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명』이 연극 <한 명>이 되기까지

국민성

  • 게시일2021.10.25
  • 최종수정일2021.11.26
김숨 작가 특집: 역사, 증언, 그리고 문학
 

1991년 김학순의 증언 이후 30년.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을 ‘듣는’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을까. 낯선 땅으로 ‘끌려간 소녀’, 고통의 기억을 몸에 새긴 ‘할머니’,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여성인권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그저 ‘피해생존자’로 한정하고 손쉬운 프레임 안에 가둬온 것은 아닌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6년 이후 또렷해진 페미니즘 담론과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질문은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복수의 구술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김숨의 장편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은 발표 이후 꾸준히 이 ‘재현’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재료로 이야기되어 왔으나, 이 의제가 갖는 중요성과 무게에 비해 충분히 논의되었는지 의문이다.

2021년 9월, 동명의 소설이 연극으로 재탄생하여 무대에 올랐고, 이 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극중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부 등록 일본군’위안부’ 생존자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가고 있다. 웹진 <결>은 피해 당사자이자 목격자, 증언자이자 기록자로서의 ‘한 명’들의 기억이 현재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지 진지한 논의의 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소설 『한 명』을 포함한 김숨 작가의 글을 중심으로 네 명의 필진이 ‘위안부’ 문제의 재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이 각각의 질문이 앞으로 더 발전적인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01. 소설 『한 명』이 연극 <한 명>이 되기까지 | 국민성
02. 묻기에서 듣기로 단수에서 복수로, ‘위안부’ 서사 규범의 변화가능성 - 증언소설로서의 김숨의 『한 명』 | 권김현영
03. ‘한 명’이 마지막이 되지 않으려면 | 강희정
04. 저문 증언의 시대에서 | 박혜진


소설 『한 명』(김숨, 현대문학, 2016)은 대학로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극단 유목민이 김선영의 『애니깽』(한라출판사, 1990), 신경숙의 『리진』(문학동네, 2007)에 이어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 레퍼토리로 선택한 세 번째 소설이다.

극단 유목민은 역사극의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진 연극계에서 역사연극을 시리즈화할 의도로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역사 소재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검증된 소설문학을 연극적 미학과 형식을 갖춘 희곡으로 각색하여 공연하기로 했는데, 이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행사성 공연이 아니라 극단의 장기적인 레퍼토리 사업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필자가 극단 대표인 손정우 연출로부터 프로젝트 참여 제안을 받은 것은 2020년 12월 20일, 세 번째 각색 작업이었고 작품은 미정인 상태였다. 그날부터 각색하기에 적합한 작품을 찾기 위해 연출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은 근대로 한정하고, 사건 중심의 작품으로 갈 것인가, 인물 중심의 작품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면서 서로 작품을 추천하고,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소설 『한 명』 표지와 연극 <한 명> 포스터

 

다양한 소재의 소설이 많았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독창적인 해석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독자로서 신선했고, 극작가로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다만 무대로 형상화하기에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해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3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공연 일정이 잡힌 상태에서 작품 선정을 못하고 있으니 불안감과 피로감으로 스트레스가 쌓여갈 때쯤 연출이 김숨 작가의 소설 『한 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말에 읽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다. 소재가 주는 충격이 너무 강력해서 겁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다양한 장르에서 다뤘기에 변별성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무엇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소재를 다루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작가관이다. ‘위안부’ 문제를 필자는 작가가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객관화할 자신이 없었다. 20여년이 넘는 극작 활동에도 이 소재에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유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에 마땅한 작품을 찾아야 했기에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자인 ‘그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참혹한 실상이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고 세밀한 묘사에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힘들었다. 답답했다.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장면에서는 저 아래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목울대가 얼얼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가족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소녀들을 대할 때는 처연해서 감정이 북받쳤다. 책을 펼쳤다 덮었다 반복하다 보니 3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을 다 읽는 데 3일이나 걸렸다. 객관화가 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참혹하다’, ‘끔찍하다’, ‘잔혹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단어로도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힘들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지독하게 잔인한 괴물일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그 대상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왜 왜 왜… 질문만 되풀이했다.

연극 <한 명> ©극단 유목민

 

김숨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증언록을 읽으면서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우리가 잘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필자 역시 그랬다. 소설 『한 명』을 읽고서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인데. 그만큼 소설의 내용은 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어떤 소설적 상상도 넘어설 만큼 가공할 만한 역사적 사실. 그 사실을 오롯이 기억한 채 살아야만 했던 아흔세 살의 ‘그녀’가 들려주는 삶과 기억들. 

필자는 여러 편의 고전과 소설을 각색했다. 희곡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기도 하고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원칙은 하나다. 원작에 충실할 것. ‘원작에 충실하지 않으려면 창작을 하면 되지 왜 각색을 해?’라는 생각으로 각색 작업을 할 때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무대 형상화가 될 수 있는 구성에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 그런데 소설 『한 명』은 증언에 의해 밝혀진 역사적 실재와 작가의 상상적 개입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고는 하나, 증언들이 너무 강해서 원작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다 보면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럼 연극적 미학은 소멸될 것 같았다. 연출은 모티브만 가져와서 새로운 창작을 하기를 원했다. 그러면 굳이 왜 각색을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필자의 원칙대로 각색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아 고민이 깊어졌다.

끔찍하고 처절한 피해자들의 삶을 굳이 무대에서 보여줘야 할까. 아니, 어떻게든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다 한들, 실제 피해자들이 겪은 그 어마어마한 고통과 참혹함이 재현 가능할까. 흉내만 냄으로써 대상화되진 되진 않을까. 관객은 이 무거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선뜻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작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극 <한 명> ©극단 유목민

 

다시 읽기를 시도했다. 그러다 지치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리모컨만 눌러댔다.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필자는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찾아본다. 채널을 돌리다 내전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의 상황과 그로 인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소설 『한 명』의 상황이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위안부’ 이야기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작품화할 이유를 찾았다. 

문제는 차별화였다. 소설 『한 명』이 다른 ‘위안부’ 이야기와 다른 점이 뭘까.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작품이 피해자들이 겪은 지옥살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 명』은 지옥살이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을 또 하나의 플롯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한 명』은 화자인 ‘그녀’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20만 명의 삶을 들려주면서도, 그 후유증으로 인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살이 못지않은 고통과 번뇌의 참혹한 삶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위안소에서 해방된 지 73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어떤 경험이나 기억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물론 일시적이었을 테지만 그 자체로도 엄청난 고통이다. 하물며 폭력의 수위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위안부’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는 어떠하겠는가. ‘그녀’가 ‘위안부’로서 살아야 했던 7년은 온전한 정신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잔혹한 경험이었고, 지우려 발악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이었으며 그로 인해 73년 동안 잠들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험한 과거가 창피스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 형제자매에게도 죽은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못한다. 게다가 혼자 살아서 돌아왔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고 매체를 통해 고백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녀’의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이전에는 누구의 잘못인지도 몰라서 항변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철저히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다시피 하며 살았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든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간다. 폭력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번 가해진 폭력은 피해자에게 평생의 올가미가 되기 때문이다.

엄두를 기다리는 시간 ©백정미


소설 『한 명』을 각색하기로 결정하고도 방향성에 대해 연출과 계속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전히 잘못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피해자의 호소를 부각시켜 국제적인 문제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피해 당사자, 즉 개인의 삶에 미치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집중할 것인지…. 

고민 끝에, 험한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는 ‘그녀’의 기구한 삶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와 고통을 안기는지를 보여주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극 <한 명>의 희곡은 필자 혼자서 완성할 수가 없었다. 연습을 시작하는 7월 이전까지 공연 대본화를 위해 손정우 연출과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수정보완 작업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 부딪힌 적도 있었다. 필자가 작품에서 빠지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연출은 집요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은 여성을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킨다. 김숨 작가는 소설 『한 명』을 통해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해서, 연극 <한 명>은 연출의 재창작에 가까운 각색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설 『한 명』의 내용을 충실하게 살리려 했다. 작가가 ‘그녀’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극 <한 명>이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위험성, 횡포성, 공포성, 잔혹성을 대변할 수 있다고 본다. 바람이 있다면, 연극 <한 명>이 소설 『한 명』과 함께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불씨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잘못이 없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의 바람과 요구를 외면하는 가해자들이 ‘그녀’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김숨

소설가 김숨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바느질하는 여자』(2015),  『한 명』(2016), 『흐르는 편지』(2018),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2018),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2018), 『듣기 시간』(2021), 소설집 『간과 쓸개』(2011), 『국수』(2020) 등이 있다.

 
기사 게재일: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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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진 2021.11.26

글쓴이 국민성

극작가. 여성문제를 제기한 <인형의 가(家)>(2012, 경기문화영상위원회 창작 희곡 공모 최우수 당선), <여자만세>(2013, 한국희곡작가협회 희곡상)를 비롯하여 청년문제에 주목한 <룸메이트>(2019),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6.29가 보낸 예고 부고장>(2015)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동시대 현실문제에 천착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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