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일본 미에현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1958년 '고마쓰가와 사건'의 재일조선인 소년 사형수 이진우와 주고받은 서간집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로 주목받았다. 1964년부터 원폭 피해자, 강제동원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등 역사의 틈새에서 잊힌 재일조선인과 조선인의 증언을 기록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2012), 〈침묵〉(2016)이 있다. 신작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딸 박마의 감독과 함께 연출했으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인 『신일본사(新日本史)』(산세도,三省堂) 의 집필자인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1913~2002)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1965년, 1967년, 1984년 3차에 걸쳐 교과서검정 위헌소송을 제기해 1997년 일부승소 판결을 얻어낸 사건. 자민당정권이 교과서 조사관 제도를 통해 침략전쟁 미화, 천황숭배 등 역사왜곡을 시도하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제기한 소송이다. 소송이 제기된 후 교과서의 역사 왜곡 시정을 위한 전국적인 시민운동이 전개됐고, 그 결과 1970년 "검정 불합격 처분 취소"라는 승소 판결과 '난징대학살', '중국전선에서의 일본군의 잔학행위', '731부대 기술' 등의 검정은 위법이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청일전쟁 당시 조선인의 반일저항', '난징전에서의 일본군의 중국인여성 폭행', '오키나와전' 등의 기술 부분에 대한 검정은 적법하다며 이에나가 측이 패소했다.
일본군은 왜 '위안부' 명부의 작성과 관리를 중시했을까. 일본군이 만든 '위안부' 관련 명부 종류와 연구의 의미를 살펴본다.
일본군이 작성한 유수명부와 복원명부는 특정 인물이 전쟁 당시의 군인·군속 신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유수명부와 복원명부에서 찾은 조선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들여다본다.
대만의 군중낙원이, 종적으로는 식민제국주의 전쟁 시대의 일본군위안소가 어떻게 전후 탈식민 분단체제로 얽혀 들어가는지, 횡적으로는 동아시아 냉전과 군사문화의 연동 속에서 어떻게 위안소 및 ‘위안부’ 문제가 전유되고 담론화되며 새로운 파동들을 낳는지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고리라는 점이다.
이 글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첫 번째 '위안부'로 기억하지 못했던 배봉기를 기억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하려 했을까.
이 글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첫 번째 '위안부'로 기억하지 못했던 배봉기를 기억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하려 했을까.
한·일 전쟁 피해자를 함께 기리는 오키나와 위령제 동행기
<b id="docs-internal-guid-34345fe2-7fff-81b7-dbb5-229c96d865ba"><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상영작 중 한 편인 <오키나와의 할머니>를 더욱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감독의 솔직한 제작 이야기</b>
배봉기 씨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배봉기 씨는 살아 숨 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