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난 조선인 피해자들 01. 이수단 이야기– 중국에 남겨진 70년 세월

안세홍

  • 게시일2021.08.09
  • 최종수정일2021.10.26
사진작가 안세홍(비영리 단체 ‘겹겹프로젝트’ 대표)은 25년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고통을 사진으로 기록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뿐만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중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140여명의 피해자들을 만났고, 사진에는 그들의 가슴 속 깊은 한이 담겼지요. ‘이것은 과거의 것이 아닌 우리가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예술작품이자 또 하나의 증언으로서 우리에게 당도한 사진 속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안세홍 작가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를 포토에세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난 조선인 피해자들]에서 전합니다. 

 

"너희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니… 이제 나랑 같이 살자."


이수단
1922년 조선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태어남. 1940년 19세에 중국 아청(阿城), 스먼즈(石门子)로 5년간 동원되었다가 중국에 남겨짐.


나는 2001년부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 부대가 주둔해 있던 중국의 옌볜(延辺), 우한(武汉),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찾으러 다녔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낯설고 척박한 타국의 땅에 남겨졌다. 70년의 세월에 조선말을 잊었고, 중국이나 북한 국적을 가지고 살거나, 무국적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었다. 

피해자 이수단을 처음 발견한 곳은 러시아가 접경해 있는 회이룽장(黒龍江)성 무단장(牡丹江)시 동닝(東寧)현 이었다. 당시 이곳에는 일본 관동군이 러시아와 대치하기 위해 주둔해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 일본군은 피해 여성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도망갔다. 피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평생 자신이 아픔을 겪었던 위안소 부근에 남겨졌다. 2001년 8월 이수단을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 지역에는, 스먼즈 위안소에서 같이 성노예 피해를 당했던 지돌이, 김순옥, 이광자가 인근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수단은 중국 위안소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군 앞잡이에게 속아 1940년 19살의 나이에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3명의 또래 여성과 하얼빈(哈尔滨) 부근 아청의 위안소로 갔다. 일본인 부부가 주인인 위안소에서 그는 히도미(ひどみ)라 불렸고, 조선말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동닝 스먼즈 수즈랑(鈴蘭)이라는 위안소로 갔다. 장소와 주인만 바뀌었을 뿐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고통은 똑같았다. 오전에는 사병, 오후에는 계급이 있는 군인, 밤에는 장교가 와서 자고 갔다. 1주일에 한번 군의관의 성병 진료가 있었지만, 결국 그는 성병에 걸려 동닝 시내 큰 병원에서 열흘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쓰인 치료비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겹겹이 쌓여가는 고통

전쟁이 끝나고 이수단은 중국에서 홀로 살아남기 어려워 위안소 부근 따두촌(大肚川)마을의 한족 남자와 결혼을 했다. 과거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남편의 모진 폭력으로 점점 살기는 어려워졌지만,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마을에서 부녀회장으로 활동할 만큼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살아왔다. 1980년대 중반 남편이 죽을 무렵, 그는 나이가 들어 혼자 살 수 없어 경로원에 들어와 살았다.

그와의 첫 만남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피폐해진 삶의 고통을 덜기 위해 겹겹프로젝트 회원들과 함께 의료, 복지 지원을 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기록하러 중국을 수시로 오갔다. 2014년에도 이수단을 만나기 위해 동닝으로 갔었다. 2년 전 그를 방문했을 때에는 두 번의 뇌 수술 등 병환으로 수척한 모습이어서 그때 만남이 마지막이 아닐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는 2년만에 건강을 회복해 침대에 걸쳐 앉아 서로 마주했다. 칙칙했던 방 안 침대 주변으로는 아기 사진이 도배되어 있고, 그는 머리카락이 없는 아기 인형을 꼭 껴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 저 알아 보시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다행히 나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었다. 시선이 방안 곳곳으로 향했다. 이수단은 정신분열증이 심해져 사물에 집중하지 못했다. 첫날에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다음날에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어제 다녀간 것조차 기억에 없었다.
 

중국인 리펑윈으로 잠들다

2016년 5월 어느 날 저녁 무렵 이수단에게 다녀온 지 두 달 반 만에 동북지역 피해자들을 보살펴 오던 엄관빈 선생으로부터 그의 부고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나는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집으로, 함께 겹겹프로젝트 활동을 하고 있는 황성찬은 중국 웨이하이(威海)의 집으로 가야 했지만, 그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지키고자 서울에서 옌지(延吉)로 가는 마지막 남은 비행기 표 두 장을 구했다. 다음날 해가 떨어진 후 도착한 동닝의 어둑한 장례식장에는 고 이수단의 빈소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그 앞에는 양아들이 그녀의 아기 인형을 안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션양(沈阳)에 있는 영사 3명이 먼저 도착해서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관 주변으로 이수단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화환이 빼곡히 차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장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등 높은 사람들의 이름이 즐비했다. 그동안 이수단 곁에 있던 경로원장과 양아들, 시댁 식구들이 마지막 가는 자리를 지키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그는 1922년 조선인 ‘이수단’으로 태어나 일본 이름 ‘히도미’로 성노예 피해를 당하고, 2016년 5월 17일 오후 3시, 중국인 리펑윈(李凤云)으로 생을 마쳤다.

 

[사진설명]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해 나이가 들수록 아이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그의 방은 아기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2014년 정월에 경로원장이 선물한 인형을 받아 든 그의 첫마디는 ‘너의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니? 이제 나랑 같이 살자’였다.
 

[사진설명] 그는 동족, 동향 사람이 왔지만, 자신의 아픔을 조선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과거 위안소에서의 아픔보다 더 힘들어 했다. 중국인들과 섞여 사는 사이 우리말은 잊었지만, 아리랑을 부르고 한국에서 가져간 신문에 쓰인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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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세홍

사진가.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을 사진 및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들의 삶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겹겹프로젝트’를 25년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2020, 글항아리), 『겹겹: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2013, 서해문집)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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