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분리’ 또는 ‘격리’라는 뜻으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에게 참정권과 기본적 인권을 주지 않고 이동과 통행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이 법률로 공식화한 극단적인 인종 분리 및 차별 정책을 말한다. 나중에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인권활동가 넬슨 만델라 등의 끈질긴 저항과 국제사회의 거센 제재 속에서 1994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리틀빅혼 국립전쟁기념지(Little Bighorn Battlefield National Monument)몬태나주 크로우 에이전시(Crow Agency) 인근에 위치한 이 국립공원은 1876년 리틀빅혼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미국-아메리카 원주민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블랙힐즈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영토를 침탈당한 라코타·샤이엔족은 생존을 걸고 맞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제7기병연대를 전멸시켰다. 평소 부족 단위로 흩어져 있던 원주민들이 힘을 합쳐 거둔 이 승리는 미국 육군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승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대규모 보복과 토벌을 불러왔고, 결국 평원 원주민의 저항이 꺾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양측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1904년 당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오늘날의 나마비아)에서 독일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헤레로인과 나마인들이 독일 제국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독일 제국은 헤레로인과 나마인을 사막으로 내몰았고 독일군의 봉쇄로 사막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헤레로인과 나마인 수만 명이 탈수와 기아로 사망했다. 1985년 UN이 발표한 휘태거 보고서는 이 사건을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 사례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16년에 이 일을 인종학살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나미비아에 대한 메르켈 수상의 공식 사과는 독일 사회 각계의 요구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인 『신일본사(新日本史)』(산세도,三省堂) 의 집필자인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1913~2002)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1965년, 1967년, 1984년 3차에 걸쳐 교과서검정 위헌소송을 제기해 1997년 일부승소 판결을 얻어낸 사건. 자민당정권이 교과서 조사관 제도를 통해 침략전쟁 미화, 천황숭배 등 역사왜곡을 시도하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제기한 소송이다. 소송이 제기된 후 교과서의 역사 왜곡 시정을 위한 전국적인 시민운동이 전개됐고, 그 결과 1970년 "검정 불합격 처분 취소"라는 승소 판결과 '난징대학살', '중국전선에서의 일본군의 잔학행위', '731부대 기술' 등의 검정은 위법이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청일전쟁 당시 조선인의 반일저항', '난징전에서의 일본군의 중국인여성 폭행', '오키나와전' 등의 기술 부분에 대한 검정은 적법하다며 이에나가 측이 패소했다.
전쟁 후 네덜란드는 전범재판을 위한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Temporaire Krijgsraad in Batavia)을 실시하였는데, 이 재판은 전쟁 중 행해진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침묵 '당했던' 싱가포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성찰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전쟁 중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는 전쟁의 부산물로 간주되곤 했으며, 식민체제 하의 여성인권은 ‘피식민’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타자’의 위치에서 무시되고 침묵되었다.
전쟁과 점령, 그리고 특별이란 수식어로 감추어진 공창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2부. 연합군번역통역부(ATIS)가 생산한 포로 심문보고서
「THE IMPACT OF A T-SHIRT: BTS Meets Politics in a Digital World」 백서 프로젝트
이란의 여성들은 언제나 ‘용감한 사자들’이었다. 이란의 여성들과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해 왔고,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인권 유린에 대항하는 투쟁과 저항,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필리핀 말라야 롤라스 이야기
김동엽 (부산외대 HK 교수)
도미야마 다에코가 ‘위안부’의 삶에 공감하며 벌였던 예술-운동은, 당사자와 친밀한 관계가 없는 비체험자의 위치에서, 뒤늦게 당사자와 마주한 가해자의 위치에서 그 간극을 극복하고 연결되고자 형식과 내용을 혁신했던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