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nched in 1992 at the proposal of the Korean Council, the Asian Solidarity Conference was held through its fifteenth meeting in 2018. It has served as a transnational forum in which surviving victims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system from across the Asia-Pacific, their support organizations, and Japanese citizens and activists come together to seek solutions to the issue.
1990년 11월, 37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조직으로, 생존피해자 복지사업, 조사연구활동, 평화비 건립, 수요시위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제기구와 각국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이다.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각국 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에 기여했다.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the Trial of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 in 2000). 일본 및 아시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국과 전 세계의 여성단체가 연대한 가운데 2000년 12월 8일~12일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개최된 국제민간법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해 연합국이 열었던 극동국제군사재단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와 시민들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했다. 법정 판사단은 3일간의 심리를 거쳐 히로이토 천황과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9명의 군부 및 정치 지도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예비 판결을 내렸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히로히토 천황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일본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을 권고한 최종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연대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법정에 올리고, 여성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전시하에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죄할 필요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리틀빅혼 국립전쟁기념지(Little Bighorn Battlefield National Monument)몬태나주 크로우 에이전시(Crow Agency) 인근에 위치한 이 국립공원은 1876년 리틀빅혼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미국-아메리카 원주민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블랙힐즈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영토를 침탈당한 라코타·샤이엔족은 생존을 걸고 맞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제7기병연대를 전멸시켰다. 평소 부족 단위로 흩어져 있던 원주민들이 힘을 합쳐 거둔 이 승리는 미국 육군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승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대규모 보복과 토벌을 불러왔고, 결국 평원 원주민의 저항이 꺾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양측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독일 한인 2세들이 2008년 베를린에서 결성한 이주민 자조단체에서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파독 노동자 2세를 비롯한 한인 커뮤니티의 관점을 대변하며 독일 정부·지자체에 정책을 제언하는 한편, 학술 워크숍, 아시아영화제, 전시회 등을 통해 독일 사회에 한국을 알려왔다. 이후 중국, 베트남계 등 다른 아시아계와 연대해 반(反)아시아계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쪽으로 활동을 넓혔고, '아시아계 독일인(Asiatisch-Deutsch)'이라는 자기규정과 정체성을 독일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대표적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4부. 동남아시아 번역통역부(SEATIC) 심문회보 제2호
이들의 몸을 횡단하는 방사성 물질은 이들의 몸속 세포만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딸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을 요구받는 여성들의 삶을 굴절시켰다. 한국 여성 원폭 피해자의 생애사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신체에 갊아 있는 민족과 국가, 원폭증 장애, 그리고 가족과 여성이라는 굴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일본 군인들이 남긴 수많은 회고록을 통해 확인하는 '위안소'의 역할과 기능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웹진 <결>에서는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을 맞아, '아카이브814'에 등록된 2000년 여성법정 관련 기록물을 법정이 진행된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전범 자필진술서라는 형식의 고백이 어떻게 반성이나 성찰의 계기로 작용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한국YWCA연합회 활동이 전하는 '위안부' 해결 운동과 연대의 의미
이란의 여성들은 언제나 ‘용감한 사자들’이었다. 이란의 여성들과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해 왔고,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베를린 ‘위안부’ 운동 40년과 소녀상 ‘아리’ 존치운동에서 확인하는 빛나는 연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비롯해 여러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일본 시민활동가 다카지마 다쓰에의 삶과 연대
법률 전문가와 ‘위안부' 운동 활동가가 되짚어보는 지난 34년 간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