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3)

수 핀치(Sue Finch)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 게시일2023.09.25
  • 최종수정일2023.10.04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에이드리언 리치 

여성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며, 2023년 웹진 결은 해외 전시 성폭력 및 여성인권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글로벌 여성평화운동 단체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25주년에 항의하는 의미로 일군의 여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1988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처한 지역과 상황에 따라 전쟁, 군사주의와 폭력이 여성들에게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위민 인 블랙은 고정된 조직이 아니라 실질적 소통과 행동을 강조합니다. 서울의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이 ‘위민 인 블랙 런던’의 수 핀치(Sue Finch)를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 지금 만나 보시죠.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Woman in Black-A Women's Peace Movement”에서 코린 쿠마르의 글을 인용해 여성들의 법정을 가리켜 ‘상상의 공간’이라고 명명하셨는데요,[1] 더불어 같은 서술에서 1992년 이후 열린 40개 이상의 여성법정에 관해 인상적으로 언급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희도 이 대목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여러 여성법정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법정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핀치 님께서 직접 참여한 법정이 있다면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청해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핀치 님께서 글에서 제시한 여성법정 중 ‘아시아 법정’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언어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상의 연장선상에서 위민 인 블랙이 아시아 여성과 연대한 경험이 있다면 관련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습니다. 

수 핀치

저는 2015년 11월 방갈로르에서 열린 세계여성법정(World Court of Women: Against War, for Peace)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참석했던 레베카 존슨(Rebecca Johnson)은 인도, 중동, 유럽에서 선발된 8명의 배심원 중 한 명으로, ‘오픈 데모크라시(openDemocracy) 50.50’(2016.1.25)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이 법정은 가정폭력, 성폭력, 지참금 폭력부터 지역 사회와 인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비모차나의 위민 인 블랙이 주최했으며, 제16회 위민 인 블랙 국제 모임과 함께 개최되었다. 1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임에 참석해 대량학살, 국경 없는 전쟁, 문명과의 전쟁, 여성에 대한 전쟁으로서의 전쟁을 다룬 증언들을 들었다… 

세계여성법정은 1992년부터 30회 이상 개최되며 전 세계 폭력, 분쟁, 전쟁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 왔다. 주류 정치에서 무시당하고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 저항에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유형의 평화 구축 노력과 해법을 도출하고 있다.

여성법정의 창시자인 위민 인 블랙 비모차나의 코린 쿠마르(Corinne Kumar)는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듣고”, 마지막에 우리가 들은 내용에 대해 성찰하며 미래를 바라볼 것을 요청했다… 에만 캄마스(Eman Khammas)는 먼저 사담 후세인의 잔혹한 독재 기간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이어서 2003년 미국과 영국의 파괴적 침공으로 인해 이라크에서의 삶이 얼마나 더 황폐화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캄마스(Khammas) 박사는 전쟁이 미친 영향에 대해 증언하며 이라크의 마을과 지역사회가 “처음에는 미국 주도의 점령에 의해, 이제는 각 종파의 민병대에 의해” 전멸되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혁명협회(RAWA)와 연계된 아프가니스탄 활동가들은 여성의 권리와 보호를 위해 활동하면서 매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멘토와 동료들이 암살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성혐오적인 가부장적 전통과 러시아, 미국, 영국, 탈레반, 그 외의 무장 남성 세력들이 일으켜 온 연쇄적인 전쟁을 통해 여성들에게 가해지고 유지되어 온 다층적인 억압에 대한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다…

남아시아 여성들은 스리랑카, 카슈미르, 나갈랜드 및 지역 사회에서 폭력과 피해자 지우기에 맞서 싸워 온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 예로, 루스 마노라마(Ruth Manorama)는 권리와 교육을 위해 투쟁 중인 인도 카스트 내 소위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여성들에게 가해져 온 다층적이고 중첩된 억압에 대해 증언했다…

네팔에서 여성의 권리와 빈곤층의 상황이 어느 정도로 악화되었는지 들어본 이들은 일찍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라다 파우델(Radha Paudel)은 네팔의 현재 상황을 “무혈 대량학살”에 비유하면서도, 여성들이 ’그들의‘ 남성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도와 아프리카 여성들은 증언을 통해 다수를 몰아내고 환경을 훼손하며 여성과 농촌 공동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식민주의적 ‘서구식’ 개발 모델을 바람직한 것으로 가정하는 통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법정은 “수많은 피해에 대해 증언한 모든 이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함께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평화, 정의, 평등, 환경 및 인간 안보를 구축하고, 지구의 소중한 자원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육성하고, 그 결실을 나누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강력한 글로벌 여성 운동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위민 인 블랙 런던이 최근 열중하고 있는 활동 및 운동 현황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위민 인 블랙 런던이 전개하는 직접행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수 핀치

위민 인 블랙 런던은 2000년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런던 중심부 트라팔가 광장 인근의 에디스 카벨(Edith Cavell) 동상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매월 첫 번째 집회는 팔레스타인 점령 종식과 포용적인 해법 도출, 여성과 아동의 인권과 안전 수호를 통한 평화와 정의의 정립이라는 위민 인 블랙 예루살렘의 창립 취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집회입니다.

집회는 침묵 속에서 진행되며, 여성들은 항상 ‘군사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 against militarism and war)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습니다. 각 주의 주제는 플래카드에도 적혀 있고, 인쇄물에도 안내되어 있습니다. 한두 명의 여성들이 집회와는 별도로 이러한 인쇄물을 나눠주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행인들에게는 영국 정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짧은 서한들에 서명을 요청하고, 이 서한들은 위민 인 블랙의 우체통을 통해 수거되어 총리에게 전달됩니다. 서명자들은 종종 답장을 받게 되고, 많은 이들이 이 답장들을 위민 인 블랙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위민 인 블랙 런던의 집회는 매주 팔레스타인 점령 종식, 핵군축, 민족주의와 전쟁에 대한 저항, 우크라이나 침공, 여성 폭력 방지, 영국 무기 판매 반대, 군사주의 탈피, 평화 구축과 환경 지속 가능성을 포함한 건강 및 인간 안보의 최우선 추구라는 주제를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다루고 있습니다.

위민 인 블랙 웹사이트(womeninblack.org) ⓒWomen in Black

 

영국 위민 인 블랙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러한 집회를 통해 반군사주의 시위를 이어 왔고, 국제 연대 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에도 동참하여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850채의 팔레스타인 민가가 파괴된 베이트잘라에서 팔레스타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방패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노상 장애물 제거를 돕고,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인권 옵저버로 활동하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시위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영국 위민 인 블랙은 또한 런던에서 정부 후원으로 열린 국제 방위 및 보안 장비 박람회(DSEI)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영국의 무기 판매에 반대하는 활동을 통해 군사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2019년 영국 무기 제조업체들은 영국의 최대 고객이자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 110억 파운드 상당의 무기를 수출했습니다.

위민 인 블랙 런던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도 집회를 열고 다음과 같은 긴급 조치를 촉구하는 인쇄물을 배포했습니다.

 ➔ 휴먼라이츠워치(https://hrw.org/europe/central-asia/ukraine)와 페미니스트워크샵우크라이나(https://femwork.org/warinukraine)와 같은 인권 단체들이 우크라이나와 그 밖의 지역 사회에 접근하여 전쟁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지원 

➔ 영국 정부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전쟁 범죄가 자행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ICC에 성폭력 보고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것을 촉구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 활동가들을 지원, 확대 및 보호 

➔ 우크라이나 및 전 세계 무력 분쟁 지역 출신의 난민 모두에 대한 환영과 지원 


위민 인 블랙은 다른 직접 행동 단체들과 함께 원자무기연구소(AWE, Atomic Weapons Establishments)와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의 핵잠수함 본거지 등 군사 핵 시설에서 수많은 비폭력 시위와 행동에 동참해 왔습니다. 특히 AWE에서 우리는 중금속 파이프들을 꽉 ‘끌어안은’ 채 도로 위에 누워 입구들을 봉쇄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 본거지를 둔 핵무장 잠수함 4척 중 최소 1척은 영국 주변 해역의 상시 순찰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각 잠수함에는 최대 8개의 미국산 트라이던트 미사일이 탑재되어 있는데 각각 40개의 탄두가 장착되어 있고 대부분 1945년 히로시마를 파괴한 폭탄보다 8배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줄곧 위민 인 블랙은 영국 정부에 2017년 유엔 총회에서 찬성 122표, 반대 1표, 기권 1표(싱가포르)로 채택된 ‘UN 핵무기 금지 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이 조약은 2021년 1월 22일에 발효되었으며, 위민 인 블랙이 영국의 핵군축을 촉구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조약의 목적은 핵무기가 또다시 사용되는 사태를 막기 위함입니다. 제1조는 핵무기의 사용, 개발, 시험, 생산, 배치, 비축, 획득, 보유뿐 아니라 핵무기의 주둔과 이전을 명백히 금지함으로써 NATO가 행하는 핵 공유를 불법으로 규정합니다.
      
위민 인 블랙의 일원으로서 2000년부터 핵확산 금지 조약(NPT)과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전략 개발에 참여해 왔으며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에도 몸담고 있는 레베카 존슨(Rebecca Johnson)이 언급했듯, 여성주의적 분석과 행동은 핵무기 금지 조약의 언어와 의도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은 인도주의적 관점 및 실천과 함께 여성주의적 행동과 분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조약은 “핵무기의 재앙적 결과”와 “인류의 생존, 환경, 사회경제적 발전, 세계 경제, 식량 안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건강에 대한 심각한 영향”을 인정하며, 무엇보다도 “전리 방사선의 결과 등 핵무기가 특히 여성과 소녀들에게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인정합니다. 

이 조약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평등하고 완전하며 효과적인 참여는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보의 증진과 달성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하고, “핵군축에 대한 여성의 효과적인 참여를 지원하고 강화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RIMSS

 

각주

  1. ^ John Clammer et al., Dynamics of Dissent, Routledg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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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수 핀치(Sue Finch)

1982년 영국의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Greenham Common Women's Peace Camp)를 지원한 이래로 평화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위민 인 블랙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참여해 왔다. 최근에는 위민 인 블랙의 역사를 다룬 동료 신시아 콕번(Cynthia Cockburn)의 저서 『위민 인 블랙: 폭력에 맞서며,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며(Women in Black: Against Violence, For Peace with Justice)』(Merlin Press, 2023)를 완성하였다. 콕번은 이 책의 집필을 마치지 못한 채 2019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글쓴이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시즌1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시즌4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격주로 모여 국제법 관련 자료를 함께 읽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젠더기반폭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동시대적인 문제의식 속에 녹여내며 함께 공부해 왔습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국제법은 하나의 실천(조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진행해 오는 동안 한국에서는 두 건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판결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 제국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선구적인 판례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원고들의 소를 각하했습니다. 우리 세미나 팀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러 보고서와 판결문, 의견서, 포로심문서 등을 읽으면서 무력 충돌 하에서의 젠더기반폭력, 국제전범재판에서의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불처벌 문제, 범죄행위로서의 식민지배와 이에 대한 불처벌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료들을 읽어가며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떠한 문제 제기가 가능할지 고민해 온 맥락에서 이번에 ‘위민 인 블랙’ 런던과 베오그라드의 수 핀치 선생님, 스타샤 자요비치 선생님 두 분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김수용 김엘림 심아정 이슬기 이은진 이지은 장수희 장원아 장은애 조시현 홍윤신 후루하시 아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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