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일명 국민기금)에서 발간한 ‘위안부’ 문제 관련 보고서. 1996년부터 1999년에 걸쳐 와다 하루키, 하타노 스미오 등 6명의 일본인 역사학자와 1명의 미국인 역사학자가 작성한 연구 보고서로, 한국, 미국, 일본,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의 자료 연구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the Trial of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 in 2000). 일본 및 아시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국과 전 세계의 여성단체가 연대한 가운데 2000년 12월 8일~12일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개최된 국제민간법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해 연합국이 열었던 극동국제군사재단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와 시민들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했다. 법정 판사단은 3일간의 심리를 거쳐 히로이토 천황과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9명의 군부 및 정치 지도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예비 판결을 내렸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히로히토 천황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일본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을 권고한 최종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연대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법정에 올리고, 여성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전시하에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죄할 필요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네덜란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 8개국 14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국제연대위원회'가 2016년 총 2,744건의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해 공동등재를 신청할 당시 기록물 군의 제목이다.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전쟁 중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는 전쟁의 부산물로 간주되곤 했으며, 식민체제 하의 여성인권은 ‘피식민’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타자’의 위치에서 무시되고 침묵되었다.
전쟁 후 네덜란드는 전범재판을 위한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Temporaire Krijgsraad in Batavia)을 실시하였는데, 이 재판은 전쟁 중 행해진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마츠노 아키히사(松野明久) / 번역 유연정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웹진 <결>에서는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을 맞아, '아카이브814'에 등록된 2000년 여성법정 관련 기록물을 법정이 진행된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일본군의 업무일지 「적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군당국의 위안소 설치 과정과 관여 정황
최재인 (얀 루프-오헤른,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번역자)
이 글은 『인도네시아의 ‘위안부’』(아카시 서점, 1997)를 쓴 가와타 후미코가 만난 인도네시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그 중에서도 위다닌시 씨와 드리스 씨의 이야기이다.
<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의 첫 섹션 '입을 떼다'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초기의 혼란과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올해는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년 전 아시아 모두의 시민운동이 되었던 2000년 여성법정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