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1)

수 핀치(Sue Finch)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 게시일2023.09.11
  • 최종수정일2023.10.05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에이드리언 리치 

여성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며, 2023년 웹진 결은 해외 전시 성폭력 및 여성인권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글로벌 여성평화운동 단체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25주년에 항의하는 의미로 일군의 여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1988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처한 지역과 상황에 따라 전쟁, 군사주의와 폭력이 여성들에게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위민 인 블랙은 고정된 조직이 아니라 실질적 소통과 행동을 강조합니다. 서울의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이 ‘위민 인 블랙 런던’의 수 핀치(Sue Finch)를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 지금 만나 보시죠.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국제 여성운동 단체로서 ‘위민 인 블랙’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중심이나 체계화된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민 인 블랙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위민 인 블랙의 정체성이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했다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수 핀치 

위민 인 블랙은 어떠한 조직이라기보다는 행동 방침입니다. 제가 위민 인 블랙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1988년 이래로 위민 인 블랙이 발전해 온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다양한 국가에서 군사화된 가부장제에 내재된 폭력에 맞서 행동해 왔음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이러한 남성 폭력의 연속체(continuum)에 결연히 저항하도록 서로를 하나로 연결하는 주제들이 어떤 것인지도 명확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강간, 여성 살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착취가 만연해 있다. 젠더화된 억압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여성주의적 행동(activism)이 시급하게 요청되는 한편, 군사주의와 전쟁의 남성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본질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변화를 위해 이뤄지고 있는 현재 운동의 범위와 규모를 보다 널리 알림으로써 이러한 행동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군비 지출(연간 2조 달러)도 증가 추세에 있다. 국가의 막대한 군사 예산은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쓰일 수 있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할 자원의 낭비다. 이러한 흐름에 항의하고, 더 많은 시민을 행동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 시급하다.

또 한 가지 시급한 것은 남성들이 폭력과 군사주의의 산물이 아닌 남성성의 형태를 채택하고 여성들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다.[1]

활동가이자 작가인 신시아 콕번(Cynthia Cockburn)은 위민 인 블랙의 핵심 이론가 중 한 명으로, 2019년 별세 전까지 여성주의적 반군사주의에 관한 여러 저서를 집필하고, 앞서 제가 인용했던 위민 인 블랙의 역사 대부분을 기록했습니다.

위민 인 블랙은 폭력, 군사주의, 전쟁에 맞서 평화와 정의를 위해 5개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제 웹사이트와 컨퍼런스, 그리고 이론, 영감, 행동의 공유를 통해 연결된 네트워크죠.

위민 인 블랙은 1988년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1987년 말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 봉기)로, 이스라엘 유대인 여성들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여성들, 그리고 점령 지구 내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연합해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점령을 끝낼” 것을 탄원하며 점령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었죠.

첫 번째 위민 인 블랙 집회가 열린 지 6개월 후, 평화 활동가들이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이탈리아 여성주의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방문 중 위민 인 블랙과 만남을 가졌고, 이들은 귀국 후 로마, 페루자, 그 외 여러 도시에서 ‘도네 인 네로(Donne in Nero, 이탈리아어로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을 의미)’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Women in Black Against Violence, For Peace With Justice ⓒMerlin Press

 

이후 이탈리아 여성들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건너가 베오그라드의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1990년대 보스니아 및 코소보 전쟁에 항의하는 제네 우 크르놈 프로티브 라타(Žene u Crnom protiv Rata, 세르비아어로 전쟁에 반대하는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 against War)을 의미)를 형성할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같은 시기 1992년 인도의 여성주의자 코린 쿠마르(Corinne Kumar)는 위민 인 블랙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길라 스비르스키(Gila Svirsky)와 만나 고향인 방갈로르에서 집회를 이어갔죠.

영국의 위민 인 블랙은 제네 우 크르놈 프로티브 라타, 평화와 자유를 위한 여성국제연맹(WILPH,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과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Greenham Common Women's Peace Camp)를 지원하고자 식량과 물품을 싣고 트럭을 운전한 여성들의 모임에서 발전했습니다. 

제네 우 크르놈 프로티브 라타에서 영감을 받아 스페인과 벨기에의 여성들 역시 위민 인 블랙 그룹을 형성했고, 전 세계 여성들의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확산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서의 위민 인 블랙도 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스페인의 무헤레스 데 네그로(Mujeres de Negro, 스페인어로 위민 인 블랙(Women in Black)을 의미)와 위민 인 블랙 벨기에는 이후 계속해서 위민 인 블랙 네트워크 내 국제 협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무헤레스 데 네그로가 콜롬비아를 방문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열정적으로 폭력과 전쟁에 반대해 온 여성운동의 본거지 중 하나인 콜롬비아에서 위민 인 블랙 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이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로 위민 인 블랙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위민 인 블랙의 제17회 국제 컨퍼런스에는 16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여성이 참석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난민 여성에 대한 노예제, 식민지화, 무력 분쟁, 빈곤, 아파르트헤이트 등의 영향을 논의했습니다.

각각의 위민 인 블랙 그룹은 현지 상황 속에서 성장하면서 고유의 여성주의적 행동 접근법을 확립한 한편, 국제 컨퍼런스 및 웹사이트를 통해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한국에서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군사기지 문제가 지속적으로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 미군기지 이전 및 반환 문제 등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계속되는 중입니다. 관련하여 1980~90년대 영국에서 위민 인 블랙이 그린햄 커먼 미국 공군기지 미사일 배치 철수 운동을 벌이며 활약했고, 그 결과 미사일 배치를 막아냈다고 들었습니다. 반기지 운동으로서 ‘미사일 배치 저지’라는 실질적 성공을 거둔 해당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와 함께 이 활동이 위민 인 블랙에 어떤 경험과 의미를 남겼는지 청해 듣고 싶습니다.
 

수 핀치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는 위민 인 블랙의 주요한 전신(前身)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980년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남부의 그린햄 커먼에 핵탄두 탑재 지상 발사형 미국 미사일 96기를 배치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폐비행장에서 그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지구 생명을 위한 여성(Women for Life on Earth)’ 소속의 활동가 36명이 몇몇 남성 및 어린이들과 함께 웨일즈에서 그린햄까지 120마일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린햄에 도착한 후 여성들 중 일부가 정문과 울타리에 쇠사슬로 자신을 몸을 묶었고,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성평화캠프는 국제 여성평화운동에 영감을 주었고 이는 위민 인 블랙의 기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반핵 시위와 초기 평화주의 운동의 전통을 토대로 성장한 그린햄 캠프는 핵무기 반대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 영국의 평화와 정치 활동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태도와 관행에 대한 여성주의적 저항을 제시했습니다. 캠프는 창의적 시위, 여성주의적 임파워먼트(empowerment), 비폭력에 대한 관점, 핵무기와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발전시키며 19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투옥되기도 했죠.

4년 만인 1987년에 미-소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이 체결되었고, 1991년에 이르러 그린햄에 배치된 순항 미사일도 철거되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린햄 여성들이 위민 인 블랙이 되었습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유고 내전 당시에 위민 인 블랙 런던이 지원활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특히 전시 성폭력 피해와 관련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지원 및 행동이 전개되었는지요? 
 

수 핀치

1992년에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반대하는 몇몇 그린햄 여성들이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의 반민족주의 여성 단체에 연락을 취해 그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베오그라드의 위민 인 블랙, 즉 제네 우 크르놈은 여성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원조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모든 분쟁 당사국의 실향민과 난민 여성,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가 네트워크를 위해 인도주의적 원조와 기타 지원을 모아 전달하는 ‘구 유고슬라비아 지원 여성회’(WATFY, Women's Aid To Former Yugoslavia)가 조직되었습니다.

1992년 9월, 트럭 세 대를 몰고 류블랴나와 자그레브에 구호품을 전달한 아홉 명의 여성이 베오그라드에 당도했습니다. 이들은 제네 우 크르놈을 만나 위민 인 블랙 집회에 합류합니다. 시안 존스(Siân Jones, 현재 위민 인 블랙 웹사이트(www.womeninblack.org)의 국제 조직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제네 우 크르놈의 정치적 견해는 계시와도 같았죠. 가부장제, 전쟁, 군국주의, 여성 폭력의 연속적 성격이 이토록 명확하게 이해된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위민 인 블랙 웹사이트(womeninblack.org) ⓒWomen in Black

 

WATFY는 제네 우 크르놈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반전 침묵 집회와 검은 옷 집회라는 아이디어를 영국 전역의 네트워크로 전파했고, 이렇게 영국에서 위민 인 블랙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강간이 전쟁 무기로 사용되는 데 대한 새로운 정보 역시 네트워크에 공유되었습니다.

국제법상 이미 전쟁 범죄로 명문화된 전시 강간의 기소를 촉구하려는 포괄적 캠페인이 전쟁 범죄에 반대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War Crimes)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연합 활동가들은 로비와 캠페인을 벌이면서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여성들과 함께 1993년 런던에서 대규모 시위를 개최했습니다. 이들은 또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비롯, 모든 전쟁의 당사자들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자행한 개인 및 집단 강간, 성노예화, 고문 행위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도록 국제적 압력을 가하는 여성 활동가, 단체 및 변호사들의 국제 연합에 합류하게 됩니다.

국제법상 범죄로서의 강간에 대한 최초의 유죄 판결은 1997~1998년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이뤄졌습니다. 이후 설치된 재판소들도 일련의 기념비적인 소송들에서 강간이 고문의 한 형태이고, 강간과 성폭행이 집단학살 행위를 구성할 수 있으며, 노예제 또는 성노예화를 포함한 성폭력이 전쟁 범죄 및 반인도 범죄로 기소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RIMSS

 

각주

  1. ^ Cynthia Cockburn, Introduction to Women in Black: Against Violence, for Justice, Merlin Press, 2023.

연결되는 글

  • ‘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2)
    ‘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2)

    위민 인 블랙은 개별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에서 전시 강간과 폭력에 이르기까지 양방향으로 전개되는 폭력 연속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 핀치(Sue Finch),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2023.09.18

  • ‘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3)
    ‘위민 인 블랙 런던’ 수 핀치 인터뷰 (3)

    위민 인 블랙 런던은 2000년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런던 중심부 트라팔가 광장 인근의 에디스 카벨(Edith Cavell) 동상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수 핀치(Sue Finch),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2023.09.25

글쓴이 수 핀치(Sue Finch)

1982년 영국의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Greenham Common Women's Peace Camp)를 지원한 이래로 평화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위민 인 블랙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참여해 왔다. 최근에는 위민 인 블랙의 역사를 다룬 동료 신시아 콕번(Cynthia Cockburn)의 저서 『위민 인 블랙: 폭력에 맞서며,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며(Women in Black: Against Violence, For Peace with Justice)』(Merlin Press, 2023)를 완성하였다. 콕번은 이 책의 집필을 마치지 못한 채 2019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글쓴이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팀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시즌1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시즌4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격주로 모여 국제법 관련 자료를 함께 읽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젠더기반폭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동시대적인 문제의식 속에 녹여내며 함께 공부해 왔습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국제법은 하나의 실천(조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진행해 오는 동안 한국에서는 두 건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판결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 제국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선구적인 판례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원고들의 소를 각하했습니다. 우리 세미나 팀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러 보고서와 판결문, 의견서, 포로심문서 등을 읽으면서 무력 충돌 하에서의 젠더기반폭력, 국제전범재판에서의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불처벌 문제, 범죄행위로서의 식민지배와 이에 대한 불처벌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료들을 읽어가며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떠한 문제 제기가 가능할지 고민해 온 맥락에서 이번에 ‘위민 인 블랙’ 런던과 베오그라드의 수 핀치 선생님, 스타샤 자요비치 선생님 두 분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국제법위안부 세미나〉 김수용 김엘림 심아정 이슬기 이은진 이지은 장수희 장원아 장은애 조시현 홍윤신 후루하시 아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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