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용기, 서로의 증언자”

윤경회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5.07.02
  • 최종수정일2025.07.02

"우리는 서로의 용기, 서로의 증언자"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의 윤경회 간사 인터뷰 2부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 통념, 법적 권한의 한계와 함께 조사 의지를 가진 주체가 형성되지 못한 탓에 결실을 맺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2018년 9월 14일부터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이듬해 12월 2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조사를 위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사건의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치유와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첫 발걸음이었다. 2024년 6월 종합보고서를 제출하며 활동을 종료한 '5·18조사위'는 한계가 있었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에 부합하는 사실 자료와 정황 증거를 토대로 피해 실태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남겼다. 이 과정에 조사팀장으로 참여했고, 이어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 결성의 주축이 된 윤경회 간사와 '5·18조사위' 및 '열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  치유회복을 통합한 국가폭력 조사의 길을 열다
(2) “우리는 서로의 용기, 서로의 증언자”

 

[사진 1]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사진 제공 : 열매)

 


묻지 않았기에 말하지 못했을 뿐, 남성 성폭력 피해자도 많다

🧶 윤경회 : 연행하고 구금,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피해가 많았습니다. 취조하고 진술 조서를 작성하는 전남합동수사본부 조사실에서, 구금 시설로 호송되던 중 차량이나 여관에서, 가택수색 과정에서 피해가 있었어요. 당시 남성들은 완전히 복종하도록 아예 속옷까지 벗겨진 상태로 취조를 받았고요.

Q :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남성도 많았겠네요. 

🧶 윤경회 : 네. 저희 보고서에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 한 남성의 참고 진술도 담겼어요. 연행된 남성들은 폭도로 몰려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로 취조를 받았는데, 현장에서는 '빨갱이 ○○를 낳을 바에 못쓰게 해야 한다'며 성기를 짓밟고 막대 같은 자로 치기도 했는데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는 증언이었어요. 분명한 성고문, 재생산권 침해 피해잖아요. 그때 저희가 왜 이런 부분에 대해 조사를 신청하거나 진술하는 남성이 없었는지 여쭤봤어요. 그런데 그분이 거꾸로 저희에게 그동안 청문회를 비롯해 여러 자리에서 많은 증언을 했지만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도청을 사수했던, 목숨을 건 용감하고 정의로운 시민군에 대해서만 들으려 했던 우리 사회의 통념이 남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묻었다고 생각합니다. 

 

 

5가지 신체적·정신적 피해 유형과 '생애사적' 피해

Q : 묻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남성 성폭력 피해 또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꼭 되짚어야 할 지점이네요. 

🧶 윤경회 : 맞습니다. 그렇게 피해자 중심의 서사적 진술 청취를 통해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확인됐고, 그 책임은 국가를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진상 규명은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선 안 되잖아요. 핵심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의 '핵심 장면'과 '감각 기억'을 언어화하는 작업에 이어 그에 부합하는 사실 자료와 정황 증거, 그러니까 군·경 등의 작전기록, 참고인 진술과 유사 피해 사례를 확보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동시에 당사자가 피해 발생 장소에 없었음을 입증하는 자료 등 핵심 진술을 배척하는 기록과 정황 증거까지 교차 확인했고요. 

이런 핵심 진술 분석 작업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강간 및 강간미수, 강제추행, 성고문, 성적 모욕 및 학대와 함께 유산과 자궁적출 등 재생산권리를 침해한 재생산폭력까지 피해를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5가지 유형 모두 신체적 위해인데, 이는 정신적으로도 돌이키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겼어요. 사건 직후의 충격과 고통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 무렵의 정조 관념에서는 피해가 드러나면 인생이 끝나는 일로 여겨져서 이를 숨기고 원치 않는 결혼을 서두르고, 결국은 나중에 그것이 가정폭력의 빌미가 되고마는 경우도 있어요. 숨겨야 하는 약점이 있다는 '정체성' 피해는 대인관계를 어렵게 해 학업이나 직장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와 함께, 앞서 조사 재설계 단계에서 추가됐다고 언급한 '사회관계적 피해' 또한 '5·18조사위'의 중요한 확인 대상이었습니다. 사건 후 43년이 지나는 동안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생애사적' 피해를 포함시키지 않는 진상 규명과 배·보상은 '피해자 중심주의'일 수 없으니까요. 실제 피해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례만 말씀드릴게요. 대검에 찔려 하혈을 계속 하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해 자궁을 적출했던 여성은 이후 애인에게 버림 받고, 아버지에게 떠밀려 미국으로 갔어요. 남동생이 농촌지도자상을 받는데 방해가 되고, 동네에서도 '위험'하다며 쫓겨난 거예요. 그렇게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이 민주화되면서 배·보상의 기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하셨어요. 그런데 의료 기록이 없다며 대검에 의한 자상과 자궁 적출 피해가 인정되지 않았어요. 피해자 등급을 구분하는 구금 일수(38일)와 소견서를 적용하니 경미한 편에 속하는 12등급을 받으셨던 거예요. 제때 치료받지 못해 자궁을 적출해야 했는데 의료기록이 없고, 국가는 입증 자료가 없다며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죠. 그분은 그 과정에서 큰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어요. 결국 이분 덕분에 명예회복과 배·보상에 생애사적 피해를 포함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게 되었어요. 향후 4·3항쟁, 부마항쟁 등 비슷한 피해가 있었던 국가폭력 역사에서 국가의 태도와 책임을 설정하는 데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진 2] 윤경회 간사 ⓒpopcon

 

 

'상황'과 '처지'에 맞는 피해 판단 기준 중요… 
성과는 누적·중첩된 증언으로 국가 책임 규명한 것

Q : 이번 '5·18조사위' 활동과 보고서는 국가폭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 중요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하신 것 같습니다. 피해 판단 기준을 새로 설정한 부분도 특별한 접근으로 보이는데,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 윤경회 : 저희는 '5·18 성폭력 피해자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한 조사 방법과 판단기준'이라 표현했는데, 5·18 피해와 연결하면 압도적인 공포 상황에서 빚어진 국가폭력과 그에 따른 트라우마, 그리고 1980년 당시의 사회적 통념과 여성에게 적용된 정조 관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런 상황과 처지에 놓인,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마저 재구성될 수 있기에 피해 여성이 세련되게 증언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그래서 피해자의 '감각 기억'과 '핵심 장면'을 서사적으로 듣고 조사 주체가 언어화하는 거예요. 이와 함께 기록과 증언, 유사 피해 사례 등을 찾아 핵심 진술에 부합하는 사실관계와 진술뿐 아니라 배척하는 것까지 확인해 증언의 개연성을 확인하는 절차도 필수적이고요. 

요약하면 '피해자를 억울하지 않게 한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배척하는 자료보다 옹호하는 자료가 더 많으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자는 기준이에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엘살바도르의 진실화해위원회가 제시한 '증거 우위'라는 기준점을 차용한 것입니다. 

Q : 아울러 관련 조사를 이끈 입장에서 진단하는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 윤경회 : 저희의 조사 대상은 19건, 심의·의결 결과 진상규명된 사건은 16건인데, 청취한 생존 피해자는 21명이었습니다. 이들의 피해 사실과 사건 후 생애사적으로 누적되고 중첩된 신체적·정신적 후유증과 사회관계적 2차 피해에 대한 진술을 얻은 점이 가장 큰 성과일 겁니다. 이 진술이 곧 사건의 개연성을 떠받치는 '패턴 증거'이자 피해자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 정보까지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할 것, 피해자의 치유와 명예회복, 보상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 등 '11개 대정부 권고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내용과 활동 과정을 담은 백서 등은 5·18기념재단의 누리집에서 볼 수 있어요. 더불어 피해자 중심적 접근 원칙을 조사의 목적, 조사 방법과 판단 기준, 조사관이 피해자를 보는 관점과 태도까지 조사의 전 과정에 적용하고자 했던 '5·18조사위'의 노력과 경험도 향후 유의미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계는 여러 이유로 조사하지 못한 미규명 사건이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연행·구금·조사 과정에서 '성적 모욕 및 학대'와 '성고문'을 당한 남성 피해자 건을 비롯해 조사 회피와 거부로 인해 조사가 중단된 23건[1], 피해자의 사망과 자살, 정신병 발병 등으로 진술 청취가 불가능했던 10건, 그 외 조사과정에서 추가 확인한 피해 사례가 있는데, 기존 전수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건이었습니다. 향후 새로운 과거사위가 출범하면 조사할 수 있도록 '미규명 사건'의 유형을 구분해 보고서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서로가 너무 감사한 존재"…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 결성되다

Q : 종합보고서를 제출하는 순간 '5·18조사위' 활동도 종료된 건가요?

🧶 윤경회 : 조사위 활동 마무리 시점은 대정부 권고사항을 포함한 종합보고서를 대통령실에 보고한 2024년 6월이었습니다. 그리고 「5·18진상규명법」은 권고사항을 소관하는 국가기관의 장에게 대통령실과 국회에 종합보고서가 보고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당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계획 또는 조치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고, 이행하지 않은 경우 이유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위의 대면보고 요청을 대통령실에서 거절해 공직자 전자결재시스템을 통한 서면보고에 그쳤고, 이후 관계부처에 이행계획 수립을 지시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이 또한 남겨진 과제인 거죠.

진상규명 결정 후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에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를 개최했어요.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상담 받고 약을 먹어도 몽롱해지기만 하지 도움이 안 되었다'고 하시며, '나랑 같은 피해 입었다는 사람들 얼굴 한 번 보고 싶소'라고 하셨거든요. 긴 말 안해도,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것 같다면서요. 먼저 요구하시는 데다 동병상련의 피해자들이 소통하다 보면 회복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2024년 1월 '5·18 성폭력 피해자 대상 종결상담 및 간담회 추진 계획'을 수립해 4월 28일 첫 만남이 이뤄졌어요. 피해자 열 분과 연구자, 조사 활동 관계자, 광주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한 간담회에서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라는 말이 나왔어요. 피해자들의 증언은 무덤 같은 세월을 이겨낸 용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증언이 모여 43년 간 은폐된 진실에 대한 국가 책임이 인정된 거잖아요. '그때 공용터미널에서, 수창초등학교 앞에서 나도 그랬어'라는 증언이 모여 서로의 피해를 입증하는 정황 증거가 됨으로써. 이러한 집단적인 증언은 피해 발생의 패턴과 유형도 드러나게 했고요. 각자가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피해자이자 목격자, 참고인이자 증언자니까 서로가 너무너무 소중한 거죠.

Q : 그 자리가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출발이 된 거군요.

🧶 윤경회 : 네, 간담회에서 계속 만나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그냥 눈만 봐도 서로 어떻게 살아왔을지 너무 알겠으니까! 그래서 서로 연락하고 만날 수 있도록 SNS 단체대화방을 만들어드리고 저희는 빠지려고 했어요. 근데 앞날이 예상되니까 머리가 아파왔어요. 법적 조력을 받는 일도,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 분들이라 활동이 이어지기 어렵겠더라고요. 상의를 거듭하다 2024년 8월 29일, 16명의 피해자와 가족을 구성원으로 하는 '열매' 결성식을 가졌어요. 이날 어릴 적 정신병동 입퇴원을 반복하던 엄마를 원망하고 부담스러워했던 어느 피해자의 딸이 엄마의 피해사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버티고 살아준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전했어요. 모두를 울릴 만큼 감동이었어요. '열매'는 조사팀장인 제가 간사를, 전문위원이 상담자 역할을 맡아, 매달 증언 형식의 치유회복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월 말에는 국회 등과 입법 과제나 후속 활동을 공유하는 '증언대회-용기와 응답' 행사도 가졌어요. 간담회에서 기운을 주고받으면서 경험한 정체성 변화에서 힌트를 얻어 대중 공간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거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증언대회 역시 감동적이었어요. 피해자 집단이 공론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거잖아요. 참석자들은 '열매'의 용기를 지지하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죠. 국회의 응답을 요구하며 연대의 의지도 보여주셨는데, '열매' 분들이 얼마나 감격하셨는지 모릅니다.

 

[사진 3-1] 5·18 성폭력 피해자 열 분과 연구자, 조사 활동 관계자, 광주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2024년 4월 28일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제공: 열매) 

[사진 3-2] 5·18 성폭력 피해자 열 분과 연구자, 조사 활동 관계자, 광주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2024년 4월 28일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제공: 열매)

 

 

계엄 선포 후 도청 간 피해 여성…
5·18 속 여성의 역사 찾기도 과제

Q : 또 다시 공명의 순간, 서로 치유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자리였겠습니다.

🧶 윤경회 : 맞아요. 증언대회를 계기로 열매는 세 가지 활동 방향을 정했어요. 하나는 피해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함께 치유회복의 길을 찾아가는 것, 두 번째는 법적 지원 방안을 포함해 피해에 부합하는 배·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 마지막으로 유사한 국가폭력에 의한 성폭력 과거사 문제에서 '깃발 같은 역할'을 할 것 등이에요. 사실 5·18 피해 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4·3항쟁 피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어요. 공적인 치유 여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갈 지 고민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열매'의 활동이 1980년 광주보다 더 먼 과거사 성폭력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푸는 일과 연결되리라는 겁니다.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했던 여성들의 역사도 재조명되고, 주목받았으면 하는 기대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공적 담론의 장에 등장한 경우는 이번 '5·18조사위' 활동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외에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고정돼 있어요. 40~50년 시간을 소거한 채 어디서건 피해 당시의 험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요구받아요. 사실 사건 후 생애사가 더 힘든 경우도 있고, 힘들었던 경험이 진취적인 자각으로 연결돼 개인을 성장시키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변화무쌍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여성으로 '열매' 분들의 이야기를 청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지난해 연말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됐잖아요. 조사과정에서 피해자분들에게 여쭤본 적이 있어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실 거 같냐고? 시신을 수습하고 5월 27일 도청에 남아 연행된 피해자들이 '5·18 때문에 인생이 힘들었지만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실제 계엄이 발생하자, '열매' 분들 중에 가장 연세가 높고 휠체어를 타고 모임에 오시는 분이 계엄 선포가 있던 날 택시를 타고 도청 앞으로 가셨더라고요. 그분은 당시 광주에서 남편과 사진관을 운영하던 중에 시위가 격렬해지고 사망자가 급증하자 현장을 찍어 기록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활동을 하신 분이셨어요. 유방과 회음부가 훼손된 시신에서 나온 벌레들이 떠올라 7년 가까이 하얀 쌀밥을 못 드셨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하세요. 남편은 증언과 사진으로 알려졌지만 아내는 군인들에게 입은 피해를 드러내지 않으려 입을 닫았고, 때문에 그분이 기여했던 역사도 묻히고 말았어요. 그런 분이 계엄이 선포되자 또 다시 도청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신 거죠. 그런 분을 단순히 과거의 피해자로만 기억하는 것이 정당한가 묻게 됩니다. 이러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 기록하는 것이 곧 우리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겠구나, 이분들과 탄핵 광장을 빛냈던 젊은 세대가 함께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4] 2024년 9월 30일, 국회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를 개최했다. (사진 제공 : 열매) 

 

 

'미투' 서지현 검사와 안고 울다

Q : 우리 사회에 '미투(Me Too)' 열풍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와 피해 여성들이 만나는 자리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윤경회 : 아, 그 사연도 정말 극적인데, 2018년 공동조사단이 발족하고 이어 '5·18조사위'가 출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5·18민주화운동 38주기를 열흘 가량 앞두고 나온 김선옥 님의 미투였어요. 5·18 당시 수사관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그 분이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용기를 얻어 증언을 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서 검사의 미투가 김선옥 님의 미투를 낳았고, 그로 인해 '5·18조사위'의 조사와 진상 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거예요. 

'열매' 모임에서 자연스레 서 검사를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무렵이 서 검사가 엄청 힘든 때였어요. 본인의 모든 것을 걸고 미투를 하고, 싸움을 시작했는데 모든 소송에서 다 패소한 상태였거든요. 조심스럽게 서 검사에게 '열매' 결성식에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감사하게도 서 검사로부터 '고맙고, 만나고 싶다'는 답변이 왔어요. 서 검사에게도 '열매'의 소식이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고 해요. 결성식은 말 그대로 '서로의 증언자'가 함께 하는 자리였어요. '열매' 분들과 서 검사가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어요. 한 사람의 용기가 집단의 용기와 응답으로 이어지고, 과거의 증언이 좌절한 피해자의 오늘을 응원하는 경험이었죠.

Q : 이렇게 넓고 깊이 있게 '5·18조사위' 활동과 '열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활동이 간사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또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활동해 나가실 지 궁금합니다.

🧶 윤경회 : 저는 솔직히 개인적으로 약자나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고, 실제로 조사위나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위 '명예 남성'으로 살았을 확률이 높았을 거예요. 그런데 상처받고 약한 개인들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발화를 통해 서로를 살리는 모습을 목격하며 약하고 강하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어요. 침해당하고 무너졌던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를 딛고 기대고 어루만지며 일어나는 것, 그것만큼 강한 것이 또 있을까 배우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열매'와 함께 걸림돌을 디딤돌로 전환하며 걷다 보면 해원 같은 축제를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위해 과거사 진상조사와 치유회복을 통합한 상설 정부조직을 상상해보기 시작했어요. 10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진 5] 윤경회 간사 ⓒpopcon

 

 

Credit

인터뷰어 : 소현숙, 손정미
인터뷰이 : 윤경회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5년 5월 9일 금요일 

 

편집자주

  1. ^ 24건 중 1건은 피해자가 알츠하이머로 진술이 불가했으나 과거 검찰 조사기록으로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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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경회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의 간사이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6월까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조사를 담당한 조사4과 3팀장으로 일했고, 진상규명조사보고서를 펴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 업무를 수행했고, 고양성폭력상담소에서 일했다.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ditorial Team of Webzine <K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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