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한나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폭력에 대항하는 법』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는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참석하셨는데요. 신진 연구자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고 책에 담긴 문제의식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법』은 일본군‘위안부’문제는 물론 여성 폭력의 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는데, 이 책이 다양한 관점과 사유의 지점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자기 소개를 간단히 나누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오늘 좌장을 맡게 된 저는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3학기)에 있고, 근대 한국 농업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식민지기를 전공하는 여성 연구자라면 반드시 알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좌담에 참여했습니다.
이태준 : 건국대 통일인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대학 시절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일본군‘위안부’ 여성의 주체화 과정과 사회적 성원권 연구: 이용수의 삶과 투쟁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스피박의 서발턴론 등을 공부하면서 탈식민주의와 젠더, 페미니즘부터 여러 국가 폭력과 사회적 참사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잘 배우고 있는지 회의하고 궁금했는데, 오늘 토론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최낙은 : 고대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석사 수료했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미투 운동, 페미니즘 운동이 엄청 활발했어요.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나고 보니 학과 페미니즘 소모임의 첫 남성 회장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때 기억이 많아서인지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면서도 페미니즘과 교육 분야를 공부해 왔고, 연결해 논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황민정 : 안녕하세요. 이번에 연세대 사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어요. 학부 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여성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대학원 전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냉전사와 외교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지연 : 저는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재일조선인 여성사 전공을 희망하고 있는데, 부끄럽게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는 좀 회피해 왔습니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봐야한다는 인식이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모르면 더 알려고 애쓰는 것이 연구자의 본분이라 생각해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곽한나 : 네, 모두 반갑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법』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부는 피해자들의 기억과 증언 등 언어에 관한 문제를, 2부에서는 인도네시아, 타이완, 오키나와 등 전후에 이어진 폭력의 연쇄와 그에 대항하는 흐름을, 그리고 3부에서는 독일의 전시 성폭력에서 남아공의 페미사이드까지 과거와 현재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폭력을 어떻게 대면할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지연 : 우선 1부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볼게요. 첫 번째 글인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의 ‘폭력과 관계성으로서 언어의 시작’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사죄나 배상에 필요한 ‘사실 확인’을 위한 근거로만 축소해 취급하는 태도를 문제 삼아요. 이러한 태도가 피해자를 다시 ‘말 없는 공간’으로 내쫓는 제2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행위가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어서 니콜라 헨리 선생님은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이하 ICTY)’에서의 판례들을 사례로 오늘날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법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루고 있어요. 증거주의와 감정적인 언어의 통제, 공판 과정에서 반대 심문의 적대적 진술 등 법정에서의 구조가 트라우마를 가진 피해자의 언어를 무력화하거나 오히려 신뢰성을 공격하는 무기로 남용되는 실태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혜림 선생님은 2020년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실감형 인터랙티브 전시 프로젝트 <영원한 증언>에 관하여 논합니다. 증언을 보다 많은 청자와 만나게 하기 위해 피해자의 증언에 AI, VR 실감형 기술을 결합한 이 전시에 우리가 놓친 위험성은 없는지 질문하고 있어요.
곽한나 : 송혜림 선생은 이미 대화형 AI 인터랙티브 전시인 <영원한 전시>의 의미를 분석해 웹진 <결>에 소개하기도 하셨는데, 기술의 급변하는 환경에 놓인 후속 세대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1부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공유해 볼까요?
황민정 : 저는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안다는 것’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에는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 인용되고 있는데,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안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되풀이해 읽었어요. 사실 역사 공부가 시대적 이슈, 쟁점, 갈등을 들여다 보는 과정이다 보니 중간중간 기가 빠지거나 피폐해질 때가 있어요. 전쟁과 폭력처럼 정신적으로 소모가 큰 주제는 접어두기도 했고요. 연구자로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거 같아요. 폭력의 흔적인 상처를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음에도 알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읽으며 깨달았어요.
이태준 : 저도 완전히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앎의 과정이 곧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짊어질 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이라 힘겨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고민의 과정을 생략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일본군‘위안부’문제에서도 쉽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지 않나요? ‘자발적으로 갔다’는 우익의 문제적 발언은 물론이고 ‘강제성이 없다는 거냐’면서 이분법적 논의로 몰고 가는 게으른 물음이 계속 되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주 밖에 놓인 피해 생존자의 생애를 들으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낙은 :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때로 정확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가 가진 위험성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태준 : 그리고 그 ‘안다’는 게 피해 생존자의 생애 전반이 아니라 고정된 피해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저 또한 피해 생존자가 겪었을 다양한 경험을 듣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어요.
황민정 : 저도 피해자들이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상상을 안해 봤거든요. 제가 못 들은 걸 수도 있는데, 결국 들으려는 귀가 없었던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몇 편 찾아봤는데, 그때도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어떻게 헤쳐나오려 했는지 등에 집중해 봤더라고요. 할머니들이 다채롭게 살아오신 삶의 측면이 있는데…. 듣고 싶은 증언들만 딱 들은 느낌이었어요. 피해자의 삶에 제대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증언을 충분히 들으려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곽한나 : 니콜라 선생님이 제기하신 ‘증언의 불가능성’은 특히 법정에서 도드라지는 것 같아요. 예의 바르게, 조리 있게 순서를 갖춰서 말해야 증언으로서 신빙성과 가치가 있다는 도식이야말로 법정 언어라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잖아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증언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어요?
이지연 : 증언이 폭력을 증명하는 핵심 증거인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역으로 가해 측이 무기로 삼는 일이 가능해져요.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대규모 강간 사건을 다루는 ICTY 재판에서 피고, 그러니까 세르비아인 측 변호인이 ‘증인이 했던 최초의 진술에서 첫 번째 강간 사건을 구체적으로 증언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 그녀가 신뢰할 수 없는 증인임을 시사한다’고 한 주장이 그에 해당해요. 법정이라는 낯설고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자신의 피해를, 그것도 내밀한 고통을 상세하게 밝히는 것 자체가 부당한 경험, 또 다른 가해인데, 더욱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법정 구조는 폭력일 수 있는 거죠.
이태준 : 저도 그 부분을 보면서 좀 화가 났어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하 PTSD)가 있으면 증언을 신뢰할 수 없으니 피해자가 될 수 없고, PTSD가 없으면 피해 자체를 인정받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형사재판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실망과 좌절의 연속일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인정과 존엄을 찾으려는 바로 그 사람들을 약화시키는 부정의와 폭력의 노골적인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진단은 정말 예리합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또한 법정에서 다루어져 왔는데요. 법정에서의 증언 과정과 그 한계까지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곽한나 : 증언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법정에서의 기능, 즉 증거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분명히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드러냄으로써 치유가 되는 경험도 있잖아요.
최낙은 : 맞아요. 공공에서 프로젝트와 연구를 지원하고, 민간에서도 꾸준히 했던 할머니들의 생애 구술 작업이 떠오르는데, 인권 활동가로도 활동하신 할머니들을 보면 구술 증언 자체가 중요한 기록일 뿐 아니라 상처를 말하고 드러내면서 더 당당하고 용감해지시는 계기가 된 것 같거든요. 그런데 말하고 드러내는 일과 듣고 공감하는 것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말하는 피해자의 경험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돕는 과정에 연루된 이들,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경험도 함께 말해지면 좋겠어요. 다양하게 연루된 이들의 증언까지 더해지면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연결될 수 있고, 피해자의 특정 순간만 희생자화 하지 않으면서 생애사적으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지연 : 공감합니다. 사실 피해자의 삶을 생애사적 맥락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와 연결성을 좀 더 강화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하면서 폭력의 아픔을 공감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 국가, 외교적인 해결 등 개인의 힘으로는 어떠한 힘을 줄 수 없다고 거리를 두곤 합니다.
곽한나 : 그렇게 보면 피해 생존자와 관계 맺기는 미래 세대에겐 더더욱 막연하게 다가오는데요, 그 고민이 뻗어나가는 지점에 송혜림 선생님의 글이 있어요. 연로하신 할머니들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앞으로 우리 후세대는 할머니들을 어떻게 만나고 ‘위안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기술을 활용해 피해자와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글이나 영상의 한계를 기술을 통해 보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영원한 증언>은 대화형 AI와 VR기술을 통해 관람객이 스크린상에 ‘위안부’ 생존자 영상과 마주하여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한 실감형 인터랙티브 콘텐츠인데요. 송혜림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기술을 통해 당사자와 상호작용이 얼마나 가능할 지 궁금해졌어요.
황민정 : 제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일 수 있는데, 솔직히 AI로 구현한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요. 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인간과 유사하지만 분명히 다른, 로봇 같은 대상을 볼 때 느껴지는 섬뜩하고 이질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생생하게 구현해 놓아 실감은 나지만 진짜 상호작용하는데 도움이 될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곽한나 : 저도 비슷해요. 연구자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과 실감하고 교감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송혜림 선생님의 글에서 <영원한 증언> 전시에서 음성 인식이 잘못되거나 관람객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이 나올 때 큐레이터가 ‘할머니의 귀가 어두워서’라고 표현한다는 대목에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정밀하지 못한 기술의 한계를 할머니의 신체적 노화로 대치시키는 거잖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술적 발전이 잇따르지만 현실적으로 AI나 VR을 이용한 대화형 증언 콘텐츠가 다양한 이용객의 질의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특정 ‘피해 상태’를 고정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기술적 성취나 시도에 대해 제가 너무 부정적인 걸까요?
최낙은 :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지점이 보이기도 해요. AI를 이용한 실감형 프로젝트를 실험한 이유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바로바로 출력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잖아요. 예를 들어 증언집이나 구술 자료집을 읽을 때 궁금한 내용을 찾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돼요. PDF 파일에서 검색해 찾는다 해도 최소한 앞뒤는 읽어야 맥락을 알 수 있고요. 근데 도덕적으로 진실인가, 얼마나 윤리적으로 매개하는가 하는 질문과 별개로 기술적으로 잘 가공되고 편집된 콘텐츠는 가장 효율적으로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제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교육 분야에서는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이지연 : 요즘 저부터 텍스트가 눈에 잘 안들어와요. 이런 상태를 겸허히 시인하고 이야기를 하자면, 일종의 입문용으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텍스트로만 이뤄진 것보다 미디어 매체 같은 속성 때문에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다만 AI 기술을 활용한 재현이 페이크 영상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당사자주의’일 텐데, <영원한 증언>이 그만큼 할머니들의 풍부한 증언을 확보했는지, 그러니까 당사자성을 제대로 구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이었어요. 너무 조급했었나 싶기도 하고요.
이태준 : ‘AI-증언’을 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폭력에 특히 예민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AI-증언’을 만드는 이유에는 할머니들이 사라진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과 두려움, 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종의 죄책감까지 녹아 있다고 보거든요.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은 피해 생존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식민 트라우마의 당사자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라도 기억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는 동력으로 작용했을 거예요.
황민정 :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가 참고한 쇼아재단의 ‘DIT(Dimensions in Testimony. 증언의 차원. 3차원 홀로그램 영상과 자연어 처리 기술을 결합해 관람객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 전시) 프로젝트’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경계해야 할 것은 살피되 문제의식이나 방법론으로 공유 가능해 보이기도 해요. 과정에서 좀 더 친숙한 방법, 예를 들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전시 기획 등을 해설해주는 큐레이터나 도슨트 같은 기능과 결합한다든지 해서 이질감이나 윤리적인 문제를 보완한 프로젝트 사례가 기대되기도 하고요.
최낙은 : 불편함의 실체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AI-증언’을 통해 실감나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낯설고 불편한 시도겠지만 피해 할머니를 더 이상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적인 이해나 공감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식, ‘위안부’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또 다른 노력으로 보면 이해되거든요. 계속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이지연 : 저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결국에는 어떤 한계를 문제의식을 고양시키는 재료로 잘 활용해야 하고, 대화가 관계 맺기의 출발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하나 더 고려되면 좋겠는 것이 있어요. 생생하다, 실감난다는 것의 기준도 다양할 수밖에 없거든요. 때문에 시청각 장애인, 노인 등 약자들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제공하는 수준이면 좋겠어요. AI 기술이 이런 정도의 문제의식까지 반영해 간다면 훨씬 더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최낙은 : 2부로 넘어가면 4편의 논문이 실려 있어요. 먼저 문지희 선생님의 「전범재판에서 드러난 식민주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재판과 ‘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전범재판을 다루고 있는데요. 당시 이 재판에서는 유럽 여성의 피해만 다루고 그보다 훨씬 피해 규모가 컸던 인도네시아 원주민 여성들의 피해에는 눈감았다고 해요. 전범재판에서조차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주의가 명백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거죠. 두 번째 임우경 선생님의 「동아시아 탈식민의 냉전화와 군 성매매업소의 연쇄: 타이완의 군중낙원을 중심으로」에서는 역시 전후 냉전시기 한국과 타이완에서 각각 ‘국군특수위안대’와 ‘군중낙원(특약다실)’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위안소’의 유산이 그대로 살아남게 된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황민정 : 오키나와에 관한 임경화 선생님의 글은 1970년대 오키나와 주민들과 재일조선인 운동가들이 펼친 ‘아래로부터의 역사 기록운동’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 운동 과정에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 할머니의 최초 공개 증언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심아정 선생님의 글은 1966년 러셀법정, 1976년 브뤼셀 국제법정,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2000년 여성법정), 그리고 2016년 과테말라 세푸르자르코재판 등 전쟁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세워진 민간법정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요. 국제적인 민간 법정을 통해서 어떻게 연대와 치유 과정이 이뤄졌는지, 무엇보다 여성들 스스로가 일궈낸 사례들이 감동적이었어요.
이태준 :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했어요. 민간법정의 이면에는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공적인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놓여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존 사법 제도에 기대지 않고 피해자와 연대해 정의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은 민간법정의 성취가 빛나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연합군에 의해 진행된 바타비아 전범재판이 최초로 ‘강제 성매매’를 유죄로 단죄했지만 피해 대상을 백인 여성으로 한정해 훨씬 방대한 피해를 당한 인도네시아 원주민 여성을 배제했던 사실과 대조적이죠. 인종차별, 식민주의적 태도가 낳은 또 다른 가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곽한나 : 2부를 읽으면서 전 세계에서 자행된 전시 폭력의 역사에 대해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어요.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도 처음 알았는데, 1971년 전쟁 당시 파키스탄 군대에 의해 강간당한 여성들을 ‘용감한 여성’이라는 뜻인 ‘비랑고나’라고 불렀대요. 초기에는 분명 피해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없거나 옅었는데, 점점 불명예스러운 여성 혹은 침해 당한 여성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알아보니까 벵골어 발음이 매춘부를 뜻하는 단어와 유사해 대놓고 조롱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였어요.
이지연 : 비랑고나를 듣자마자 바로 임진왜란 이후 생겼다는 ‘환향녀’가 떠올랐어요.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비교적 중립적인 단어가, 어느샌가 ‘더럽혀진 여성’이라는 치욕스러운 욕이 되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잖아요.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찍기가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더라고요.
곽한나 : 저는 위안소가 일제의 패망으로 사라지지 않고 냉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동아시아에 다시 자리잡게 된 역사가 안타까웠는데요. 전후 타이완에 새로 생긴 군 성매매 업소의 이름이 ‘군중낙원’이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에요. ‘위안’도 그렇지만 ‘군중낙원’만큼 언어도단적 표현이 있을까 싶어요.
최낙은 : 비슷한 지점에서 다 불쾌지수가 높았던 것 같네요.(웃음) 저는 또 제목에 붙은 ‘연쇄’라는 단어에 주목했어요. 흔히 연쇄 회담, 연쇄 살인 등에서 접하는 어렵지 않은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사물이나 현상이 사슬처럼 서로 이어져 통일체를 이룬다’는 뜻을 곱씹다보니 사회학적 단어로 새롭게 다가왔어요. 가장 격렬하게 냉전 체제로 내몰린 한국과 타이완 두 곳에서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군대와 국가가 여성의 몸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했던, 일제의 폭력적 구조가 그대로 재구성된, 말 그대로 연쇄였던 겁니다. 이건 또 ‘여성 폭력 연쇄’의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죽여주는 여자>라는 영화가 있어요. 윤여정 배우가 성매매를 하는 여성 노인, 속칭 ‘박카스 할머니’로 등장해요. 영화에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 장면이 있어요. 여기에 할머니는 미군 기지촌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왜 내가 혹시 일본군‘위안부’인 줄 알았어? 나 그렇게 나이 안 많아.” 하는 대목이 나와요. 이 부분이 의미심장 헀어요. ‘‘위안부’가 이렇게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고 존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거든요.
이태준 : 실제로 1993년엔가 출판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증언집 중에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하셨다고 밝힌 분이 있고, 영화 <보드랍게>의 주인공인 김순악 할머니도 ‘마마상’의 경험을 털어놓으시잖아요? 타이완의 ‘군중낙원’은 국제 질서가 냉전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가 아시아의 전후 역사와 어떻게 얽히는지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키워드였어요. 냉전 체제 하에서 분단과 내전으로 점철되었던 동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은 위안소의 ‘화려한 부활’로 이어져 여성의 몸이 또다시 폭력에 노출되기에 이른 것이죠.
황민정 : 저는 오키나와의 상황을 다룬 임경화 선생님의 글도 흥미로웠는데요.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직후 전쟁 경험을 기록하는 주민운동의 과정에서 배봉기 할머니가 일본에서 최초로 공개 증언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요.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된 계기도 이 글을 통해서였어요.
이지연 : 여성의 피해는 초국가적으로 일어나는데, 법정에서는 민족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하고, 그 틀 안으로 가두는 경우도 많지요. 이런 문제를 비판한 ‘브뤼셀법정’도 인상적이었어요. 일반적인 법정 형식 안에서 유무죄를 입증하고 판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성들 개개인의 경험을 말하고 전하는 장으로서, 또 ‘능동적인 서로-듣기의 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법정에서 시, 편지, 증언, 서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의 ‘말하기’와 ‘듣기’가 시도되었다고 해요. 앞에서 얘기한 여성의 언어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이후 페미니즘은 물론 여성 인권 문제에 상당한 영감을 주었을 것 같아요. 놀라웠던 건 이때 일본군‘위안부’문제도 논의의 장에 나왔는데, 오키나와 주민들의 기록이나 배봉기 선생님의 증언이 논의되었더라고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초국적 연대의 불씨가 오키나와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황민정 : 그와 함께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여성법정’에서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 내용도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었는데, 일본인 ‘위안부’는 단 한 명도 증언석에 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좀 멍했어요. 일본인 여성도 ‘위안부’로 동원되고 성착취를 당했을 가능성을 한 번도 상상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게이샤나 유곽 등을 통해 일본의 개방적인 성문화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면서 저도 모르게 일본에 대한 인식이 편협했던 것 같아요.
이태준 : 임경화 선생님이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 주민들이 마이너리티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연대의 가능성을 얘기하신다면, 심아정 선생님은 피해-가해를 넘어 차별받는 존재들의 초국적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시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고통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생채기를 만들 위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두 분 선생님이 분석하신 연대의 ‘방법’들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진정한 연대는 서로의 소수자성을 고백하고, 대화하고, 끊임없이 드러내고 들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한데, 여성민간법정이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읽혔어요. 여성이기에 연대할 수 있다가 아니라 고통의 연대는 수많은 차이와 경험을 듣고 이해하고 맞추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