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로의 시간 여행, 상상해본 적 있나요? - 『푸른 늑대의 파수꾼』 김은진 작가 인터뷰

웹진 <결>편집팀

  • 게시일2021.07.26
  • 최종수정일2021.09.14

일본군‘위안부’, 청소년 문학, 판타지. 김은진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이처럼 주목할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위안부’ 문제를 말하면서도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이용해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주인공 수인을 통해 그 시절 여학생들이 가졌던 열정과 포부를 보여주며 당시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조선의 명가수가 꿈인 소녀,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노랫가락을 맛깔나게 뽑아 앙코르 요청을 끌어내는 소녀, 뒷간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노래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소녀. 그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덧입혀져 왔던 고정관념이 한풀 벗겨지는 순간이다.

제9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출간된 이 책은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수인은 흑백 영화 같은 일제강점기 경성 거리를 거닐고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 한마디로 컬러풀하기 그지없는 소녀다. ‘위안부’ 할머니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생기발랄한, 현재의 10대보다 더 10대다운 소녀로 제시한 점은 앞으로 나올 청소년 소설이 어떻게 역사와 그 속의 인간을 살려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일 낮,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과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한층 몰입감을 더했던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김은진 작가 ©오늘의 나


Q. 웹진 <결>의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단편동화 「애꾸눈 칠칠이 아저씨의 초상」으로 등단했고,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출판사 편집자, 무대 연출 회사 PD로 일했어요. 우먼센스, 쎄씨, 여성중앙, 쉬즈, 라벨르 등 여성 잡지 프리랜서 기자와 MBC가이드, 금호건설 등 사보 필자로 글을 썼고 기업 사사(社史) 집필도 했습니다.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좇기 시작한 때가 2010년이라고요. 처음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안에 물음표가 쌓이고 쌓여서였던 것 같아요. 90년대 중반에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를 본 적이 있어요. 분명 슬프고 감동적인데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남는 거예요. 이게 뭘까 싶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7년에 미국 LA에서 5학년 한인 여학생이 수업 거부를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내용을 들여다보니, 학교에서 역사 보조교재로 사용하는 『요코 이야기』(일본계 미국인 작가의 소설) 때문이었어요. 부모님에게 들었던 역사적 사실과 책 내용이 완전히 달랐던 거죠. 책에는 일본이 패망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남성들이 일본 소녀들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동아시아 국가에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없이요. 
프랑스에서 여성 교수가 일본 우익재단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는 한겨레 기사도 제게 궁금증을 남겼어요. 전쟁 범죄 사실을 왜곡하는 사사카와재단(笹川財團)이 관련된 학술대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50여 명의 교수들이 성명을 냈는데, 일본재단이 당시 여성 박사 한 명을 표적 삼아 거액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건 거예요. 비슷한 맥락의 기사들을 접하며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인식하게 됐어요. 전쟁 피해국의 시민으로서 어떻게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2010년에 취재를 시작했죠.

Q. 책은 비교적 밝은 톤을 유지해요. 그러한 성격을 취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초고를 쓸 때 ‘왜 굳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라는 반응이 꽤 있었어요. 일제강점기는 고통스럽고 뒤돌아보기 싫은 시기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는 거죠. 근데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쓰긴 써야 할 텐데 ‘어떻게’ 써야 할까가 고민이었죠. 그래서 장르를 통해 읽는 재미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Q.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요? 
창작 초기에 동화와 청소년 문학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죠. 그 재미와 감동, 예술성을 저도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가 집필 당시 직접 그린 소설 속 동네 지도 ©오늘의 나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소설로 풀어내면서 힘들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할머니들의 소녀 시절을 재구성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피해자분들의 증언집도 여러 권 봤는데 상상이 잘 안 되더라고요. 좀 헤매다 옛날 동아일보 기사를 보게 됐고, 1920년부터 1940년 폐간 전까지의 기사들을 일일이 타이핑하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의 언어, 풍물, 공간들이 조금씩 그려지더라고요. 그 시대의 소녀들에 대한 기사도 꽤 있어서 참고가 많이 됐어요. 수인이가 수예로 상 타는 내용이 책에 나오잖아요. 실제로 그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있던 이야기예요. ‘오엽주 미용실’, ‘시간 기념일’, ‘양조장 탈취 사건’도 기사에서 발견했고요. 그렇게 1년 이상 밤낮으로 기사를 봤어요. 나중엔 그 시대를 살아본 착각이 일 정도였는데, 그런 기분이 들고 나서야 글이 써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책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혼자서 탐색하기도 했어요. 집필 전부터 여러 지역으로 답사 다니는 걸 좋아했고, 그중에는 경기대 건축과 안창모 교수님이 진행하는 서울 답사 프로그램도 있었어요. 거기서 들은 풍월을 기반 삼아 서울역부터 남대문, 시청, 광화문, 경복궁, 서촌, 인왕산까지 많이도 걸어 다녔네요.

일본군 강제 위안부 관련 일본 측 공식 문서들. 육군 대신의 ‘위임한다’는 직인부터 직급별 결재 도장이 찍혀 있다. ©오늘의 나

일본군 강제 위안부 관련 일본 측 공식 문서들. 육군 대신의 ‘위임한다’는 직인부터 직급별 결재 도장이 찍혀 있다.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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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되 문학적 재미를 함께 고려해야 했잖아요.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있나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라는 범죄의 토대가 되는 그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앎’을 단단한 기반으로 삼은 뒤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가수를 꿈꾸는 당찬 여학생으로 묘사된 주인공 ‘현수인’ 캐릭터는 길원옥 할머니를 모티브 삼아 만드셨다고요. 
평양 출신이고 기생학교에 다니셨던 게 모티브가 됐어요. 2010년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전화를 드렸더니 충정로 쉼터에 있는 할머니를 연결해주셨어요. 대화를 나누다 할머니가 ‘가막소에 아버지가 잡혀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에피소드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평양 출신에 이런저런 이유로 경성으로 오게 되는 소녀’라는 큰 설정을 잡을 수 있었죠. 
당시 기생학교는 노래 잘하고 흥 많고 진취적인 소녀들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재능 있는 엔터테이너가 되는 거죠. 그런데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기생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겼잖아요.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길게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소설을 통해 기생에 대한 편견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또 증언집을 보면 할머니들 중에 ‘동네에서 노래 한 자락 했다’는 분들이 꽤 계세요. 발랄하고 흥 많고 똑똑한 캐릭터를 통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녀 시절과 요즘 청소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수인’이 시간 여행을 함으로써 직접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도 좋았을 텐데, 시간 여행의 주체를 중학생 ‘햇귀’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중요한 건 ‘현재’의 우리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이기 때문이에요. 일본군 강제 위안부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이게 결국 폭력이잖아요. 그러다 청소년 폭력이 눈에 들어왔죠. 1990년대 중반, 서초구에서 고등학교 남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아버지를 인터뷰해 기사를 썼고, 너무 마음이 아픈 동시에 제게 어떤 물음표가 남았던 기억이 나요. 시간이 흘러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소식을 듣고 생각했어요. 왜 학생들의 자살은 끊이지 않고 청소년 폭력은 더 심해지는 걸까. 혹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든 일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역할을 문학으로써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책에 녹이고 싶었어요. 

Q. 덕분에 수인의 미래는 바뀌지만 하루코가 비극을 맞아요.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하루코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를 벗어나 알을 깨고 나간 거예요. 죽음을 택했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죠. 자신이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하루코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돌이켜보게 만들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무고한 이가 치르게 된 희생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원도 마차중학교 학생들이 『푸른 늑대의 파수꾼』을 읽고 독후활동으로 만든 아트북 ©오늘의 나

강원도 마차중학교 학생들이 『푸른 늑대의 파수꾼』을 읽고 독후활동으로 만든 아트북 ©오늘의 나


Q.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룬 문학작품은 그리 많지 않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통스럽고 또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어떤 경계선을 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학교에 강연을 나갈 때면 학생들에게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문학을 여러분 중 누군가 써주길 바란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곤 해요.

Q. 국내에선 ‘청소년 문학’ 하면 ‘학생들이 읽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현재 청소년 소설의 위상과 역할은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세요? 
청소년 소설을 검색해보면 학부모들이 감상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청소년 문학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평도 있고요. 청소년 문학의 재미를 아는 분들이 늘어나면 저변이 확대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단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림책, 동화책 하면 어린이만 보는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글을 안다면 모든 연령이 읽을 수 있잖아요.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에 붙어 있는 연령도 독서 시작 연령을 말하는 것이지, 끝 연령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일본군‘위안부’ 하면 국가적으로 얽힌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길 바라시는지요.
국제사회에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의 감정싸움인 것처럼 비춰질 때가 많은데, 이건 명백히 일본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행한 범죄에 관한 이야기예요. 처벌받지 않은 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국제사회 시민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 부분을 항상 기억하면 좋겠어요.

Q. 현재 진행 또는 계획 중인 작업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또 하나는 장르물인데, 단편으로 썼던 걸 장편으로 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자료조사를 하며 쓰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있는데, 이른 시일 내에 소식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은진 작가 ©오늘의 나

 

Credit 

인터뷰: 퍼플레이컴퍼니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403-13 카페 콜린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각주

  1. ^ 본문 중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고 표기된 부분은, 일본군‘위안부’를 지창하는 작가 개인의 고유한 표현임.
글쓴이 웹진 <결>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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