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목소리〉를 통해 본 영화 〈침묵〉에 대한 단상

문정현

  • 게시일2022.01.25
  • 최종수정일2022.11.28

최근 박수남 감독이 제작하고 있는 장편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가편집본을 보며 박 감독님과 감독님의 따님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박마의 씨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전작인 <침묵>(박수남, 2017)의 한국 쪽 제작에 도움을 드렸던 인연으로 나는 감독님의 신작에도 함께 하게 되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박수남 감독이 일생 찍어왔던, 하지만 긴 시간 깡통 속에 갇혀 있던 과거의 필름 촬영본들이 복원되어 주 재료가 되는 영화이다. 이는 근현대 동아시아의 식민지배와 전쟁, ‘군함도’의 현장 촬영 등을 포함한 조선인 강제징용 및 원폭 피해자 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반성과 사과는커녕 극단적으로 우경화 되어가고 있는 일본 사회에 일갈하는 이야기이다. 박수남 감독이 평생을 바쳐 이야기하고자 했던 조선인 피해의 역사가, 묻혀 있던 소중한 자료들을 통해 보여지고 들려질 것이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많은 부분 전작 <침묵>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영화 <침묵>을 내외적으로 확장하는 자료들과 내러티브, 그리고 박수남 감독의 삶의 역사가 담겨질 예정이다. 

<침묵> 스틸컷 01 ©시네마달


<침묵> 제작 당시 박수남 감독과 여러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박 감독님은 자신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박수남 감독의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남북한 그리고 일본 모두는 국가로서 자격 없음, 피해 당사자인 재일조선인과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만이 말할 권리와 외칠 권리와 배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하는 듯했다. 그 이유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것들이었고 내가 조금의 반론을 할라치면 ‘그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과의 일방적인 관계 단절은 물론, 남한사회 시민단체들에 대한 실망이 컸고, 특히나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의 배신과 변절에 상처가 많았다.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함께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박수남 감독의 글과 영화를 꾸준히 응원하고 지지해온, 이제는 노년이 된 소수의 일본 시민운동가들뿐인 것 같았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당하며 소수자로서 살아왔을 박수남 감독은 코마츠카와 사건(재일조선인 문제)[1]을 통해 민족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평생 강제징용 조선인, 원폭피해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오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냈고 이 문제들의 해결이 인생의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박수남 감독은 영화 속에서 민족 개념을 앞세워 이 피해의 역사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고 그런 그의 태도가 다소 경직된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널리즘 다큐(탐사보도/고발다큐)에 기반한 박수남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침묵>에서 주요 사건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내에서의 활동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고 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 등장인물의 인터뷰와 내레이션으로 그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익숙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로 가졌던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영화운동에 나서는 박수남 감독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언니’라 부르며 가족처럼 지냈던 그이기에 이전 영화들과 달리 감독 개인의 역사, 관계의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어 영화 속에 넣어보자고 제안했다.

잠시 생각하던 박 감독님은 ‘그렇게 합시다’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감독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이 생략되고 압축되어 영화 <침묵>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비국민으로 살아야만 하는 일본 땅에서 조국인 남북한은  박수남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는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본인을 둘러싼 모든 불의와 부당함과 차별과 부조리함에 맞서 싸워왔다.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강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박수남 감독, 조금의 틈에도 공격당하기 일쑤였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은 그렇게 다른 소수자들과 연결되어 함께 싸울 수밖에 없는 절대 절명의 것이었다. 다른 소수자들의 삶을 동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연대의 운동이 아니라 어쩌면 집단의 저항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수자 운동을 할 때 가장 주의할 점에 대해 ‘절대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 누구든 100% 믿지 않기’ 등이라고 말했었다. 자신을 포함해 소수자들의 자기 극복의 목적과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 다른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 그리고 소수자들 각각의 차이와 그 정도를 이해하는 것, 이를 공감하고 존중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더불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그는 꿈꾸고 있었다.

<침묵> 스틸컷 02 ©시네마달


<침묵>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일조선인들이 말하는 국가와 민족은 소위 남북한 땅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개념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는 분단 전 ‘조선’이라는 실체 없는 국가와 민족을 지칭함을 넘어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 그리고 존재 자체로서 국민국가의 신화에 균열을 주는 세계 인민으로서의 발화인 것이다. 정착했지만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 부유하며 끝없이 불안한 마음들,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제 이들이 각자의 존재로 증명하는 역사 긍정에 주목하게 된다. 세상 모든 불의한 것들을 부정하고 그것들과 싸워나가는 박수남 감독의 모습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보게 된다. 

편집 중인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한 장면,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박수남 감독이 일본의 ‘60대 맹인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입학식에서는 으레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불렀던 상황인 것 같다. 기미가요가 흘러나오자마자 보란 듯이 당당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는 박수남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부정한다는 것, 이미 체화된 언어를 부정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박수남 감독 특유의 시니컬함과 당당함 뒤에 잠깐이지만 고립되고 외로움 가득한 사람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 전체 삶을 관통해왔을 불안함과 외로움 그리고 침묵의 시간들, 그 침묵의 시간을 형상화하고 재현하기 위해 펜 대신 카메라를 선택한 그녀, 이제는 건강이 허락지 않아 예전처럼 현장을 누비진 못하지만 과거의 필름 화면들을 들으면서(감독님은 시력 악화로 영상의 소리만으로 이미지를 파악하고 있다) 따님과 함께 치열하게 편집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강한 힘을 느낀다. 한 개인의 삶이 정치가 되고 우주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이 시간이 ‘침묵’을 넘어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전하기를 희망한다. 

각주

  1. ^ (편집자 주) 1958년 당시 18세였던 재일교포 이진우가 일본인 여학생 두 명을 살해한 사건. ‘이진우 사건’이라고도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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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문정현

영화감독. 다큐멘터리 제작 그룹 '푸른영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산자>(2017), <가면놀이>(2012), <용산>(2010), <할매꽃>(2007)을 연출했고, <붕괴>(2014), <경계>(2014) 등 다수의 작품을 공동연출했다. 박수남 감독의 <침묵> 제작 당시 기획과 편집작업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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