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box { background-color: #5a6fff; color: #ffffff; padding: 20px; border-radius: 8px; } .event-button {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4px 28px; background-color: #a463f6; color: #ffffff;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border: none; border-radius: 3px; text-decoration: none; cursor: pointer; transition: background-color 0.3s, color 0.3s; } .event-button:hover { background-color: #b177ff; color: #ffffff; } 2025 기림의 날 기념 웹진 '결' 이벤트 고르다, 새기다 : 나의 결 #이벤트 기간 | 2025년 8월 11일 ~ 8월 31일 (총 21일) #주최·주관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참여 방법 | 웹진 <결>에 업로드 된 모든 기사 중에 마음에 남는 기사 3편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주세요. #참여 혜택 | 참여해주신 분 중 총 100분을 선정하여 2만 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드립니다. #선정자 발표 | 2025년 9월 10일(수) 선정자 개별 연락2019년부터 7년간, 웹진 <결>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전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해왔습니다. 2025년, 광복 80주년 기림의 날을 맞아 그동안 <결>이 걸어온 여정을 함께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지금까지 발행된 약 300편의 기사 중, 당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기사는 무엇이었나요?‘고르다, 새기다 : 나의 결’은 당신의 기억 속 <결>을 꺼내어 다시 고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함께 새겨보는 참여형 이벤트입니다. 참여방법 안내 ① 웹진 <결>에 업로드된 모든 기사 중, 카테고리나 연도에 관계없이 당신의 마음에 새겨지고 의미 있게 다가온 기사 3편을 골라주세요. #전체보기 메뉴에서 웹진 결의 카테고리를 탐색해보세요.▶기사 전체보기#엮어보기 메뉴를 통해 다양한 주제와 인물을 다룬 콘텐츠를 탐색해보세요.▶ 기사 엮어보기 ② 아래 ‘이벤트 참여하기’ 버튼을 클릭해 설문지로 이동한 후,선택한 기사 각각에 대해 아래 항목을 작성해 주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고유 이름. 아르메니아어로 '용기'를 뜻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처음 설치된 곳은 주민의 약 40%가 아르메니아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에 의한 집단학살의 기억을 공유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연대가 이곳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동력이 되었다. 한편 '아리' 이전부터 코리아협의회가 보유해온 플라스틱 모형 소녀상의 이름은 '용이'로, 역시 '용기'에서 따온 것이다. 용이는 현재 코리아협의회가 운영하는 베를린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무언다언(無言多言)'에 놓여 있다.
상하이사범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쑤즈량(苏智良)에 의해 1999년 설립된 연구소. 중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유일한 연구소이다. 2007년 자료관을 개관하여 대중들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렸으며, 2016년 10월에는 상하이사범대학교 캠퍼스 내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동시에 '중국 '위안부' 역사박물관'도 개관하였다. 상하이사범대학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중국 본토에 세워진 첫번째 소녀상이자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세워진 소녀상이기도 하다. 2018년, 피해자들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22(二十二)” 의 감독 궈커(郭柯)와 함께 상하이사범대학교육발전기금회 내에 '위안부연구 및 지원’이라는 이름의 특별조성금을 만들고 피해자 생활 지원 및 ‘위안부’ 사업 연구 발전에 힘쓰고 있다.
2011년 12월 18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일본 측은 “지혜를 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고, 오히려 한국 측에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소녀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대응하였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정상의 격론 이후 한일 갈등은 한층 격화되었다.
2012년 3월 한국을 방문했던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해결안으로, 일본 총리의 사과, 주한 일본대사의 피해자 방문 및 사죄, 일본 정부의 경제적 보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 인정을 추가로 제안하였고, 이에 일본이 소녀상 이전, 수요시위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결국 협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독일의 소녀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건립되었을까. 이 글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소녀상 건립이 공론화된 2016년부터 지금, 여기 이 쉼표 지점까지의 이야기다.
독일의 소녀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건립되었을까. 이 글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소녀상 건립이 공론화된 2016년부터 지금, 여기 이 쉼표 지점까지의 이야기다.
베를린 ‘위안부’ 운동 40년과 소녀상 ‘아리’ 존치운동에서 확인하는 빛나는 연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75개의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김세진 작가는 그 누구보다 많은 수의 소녀상을 자세히 관찰한 사람이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소녀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제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베를린 미테구 모아빗에서 수많은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평화를 전파하게 되었다. 아픈 자에 공감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평화이다. 베를린 주민들은 이제 평화의 소녀상을 향해 외친다.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의 소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