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법정 2부 - 합의 이후, 양국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류광옥변호사 / 법무법인 가로수 / 민변 ‘위안부' 소송 TF 변호인단

  • 게시일2019.11.07
  • 최종수정일2022.11.28
'12.28 한일합의' 이후, 그녀들의 법정 

1부. 단 800자의 기자합의문이 해결을 담을 수 있는가 
2부. 합의 이후, 양국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3부. 12.28 합의는 헌법소원청구 대상이 아니다?

 

'적정선의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법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첫째, ‘위안부’를 모집하고 위안소를 운영하는 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하고(사실의 인정) 둘째, 과거의 일들은 국제법과 국내법에 비추어 불법행위라는 사실과 그것을 자행한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책임의 인정), 마지막으로 그 책임자가 과거의 불법행위에 상응하는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손해의 배상). 

'과거의 불법행위책임에 상응하는 배상책임'은 '경제적 배상'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피해자 할머니들은 경제적 배상으로 '위안부' 문제의 '사실과 책임인정' 단계가 흐지부지되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손해의 배상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죄와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습니다. 

경제적 배상이 손해배상의 전부였다면, 그리고 경제적 배상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면 '적정선의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종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책임 있는 자의 사죄와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책임 인정 단계를 건너뛴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민간기금 등을 통하여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하고자 했으나 이를 거부해 왔던 것입니다.  

 

합의 이후, 양국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빌어 외무성의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12.28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해결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고 태도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김학순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이 이루어질 당시 ‘위안부’ 문제는 피해보상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일청구권협정이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겠지요. 

일본이 역사적 사실과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 가장 큰 방어막이 되는 것이 한일청구권협정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법적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벽도 한일청구권협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2015년에 이르러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가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장애를 넘어 일본이 회피하려 애써왔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것인지가 12.28 위안부 합의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외교장관들의 기자회견문만으로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을 기자회견 직후에 양국 정상이 나눈 전화 회담을 통해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한일간의 전화 정상회담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양국 정상의 전화 회담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아베총리는 박근혜 전대통령에게 ”'위안부'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2016년 1월 18일,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리하고 있던 민변 변호인단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2015. 12. 28. 오후 5시 48분부터 15분간 진행된 한일 정상 회담의 전화 회의록 중 일부'의 정보 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다”라고 발언했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답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2016년 1월 27일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은 양국 정상의 전화회의록은 외교문서이자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이유로 비공개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3월 17일 변호인단은 대통령 비서실을 상대로 양국 정상 간의 전화 회의록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는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송 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생산된 문서는 모두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습니다. 문서의 비공개여부를 따져보기도 전에 기록물의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변호인단은 여러 경로로 전화 회의록을 찾을 수 있는지 문의하고, 다른 기록에 내용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장벽에 막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변호인단이 대통령 비서실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청구는 2019년 2월 22일, 기각되었습니다. 

 

2017년 6월 1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 관련 정보공개 촉구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12. 28. 위안부 합의가 초래한 
'위안부' 문제의 벽 

'위안부' 한일합의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이 합의가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해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이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근거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국내 참의원과 중의원들 앞에서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가 아니었다.” “12.28 '위안부' 합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석한 일본 정부 대표는, “'위안부'에 관한 연구는 조작되었으며 성노예는 잘못된 개념”이라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증언과 사료들로 인해 차마 '위안부' 문제를 당당히 부인할 수는 없었던 일본 정부가 12.28 합의 이후에는 어떠한 제어도 받지 않고 회피하고 부인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12.28 ‘위안부’ 합의는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길을 아예 막아 버릴 수 있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였습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연결되는 글

글쓴이 류광옥

민변 ‘위안부' 소송 TF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로, 현재 '위안부'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ryuok@lawy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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