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 마이클 혼다 미 하원 의원이 발의하였으며,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결의안은 '위안부' 제도를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공식적인 사죄 및 책임 인정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많은 일본계 미국인 교민사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미국에 있는 자산이 동결됐다. 당시 미국은 증거가 부족하고, 일본계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시민권을 가진 2세였음에도 사보타주범이나 간첩으로 활동할 가능성을 의심해 1942년부터 강제 이주를 실행, 1945년 말 폐쇄되기까지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이 최대 3년 동안 강제 수용돼 고통을 겪었다. 2011년 수용소 부지에 당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박물관인 ‘하트마운틴해석센터’가 개관했으며,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배상에 이어 2022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 9066호를 통한 강제 구금에 대해 사죄한 바 있다.
리틀빅혼 국립전쟁기념지(Little Bighorn Battlefield National Monument)몬태나주 크로우 에이전시(Crow Agency) 인근에 위치한 이 국립공원은 1876년 리틀빅혼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미국-아메리카 원주민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블랙힐즈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영토를 침탈당한 라코타·샤이엔족은 생존을 걸고 맞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제7기병연대를 전멸시켰다. 평소 부족 단위로 흩어져 있던 원주민들이 힘을 합쳐 거둔 이 승리는 미국 육군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승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대규모 보복과 토벌을 불러왔고, 결국 평원 원주민의 저항이 꺾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양측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1992년 4월 29일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인종 폭동을 말한다. 당시 한인타운으로 몰려간 흑인 시위대의 약탈과 방화로 피해가 막대했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한인들의 물질적·정신적 피해가 컸던 배경에는 당시 미국 사법 당국과 지역 언론들이 폭력적인 경찰,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 미국 사회의 근본 문제보다 한인-흑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일명 국민기금)에서 발간한 ‘위안부’ 문제 관련 보고서. 1996년부터 1999년에 걸쳐 와다 하루키, 하타노 스미오 등 6명의 일본인 역사학자와 1명의 미국인 역사학자가 작성한 연구 보고서로, 한국, 미국, 일본,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의 자료 연구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3부. 미 전시정보국(OWI) 49번 보고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1부. 연합군번역통역부(ATIS) 조사보고서 제120호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2부. 연합군번역통역부(ATIS)가 생산한 포로 심문보고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4부. 동남아시아 번역통역부(SEATIC) 심문회보 제2호
이들의 몸을 횡단하는 방사성 물질은 이들의 몸속 세포만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딸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을 요구받는 여성들의 삶을 굴절시켰다. 한국 여성 원폭 피해자의 생애사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신체에 갊아 있는 민족과 국가, 원폭증 장애, 그리고 가족과 여성이라는 굴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징 윌리엄스 교수는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여성 인권 옹호자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위안부' 교육을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초국가적 여성인권 운동으로 자리매김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인권운동은 큰 힘이자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일본군‘위안부’ 역사 현장을 방문한 한 미국 역사교사의 소회와 ‘어려운 역사’를 가르치는 이의 태도와 책임
미국 최초의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주도한 제이슨 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과 세계화를 위한 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