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의 틀로 사유한다는 것

김주희

  • 게시일2022.01.10
  • 최종수정일2022.01.10

1. ‘여성됨’의 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의 문제”라는 말은 이제 어지간히 분별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여성혐오 세력, 안티페미니스트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제재하기는커녕 혐오 세력의 눈치만 보는 상황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의 문제”라는 말은 재천명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 시대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의 틀로 사유한다는 의미를 점검하고자 한다. 

여성인권(women’s human rights)이라는 가치가 국제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근래의 일이다. 국제사회는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 사회권과 자유권으로 이원화되어 체제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인권을 보편적 이념으로 제시하고자 했고, 이때 인종, 민족, 종교 등의 이슈와 함께 여성인권이라는 범주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제2차 유엔세계인권회의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인권’이 구체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여성인권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은 아마도 “여권은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일 것이다. 1995년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당시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인권은 여권이고 여권은 인권이다”라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는 전시 성폭력, 지참금 살인, 여아살해 등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의 사례를 예로 들어 ‘여성으로서의 권리’가 보편적 인권과 별도로 논의될 수 없음을 설파하였다. 

‘인권=여성인권’임에도 여성인권이라는 동어반복이 필요한 이유는 ‘여성됨’ 그 자체로 경험하게 되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성매매, 아내구타가 대표적이다. 성폭력, 성매매, 아내구타는 여성 개인에 대한 폭력을 넘어 여성 집단을 예속화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 여성과 여성 억압적 제도 사이에는 여성 스스로가 동의하는 모양새를 취하도록 만드는 다양한 문화적, 절차적 개입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성됨’은 성역할 규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극단에 전시 ‘위안소’ 제도가 있다. 그러므로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사유한다는 것은 (‘남성됨’과 극단으로 상반되는) ‘여성됨’에 대한 구조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을 견지한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의 증언이 있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이다. 이러한 증언은 1980년대 말, 한국에서 정치적 수준의 민주화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여성운동 단체가 성장하고 활동이 가시화되었던 시대적 배경 속에 자리한다. 특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 사건이 교도소 내 단식투쟁을 동반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해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성폭력에 대한 민중의 비판적 문제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쳐서야 “남편도 자식도 모두 죽고 없는 지금 눌러온 한을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다”는 김학순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었다.[1]

냉전 종식 이후에야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될 수 있었듯이, 한국에서도 1990년대가 되어서야 김학순의 증언이 청취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었다. 과거 여러 지면을 통해 드러난 김학순 이전의 ‘위안부’ 피해자가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김학순의 증언을 ‘최초’로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혜인은 이를 두고 “당시 한국 사회는 이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2] 어쩌면 당시 청취자들은 이들의 호소를 인식할 만한 인권의 프레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학순의 증언은 ‘여성됨’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여성인권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청취된 최초의 피해 증언이었다.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여성인권이라는 국제사회적 프레임 역시 제3세계를 비롯한 전 세계 여성 개인들의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폭력’을 청취하면서 만들어졌다. 동시대라는 지평에 놓여있긴 해도 엄밀히 따지면 시기적으로 김학순의 증언은 비엔나 인권회의를 앞선다. 특히 1995년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르완다와 보스니아의 내전 당시 발생한 전시 강간, 무력 분쟁에서의 성폭력 피해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로 대두되었다.[3] 그밖에 1세계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의 글로벌 페미니즘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도전을 통해 여성인권의 보편성은 끝없이 의심되고 도전받으며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 있다. 

인권의 보편성과 상대성이라는 쟁점, 인권의 담지자로서의 여성 개인과 집단정치적 개념으로서의 여성인권이라는 쟁점은 이처럼 서로를 견인하며 종합되었다. 자유권, 사회권 외의 연대권으로 분류되곤 하는 3세대 인권이라는 말이 대표하듯이 인권 패러다임은 항상 진화 중이다. 그렇다면 여성인권 이슈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서 서로를 어떤 방향으로 견인해야 할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2. 여성해방의 문제

일찍이 “서구의 시선 아래” 제3세계 여성들의 현실을 단일한 방식으로 분석하곤 하는 유럽중심 여성주의를 비판했던 찬드라 모한티는 전 세계 여성들이 반자본주의 실천에 개입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4] 많은 전문가들 역시 “인권이 전문적 권리체계로만 치달으면 거시적 사회변동과 분리된 미시적 개입 테크닉으로 왜소화”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5] 진화의 과정 중에 있는 여성인권의 문제의식 역시 협소한 권리 증진의 실험실과 재판장을 넘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산과 연동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이 쓴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꿈지모 옮김, 동연, 2013)라는 책에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일화가 등장한다. 이 책의 부제는 “힐러리에게 암소를”이다. 베이징 여성회의 몇 달 전 힐러리는 그라민 은행의 여성 전용 소액대출(microcredit) 사업을 통한 여성들의 자립 성공 사례를 확인하고자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방글라데시의 농촌마을에서 여성들과 회견을 가진 힐러리는 농촌여성들로부터 “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암소가 없다고 답한 힐러리에게 여성들은 “불쌍한 힐러리! 그녀는 소도 없고, 자신의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라며 동정했다고 한다.[6]

이러한 사례는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단순히 원조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정에 적극 참여하며 자급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훈훈한 일화다. 하지만 암소를 소유한 방글라데시 여성과 암소가 없는 힐러리라는 대결은 어쩐지 범박하다. 각각 사회권과 자유권을 상징하는 듯한 모양새이다. 우리는 이 경제체제가 둘을 대결시키고 취하는 이득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높은 이자 수익을 통해 달성한 그라민 은행의 성공은 누구로부터의 수익이며 어디로 재투자 되었는가? 채무자 여성의 수를 늘리는 발전 전략이 왜 가난한 여성들의 해방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힐러리가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언급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사례들은 여성 억압적 문화에서만 기인한 문제인가? 결국 힐러리와 방글라데시 여성의 대결은 자유권과 자유권의 경합에 머물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는 당시에 동사무소에서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주는 쌀과 지원금 3만원, 취로사업에서 번 돈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대문교회에서 우연히 원폭피해자 이맹희 할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김학순 할머니는 이맹희 할머니가 일본에서 피폭을 당하고 어렵게 살아 온 사연을 듣고서 자신의 과거도 털어놓게 되었다. 이맹희 할머니는 여성단체에 얘기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중략)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7]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의 틀로 사유한다고 했을 때 이 장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명의 식민 지배의 피해자는 왜 가난한 여성 노인의 형상으로 등장한 것일까? 폭력의 제도화와 여성 배제의 경로 문제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명예대표를 지낸 이효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전개과정”이라는 글에서 정대협 활동 초기 생존자 지원 활동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했다.[8] 위로행사, 생존자 복지활동,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생활대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의 활동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무시하고 배제했던 이들을 경제적으로 보살피는 활동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통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차관 2억 달러를 지급받았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경제 성장이 촉진되었으나, 국제사회적 여성인권에 대한 명분도 제기되지 않았던 시기 이 돈이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지급될 리 만무하다. 이후 피해에 대한 배상이 아닌,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이후 복지비용 명목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생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이 지급되고 의료혜택이 주어졌다. 이러한 이슈는 여성인권의 시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김학순의 증언은 경제 발전과정과 사회 구성에서 배제된 경로와 위치성을 드러내는 증언이기도 하다.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와 사회는 자신들의 불인정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통해 현시한다. 우리는 성폭력 ‘사건’ 이후, 혹은 ‘미투’ 이후 피해자에 대한 따돌림, 해고, 승진 누락, 좌천의 많은 사례를 목격했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여성들의 사회적 승리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누가 피해를 증언하며 피해자가 되길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간 여성인권 개념을 통해 피억압자,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국내, 국제사회에 자신의 피해를 드러낼 수 있었다면, 이제 여성인권 개념을 통한 사회적 재편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인권 의 가치를 고려한 배상 문제는 사회의 재분배 전략과 함께 가야 한다. 피해자의 말을 청취하고자 하는 여성주의의 윤리는 현재 우리가 도달한 성장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인지하고 배제된 자들 중심의 사회적 재편을 모색하는 정치학의 같은 말일지 모른다.  
 

각주

  1. ^ 조현욱, “나는 정신대” 처음 밝힌 김학순할머니, 중앙일보, 1991.8.15.
  2. ^ 한혜인,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한겨레, 2015.8.7. 
  3. ^ 베티 리어든,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황미요조 옮김, 나무연필, 2020, 223쪽.
  4. ^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경계없는 페미니즘』, 문현아 옮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5.
  5. ^ 조효제, 비엔나 인권체제 25년, 한겨레, 2018.6.5.
  6. ^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꿈지모 옮김, 동연출판사, 2013. 
  7. ^ 이희자, 김학순을 추억하다 1: 김학순 할머니와 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 https://kyeol.kr/ko/node/179
  8. ^ 이효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전개과정,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엮음, 한울아카데미, 1999, 218-223쪽. 
글쓴이 김주희

여성학 연구자. 덕성여자대학교 차미리사교양대학 조교수.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동원해온 문화, 금융, 제도, 국제정치와 여성의 경험에 관심을 두며 연구하고 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운영위원, 『뉴래디컬리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레이디 크레딧』,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공저), 『페미니스트 타임워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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