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디엠(Mardiyem). 1929년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서 태어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942년 연극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보르네오에 갔다가 뜰라왕(Telawang)에 있던 위안소로 끌려가 21명의 자바 출신 여성들과 '위안부' 생활을 하였다. 위안소에서 '모모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5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공론화한 최초의 인도네시아 여성이다. 인도네시아 활동가 에카 힌드라티(Eka Hindrati)와 일본 연구가 기무라 고이치(Koichi Kimura)가 쓴 『그들은 나를 모모예라고 불렀다(Momoye: Mereka MemanggilKu)』(에센시(ESENSI), 2007년)에 마르디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로타 스즈코(城田すず子 가명, 1921~1993). 일본인 '위안부'로서의 경험을 증언한 피해생존자. 대만, 사이판, 축섬(트럭섬), 팔라우의 위안소를 전전하다 일본이 패전하자 1946년 3월 미군 군함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1971년 위안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마리아의 찬가(マリヤの賛歌)』를 출간했다. 이후 시로타는 함께 '위안부' 생활을 했던 여성들이 매일밤 꿈에 나타나 견딜 수 없다며 위령탑을 세워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것이 알려지며 모인 기부금으로 1985년 일본 지바현 소재 가니타산에 '아아 종군위안부(噫従軍慰安婦'라는 '위안부'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0년에는 한국에서 방송된 〈광복45주년 특별기획: 태평양전쟁의 원혼들 제2편 침묵의 한〉에 출연하여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1993년 작고했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속여 일본 여성을 중국 상하이 소재 해군 위안소로 끌고 간 일본인에게 1936년 일본 나가사키 지방재판소가 유죄를 선고한 판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유죄로 인정하고 가해자를 처벌한 판결로 주목받았다. 전쟁 당시 이미 일본 사법이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의 문제를 범죄로서 재판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2004년에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 변호사가 당시 재판 판결문과 공소판결문을 나가사키 지방검찰청에서 찾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신대연구회가 발간한 세번째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증언집 1, 2권과는 다르게 사투리, 구어체 등 피해자들의 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하여 피해자들의 정서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함께 강제로 동원되어 남양군도 파라오에서 군생활을 했던 홍종태 씨가 경험하고 목격한 위안소 및 '위안부'에 대한 증언도 담았다.
일본의 구헌법(메이지 헌법) 하에서는 국가의 공권력 행사로 인해 손해가 발생해도 개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법리. 위안소의 설치와 '위안부'의 동원 등은 국가배상법과 현행 일본 헌법의 시행 이전에 이루어진 행위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배상 책임을 국가에 물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의 근거로 사용되었으며,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 문제와 함께 전쟁 피해자 배상 요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일본 군인들이 남긴 수많은 회고록을 통해 확인하는 '위안소'의 역할과 기능
타이완척식이 작성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서로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의 문제를 살펴본다.
일본군의 업무일지 「적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군당국의 위안소 설치 과정과 관여 정황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국이 수행한 역할과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최근 관련 문서와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자료 등을 소개한다.
일본 공창제의 역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국가 차원의 책임
중국 잡지를 통해 보는 연합군 구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모습 만삭의 임산부를 포함해 네 명의 일본군’위안부’ 모습을 담고 있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1944년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촬영한 것으로, 이 사진 속 임산부는 잘 알려진 ‘위안부’ 피해생존자 박영심이었다. 구조돼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상하이 훙커우구에 소재한 4곳의 일본군 위안소 유적지 답사기
최재인 (얀 루프-오헤른,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번역자)
1919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나, 1935년 16세에 칭다오와 상하이에 10년간 동원된 박우득의 이야기
이 글은 『빨간 기와집 –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의 저자 가와타 후미코가 만난 배봉기와 오키나와의 '위안부'들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