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신대연구회가 발간한 세번째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증언집 1, 2권과는 다르게 사투리, 구어체 등 피해자들의 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하여 피해자들의 정서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함께 강제로 동원되어 남양군도 파라오에서 군생활을 했던 홍종태 씨가 경험하고 목격한 위안소 및 '위안부'에 대한 증언도 담았다.
마르디엠(Mardiyem). 1929년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서 태어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942년 연극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보르네오에 갔다가 뜰라왕(Telawang)에 있던 위안소로 끌려가 21명의 자바 출신 여성들과 '위안부' 생활을 하였다. 위안소에서 '모모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5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공론화한 최초의 인도네시아 여성이다. 인도네시아 활동가 에카 힌드라티(Eka Hindrati)와 일본 연구가 기무라 고이치(Koichi Kimura)가 쓴 『그들은 나를 모모예라고 불렀다(Momoye: Mereka MemanggilKu)』(에센시(ESENSI), 2007년)에 마르디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UN 주최로 1993년 6월 14~2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 세계인권대회. 1948년 세계인권선언 채택 이후의 UN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세계 인권 신장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 회의로, 171개국 800개가 넘는 NGO가 참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 협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을 비롯한 5명의 대표가 참석하였고, 대회기간 중에 북한, 필리핀의 NGO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아시아여성포럼을 열었다. 또한 샬롯 번치 등이 개최한 '여성인권국제법정'에 김복동이 참여하여 일본군에 의한 전쟁범죄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들로 비엔나 선언 및 행동 강령에 전쟁 중 여성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비엔나 선언 및 행동 강령 38번에서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분쟁 하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인권 침해는 국제인권법의 원칙을 침해한 것이며 여기에는 살인, 조직적인 강간, 성노예, 강제 임신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시로타 스즈코(城田すず子 가명, 1921~1993). 일본인 '위안부'로서의 경험을 증언한 피해생존자. 대만, 사이판, 축섬(트럭섬), 팔라우의 위안소를 전전하다 일본이 패전하자 1946년 3월 미군 군함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1971년 위안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마리아의 찬가(マリヤの賛歌)』를 출간했다. 이후 시로타는 함께 '위안부' 생활을 했던 여성들이 매일밤 꿈에 나타나 견딜 수 없다며 위령탑을 세워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것이 알려지며 모인 기부금으로 1985년 일본 지바현 소재 가니타산에 '아아 종군위안부(噫従軍慰安婦'라는 '위안부'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0년에는 한국에서 방송된 〈광복45주년 특별기획: 태평양전쟁의 원혼들 제2편 침묵의 한〉에 출연하여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1993년 작고했다.
1991년 12월 군에서 근무하는 민간인을 포함한 군인,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와 그 유가족 35명이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하며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 1991년 8월 14일 자신의 피해를 최초 공개 증언한 김학순도 이 소송에 참여했다. 2001년 도쿄지방법원, 2004년 도쿄고등법원 모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으며, 2004년 11월 29일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전쟁 피해와 전쟁 희생에 대한 보상은 헌법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단순히 정책적 견지에서 배려 여부를 고려할 수 있는데 지나지않는 사안이라며 1명 당 2천만 엔을 보상하라는 피해자들의 요청을 기각했다. 다만 원고들이 1940년대 초 일본군에 강제 입대하거나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소송은 패소했지만, 이를 계기로 아시아 피해국들에서 전후 보상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었다.
해방 직전 발행된 중국 잡지 『대전화집』에 담긴 연합군 구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소식
일본 공창제의 역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국가 차원의 책임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침묵 '당했던' 싱가포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성찰
40대 일본군 위안계장이 중국 우한 '한커우특수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한 『우한병참』 비판적 읽기
전범 자필진술서는 전쟁 범죄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 사죄의 의미나 용서 등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여러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역사교사에게 듣는 초·중·고 생애주기별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학교 교육 현황
근현대 세계적 분쟁 시기 발생한 성폭력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룬 영국 최초의 전시 <침묵을 깨다: 분쟁 속 성폭력> 방문기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비롯해 여러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일본 시민활동가 다카지마 다쓰에의 삶과 연대
1942년 부산에서 미얀마 밋찌나 위안소로 끌려간 조선인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최찬숙 작가의 작품 소개
5·18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통합적 치유 모임 '열매'가 먼저 걸으며 개척하고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