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즈 C. 프리쳇 : 2013년 처음 ‘위안부’ 문제를 접했습니다. 그해 캘리포니아 애서튼의 멘로대학에서 열린 <85주년, 85명의 예술가(85 Years 85 Artists)>라는 전시에 초대받았어요. 개교 85주년을 기념해 85명의 예술가에게 지난 85년 중 한 해를 배정하고 그해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도록 한 다음 개최된 전시였죠. 저는 1940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먼저 1940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찾아봤지만, 작업으로 발전시킬 만한 소재를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 문득 ‘그 시기의 중국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2008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 지우장(九江)대학교에서 여러 차례 예술가 레지던시를 하며 가르친 경험이 있었거든요. 1940년 중국의 상황을 조사하던 중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일본, 중국, 대만, 한국, 필리핀, 그리고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납치하거나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다는 사실, 그리고 중국 곳곳에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기록을 접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제가 머물며 가르쳤던 지우장 지역에도 당시 일본군 기지가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제 첫 반응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제가 지우장에 있을 때는 일본군 기지나 위안소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문제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새로운 연구 작업으로 이어 나가는 편이라 ‘위안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 확장해 나갔습니다. 여성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끌려갔는가, 위안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며 여러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 로즈 C. 프리쳇 : ‘위안부’를 주제로 멘로대학 85주년 전시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문제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습니다. 이야기가 너무나 끔찍했거든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우한의 중남재경정법대(中南財經政法大學) 역사학과의 우 쉬메이(吴雪梅) 교수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우 교수와 함께 전시의 역사적 맥락, 당시 중국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전쟁이 끝난 뒤 ‘위안부’로 지목된 여성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때 중국의 일부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이 여성들을 ‘적과 내통한 자’로 간주하며 배척했고, 심지어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극학과의 엘리자베스 손(Elizabeth Son)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위안부’를 주제로 책을 쓴 학자였고, 제게 회화와 판화, 공연예술, 영상 등 다양한 예술적 접근 방식을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을 소개해주었죠. 직접 찾아본 작품들 중에는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것도 많았습니다. 어떤 그림이나 다큐멘터리는 강간 장면을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해, 어느 순간 저는 강간이라는 행위의 공포에 사로잡혀버렸고, 그 안의 여성들을 한 사람의 개별적 존재로 느끼지 못하게 되더군요. 불쾌함과 동시에 이상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런 작품들 속에서 ‘위안부’들은 예술을 통해 또 한 번 대상화되고, 일종의 ‘2차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작가들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예술가로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 물었죠.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는가?
🧶 로즈 C. 프리쳇 : 끔찍한 주제를 예술로 다룰 때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저는 작품을 개념적으로 접근했어요. ‘위안부’라는 표현에 담긴 완곡한 단어인 ‘위안’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퀼트(이불)’의 의미를 함께 떠올렸죠. 그래서 직접 종이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제지법은 기원전 100년 중국 한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의 공예이기도 하지요. [사진 2 참고]
대학원 시절에 제작했던 ‘로브(robe)’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를 바탕으로 퀼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가 읽은 증언 중 한 여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어요. 그 여성은 끌려가던 순간, 집에서 덮던 이불을 꼭 쥐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건 고향과 집을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물건이었죠. 그래서 그 상징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또 바느질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그 행위를 의도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작품의 가장자리에는 ‘200,000’이라는 숫자를 수놓았어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추정 인원입니다. 이 작품은 멘로대학의 <85주년, 85명의 예술가>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고, 이후 제가 계속 이어온 ‘위안부’ 시리즈—더 나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성폭력의 굴레를 다루는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로즈 C. 프리쳇 : 아테네에서 전시에 참여했을 때 아이슬란드의 예술가 루리 판베르그(Rúri Fannberg)가 제게 “당신에게는 아직 더 전할 이야기들이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그 말을 계기로 이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하고, 결국 중국 내 일본군 기지의 ‘위안부’들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일기처럼 손글씨로 썼어요. 그리고 그 글에 조응하는 이미지를 한쪽 패널에 함께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10점의 패널 세트는 크기가 작아 관람객이 작품과 보다 친밀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사진 3 참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사용하는 정보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 교수에게 부탁해 1937년 중국 지도를 찾아달라고 했어요. 그 지도를 바탕으로 제가 직접 모사해 만든 작품이 ‘위안부 퀼트 패치 지도(Comfort Women Quilt Patch Map, 2016)’입니다.[사진 4] 작품 속 붉은색 프렌치 매듭 자수는 일본군 위안소가 위치했던 장소들을 나타냅니다.
🧶 로즈 C. 프리쳇 : 이 작품을 만들 때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첫째, 구체적이어야 하고, 둘째,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이 세 원칙을 바탕으로 첫 작품을 시작했고, 이어서 또 다른 작품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작업 내내 자료 조사를 계속 했는데, 마치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나가는 과정 같았어요.
🧶 로즈 C. 프리쳇 : 예술이 구체적이고, 어쩌면 개인적일수록 더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고 생각해요.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주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죠. 우리의 자매, 아내, 어머니이자, 이모, 할머니,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작품 속 모든 인물을 같은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을 존엄하고 강한 존재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대받은 이들이 피해자로만 보이길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생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강인함과 존엄이 비춰 보이도록 했습니다.
두번 째, 작품은 관객이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관람객을 밀어내기보다 끌어들여야 하죠.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예술가들이 이런 접근을 어떻게 했는지 찾아보다가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그래픽 노블 『쥐』를 보게 되었어요. 그는 유대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묘사했죠. 그 방식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 이야기 안에 머무르며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어요.
아트 슈피겔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저는 일본군 병사들을 군모를 쓴 새로 묘사했습니다. 지도 위에는 붉은색 프렌치 매듭 자수를 놓아 위안소의 위치를 표시했죠.[사진 6] 작품의 이미지를 일부러 작게 만들어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끔 했고, 글씨는 일기처럼 손으로 썼으며, 실이 흘러내리듯 붉은 실 자국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이야기를 전할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어요. 저는 단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일 뿐,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몫입니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실제 증언을 읽고 그들의 말을 작품 속에 옮기면서, 오늘날 여성과 남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며 하는 말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때는 이미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고, 그 유사성을 부인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성폭력, 학대, 괴롭힘의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들뿐 아니라 친구와 가족들 역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요. 저는 그들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주고 싶었습니다.
🧶 로즈 C. 프리쳇 : ‘위안부’의 역사는 오늘날의 성폭력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했고, 사회적 약자나 저소득층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도 일해왔습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자연스럽게 트라우마, 특히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트라우마와 그 장기적인 영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시나 예술 작품 속에서 전쟁 중 일어났던 일로만 다루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을 막론하고 성적 학대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는 마침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얼마나 절박한 주제인지를 더욱 뚜렷이 보여주었죠.
이 작업에서 가장 큰 의미를 느끼는 부분은 정치적 논쟁을 넘어선 지점에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가 주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대화가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는 단지 피해 생존자 대 일본 정부의 대립으로 환원될 수 없어요. 훨씬 더 큰 맥락, 즉 우리가 어떻게 폭력과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위안부’의 역사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정치나 논란의 틀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로요. 제 ‘위안부’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강인한 존재,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로즈 C. 프리쳇 : 2018년 가을, 멘로대학에서 작가 레지던시로 돌아갔을 때 ‘위안부’ 프로젝트 전시와 함께 학생들과 협업해 ‘게시판: 침묵을 깨뜨리자(Break the Silence: Message Board)’라는 참여형 설치작업을 만들었습니다.[사진 7] 이 게시판은 성폭력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었어요. 관람객에게 접이식 카드에 짧은 한 줄의 메시지를 써서 게시판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두는 ‘공유의 장’을 만드는 것이었죠.
학생들은 전시 기간 중 저녁에 대학과 지역사회를 위한 대화의 밤을 조직했습니다. 전문가를 초청해 ‘위안부’의 역사와 성폭력이 남긴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 학생은 미투 운동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한 교수는 자신의 시를 낭독했고, 또 다른 학생은 직접 쓴 시와 랩 공연을 선보였어요. 그 후 이어진 대화는 매우 의미 깊었습니다. 그 자리 자체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성찰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어요.
이후 2021년에는 시카고의 어웨이크닝스 갤러리(Awakenings Gallery)와 협력해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1100 플로렌스 갤러리(1100 Florence Gallery)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의 막바지 10월 10일에는 ‘참혹한 주제를 예술로 담아내기(Making Art About Horrific Subjects)’라는 제목의 패널 토론을 진행했어요. 이 자리에서는 ‘위안부’의 역사, 이를 예술로 다루는 방법, 그리고 오늘날 계속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날 전시장은 다시 한 번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진정한 대화의 장이 되었어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이야기하고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죠. 전시 도록에 제니 프리쳇(Jenny Pritchett)이 이렇게 썼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수치심과 침묵이라는 공통된 맥락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중국의 ‘위안부’처럼 조직적이고 잔혹한 형태이든, 할리우드나 미국 언론, 백악관의 권력자들에 의해 자행된 일이든, 혹은 일리노이 에번스턴의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 저지른 비밀스러운 폭력이든,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드러내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한다.”
🧶 로즈 C. 프리쳇 : 제가 생각하는 진짜 질문은 ‘누가 침묵을 깨뜨리는가?’입니다. 그게 중요하죠. 저는 누구에게도 침묵을 깨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정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말하기 시작할 때—그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믿어요. 누군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본 다른 사람도 용기를 얻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성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방식으로 침묵을 깨고,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치유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이런 폭력은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남지만, 치유 역시 가능하니까요.
🧶 로즈 C. 프리쳇 : 제 바람은 이 작품들이 머물 수 있는 영구적인 공간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 말이에요. 가능하다면 이미 ‘위안부’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관이나 기념 공간 안에서 제 작업이 함께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더 큰 맥락 속에서 이 작품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