.  

    사스키아 E. 위어링가 (Saskia E. Wieringa) 2020.12.07

  • 50년만의 판결, 2018년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
    50년만의 판결, 2018년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

    2000년 여성법정은 시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글은 2000년 여성법정의 영향을 받아 2018년에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에 관한 이야기다. 

    장원아 2020.12.07

글쓴이 사스키아 E. 위어링가 (Saskia E. Wiering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University of Amsterdam)의 명예 교수이며, 카르티니 아시아 네트워크(Kartini Asia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이다. 1970년대부터 세계 여러 지역, 특히 인도네시아의 여성 운동, 성정치, 동성 관계 등을 연구했다. 2015년 11월에 열린 1965년 인도네시아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에서 의장을 맡았고 법정을 공동 조직했다. 30권 이상의 책과 200편 이상의 글을 집필하고 (공동)편집했다. 최근 저서로는 누르샤바니 까챠숭까나(Nursyahbani Katjasungkana)와 공동 편집한 아시아 페미니즘의 미래(The Future of Asian Feminisms, 2012,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호라시오 시보리(Horacio Sivori)와 공동 편집한 글로벌 사우스의 성정치(Sexual Politics in the Global South, 2013, Zedbook), 마즈나 모하마드(Maznah Mohamad)와 공동 편집한 아시아 가족의 모호성과 가정 폭력: 개념, 법, 그리고 절차(Family ambiguity and domestic violence in Asia: concept, law and process, 2013, Sussex Academic Publishers), 아시아의 이성애 규범성(Heteronormativity in Asia, 2015, Sussex Academic Press), 누르샤바니 까챠숭까나와 공동 집필한 인도네시아의 선전과 집단 학살: 상상된 악(Propaganda and the genocide in Indonesia: Imagined Evil, 2018, Routledge)이 있다. 최근에는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인도네시아의 여성 동성 관계와 1965년 이후 자바 동부의 폭력을 중심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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