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네덜란드 여성이 증언하는 일본군 ‘위안소’

최재인번역가

  • 게시일2019.08.29
  • 최종수정일2023.12.07

번역자가 소개하는 얀 루프-오헤른,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네덜란드 여성이 증언하는 일본군 ‘위안소’』


지난 8월 19일, 이 책의 저자 얀 루프-오헤른 여사께서 향년 96세로 영면하셨다. 굴곡진 인생을 용감하고 멋지게 살아낸 저자는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 글을 통해 루프-오헤른과 그녀의 책을 소개하려 한다.

루프-오헤른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네덜란드령이었던 자바섬을 점령한 뒤, 그곳에 살던 네덜란드인들을 수용소에 감금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1944년 2월 26일, 수용소에서 17세 이상의 미혼 여성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여러 일본군 ‘위안소’들로 끌고 갔다. 19세였던 저자는 그 중 ‘칠해정’이라는 일본군 ‘위안소’로 이송되었다. 정확한 날짜를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손수건에 날짜와 동료들의 이름을 적어 보관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손수건은 오스트레일리아 전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저자를 비롯해 일곱 명의 네덜란드 젊은 여성들은 약 석 달 동안 ‘칠해정’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았다. 저자가 당시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70세를 두어 달 앞둔 1992년이었다. 거의 50년 만에 입을 연 것이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50년 동안의 침묵: 어느 전쟁 강간 생존자의 특별한 회고록(Fifty Years of Silence: The Extraordinary memoir of a war rape survivor)』이다. 그러나 5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이 책에는 수용소와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던 과정과 그 안에서의 일상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일본군이 강제로 여성들을 데려가 ‘위안부’로 삼은 일은 없었다는 일본 정치인들의 주장 사이에서 이 책은 역사를 밝히는 소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공개한 뒤, 그는 같은 경험을 했던 네덜란드 친구들과 반세기 만에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다. 한 친구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네 기사를 보고, 나는 회피하고 싶었어. ... 하지만 곧 너에게 감탄했어. 나는 아직도 자녀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단다. ... 나도 너처럼 당시 일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전에 너처럼 내 경험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어. 그러나 혼자 이야기해서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망설이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도 돕겠다고 결심했어.”

저자는 50년 만에 자바섬을 찾아, 자신이 다녔던 가톨릭계 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녀의 교사였고, 함께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수녀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 수녀님은 수용소에 강제로 징발된 어린 여성들의 숫자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자의 이런 만남은 활자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저자가 일본군 ‘위안부’의 유일한 유럽인 증인은 아니다. 그가 나서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증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노령의 일본군 출신들과 만남이다. 일본군 ‘위안소’에 대해 당시에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냐고 그녀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답했다. “그때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군 시스템 일부였지요. 우리는 위안소가 군대의 사기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들었어요. 위안소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었지요. 그게 바로 전쟁이라고 들었습니다. 여성은 전쟁에서 강간을 당하게 되어 있고, 강간은 우리의 권리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대답을 한 사람은 “들었다”고 하는 표현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을 은근히 회피하는 비겁한 화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시 병사들을 교육했던 일본군 지도부가 여성을 어떻게 여겼고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일본군 출신에게서 이런 발언을 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저자의 큰 업적 중 하나이다. 

일본인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창녀였다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창녀란, 혹은 성매매 여성이란 “금전적 대가를 얻기 위해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신의 몸을 기꺼이 팔지만, 원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싫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1] 루프-오헤른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 들은 강제로 여성들을 끌고 갔다. 당시 일본군은 조직적으로 인신을 납치했고, 일본군 ‘위안부’는 납치 감금되어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전쟁 상황이지만 개인의 신체에 대한 이런 잔혹한 폭력은 엄연한 중범죄이다.

 

『나는 일본군의 성노예였다: 네덜란드 여성이 증언하는 일본군위안소』(얀 루프 오헤른 저, 최재인 역) 표지

 


저자는 50년의 침묵을 깨고 나서게 된 배경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였던 분들의 활동을 접하면서 우러나온 마음 때문이었다. “그들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나는 ... 그들에게 팔을 뻗어 포옹하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아시아 일본군 ‘위안부’들을 유럽 여성들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네덜란드 소녀들도 겪었다. 유럽 여성이 나서게 되면, 일본이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두 번째 배경은 1990년대 벌어진 보스니아 전쟁이었다. 그녀는 그 전쟁에 관한 기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세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전쟁이 강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은 늘 가벼이 여겨진다. 내가 당했던 일이 과거사인 것만은 아니다.” 루프-오헤른은 이런 생각을 하며, 강간이 전쟁범죄임을 분명히 알리는 활동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게 된다. “내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나에게 가해졌던 잔혹 행위들이 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전쟁 중에 군인이 자행한 강간도 범죄라는 것을 세상이 알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이 칠십에, 그녀는 새로운 소명을 가진 삶을 시작한다. 

이후 그녀는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일본 당국이 일본군 ‘위안부’를 조직적으로 운영했던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책을 쓰고, 인터뷰하고, 세계 곳곳에서 연설도 했다. 그 과정에서 큰 상도 많이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국민훈장을 받았고, 영국 여왕과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도 훈장을 받았다. 그녀가 살면서 거쳐 갔던 서구의 나라들은 그녀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을 주었다. 가톨릭 교황으로부터도 훈장을 받았다. 이 큰 상들은 그녀가 당했던 고통에 온 나라가, 온 교인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는 의미였다. 반세기 동안 아픔을 숨기며 지내왔던 그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손녀에게 오래된 사진첩을 보여주며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바섬에서 4대째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집안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산과 강을 쏘다니며 자란 이야기, 할아버지와 부모님과 집안일을 돌봐주는 인도네시아인 일손들로부터 받은 큰 사랑과 잘못했을 경우 받은 따끔하고 엄격한 가르침에 대해 재미나게 들려준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살던 귀한 여성들을 일본군들이 물건처럼 짓밟았다고 말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루프-오헤른은 위안소에서 풀려난 직후, 한 영국 군인과 연애하며 다친 몸과 마음을 조금씩 달랠 수 있었다. 연인에게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연인은 그녀에게 “사랑해, 얀. 너는 아름다워”라고 했는데, 당시 그녀에게는 그 말이 너무 중요하고 필요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만난 지 두 달 만에 약혼했고, 영국으로 가서 결혼했다. 영국에서 14년을 산 뒤,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거기에는 여러 사연이 있었지만, 이주하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이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 비밀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있었다고 한다. “강간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수치심으로 떠안고” 살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해주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비단 일본군 성노예였던 3개월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50년간 침묵해야 했던 상황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매일 저녁 어두워질 무렵이면 엄습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었고 식은땀을 흘렸다고 한다. 온전히 평온하게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결혼 후 두 딸을 얻었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겉보기에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그 시절의 고통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평생을 통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분들이 공통으로 토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위안부’ 피해자들뿐 아니라, 전쟁을 겪으며 신체적 정서적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생을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필자의 집안 어른 중에는 전쟁 기억의 고통을 평생 홀로 견디시다가 임종 즈음 병상에서야 비로소 말씀하신 분들이 계셨다. 공식기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마무리되지만, 저자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몸과 마음의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사신 분들의 이야기가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 휴전협정이나 평화조약을 통해 문서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전쟁이 마무리될 수는 있겠지만, 각 개인에게 남은 상처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이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미래에 평화가 확고하게 자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거슬렸던 부분은 저자의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서술 중 몇 부분이다. 저자가 가까이 접했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주로 가사를 위해 고용되었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했고, 책에서도 깊은 애정과 호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선량한 어린 네덜란드인의 관점에서 가진 생각이다. 인도네시아인 입장에서는 네덜란드인을 마냥 호의적으로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인도네시아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인도네시아인은 네덜란드 지배 체제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전쟁 내내 일본인이 했던 반네덜란드 선전에 고무된 인도네시아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취했고, 심지어 우리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인도네시아인이 네덜란드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일본인의 선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시절을 “두 문화가 나란히, 또 조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이런 저자의 생각에 아마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어느 책도 완벽할 수 없다. 독자가 저자의 생각에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한계를 노출하는 진솔한 서술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기 시대의 한계, 자기가 속한 집단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세련되게 포장하기보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표현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제국주의가 가진 다양한 얼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에 이 책을 내면서, 역자 후기에서 저자가 “살아계시는 동안 이 책의 한국어판도 내놓게 되어 기쁘다”라고 했다. 일 년 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저자가 한국을 방문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회한이 든다. 저자는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분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친구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지난 8월 21일에 열렸던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저자는 영정 사진으로나마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분들과 함께했다. 

용기를 내서 진실을 이야기해주신 얀 루프-오헤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얀 루프-오헤른님의 명복을 빕니다.

각주

  1. ^ 수 로이드 로버츠, 『여자 전쟁』, 출판사 클,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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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재인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네덜란드 여성이 증언하는 일본군 ‘위안소’』 (얀 루프-오헤른 Jan Ruff-O' Herne, 삼천리, 2018)를 번역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평화를 만든 사람들](공저), [서양사강좌](공저), [여성의 삶과 문화](공저), [서양여성들 근대를 달리다](공저), [다민족 다인종 국가의 역사인식](공저), [동서양 역사 속의 다문화적 전개양상](공저), [고무따라 역사여행] 등이 있다. 번역서로 [세계사 공부의 기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아름다운 외출], [유럽의 자본주의], [히스토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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