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에 잠든 당신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김용자

  • 게시일2021.10.01
  • 최종수정일2022.11.25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의 가능성이 차단된 시대, <결>은 이에 대한 갈증을 글로나마 풀며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여행에세이 [2021, 평화로드]는 일제 침탈과 일본군‘위안부’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서울, 통영, 천안, 대구, 제주 등 ‘위안부’ 역사와 관련된 다섯 지역을 따라가며, 꼭 기억해야 하지만 쉬이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행에세이] 2021 평화로드
1. 서울편 - “기억의 길”을 걷다 –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와 기림비
2. 통영편 - 아름다운 항구, 통영에 자리한 아픈 역사의 길을 걷다
3. 천안편 -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에 잠든 당신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4. 대구편 -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으로 떠나는 근대문화거리 투어
5. 제주편 - 총구는 늘 약자를 향한다: 전쟁과 일본군‘위안부’, 그리고 제주도

 

추천코스
천안 독립기념관(제2 전시관-겨레의 시련관) → 국립 망향의 동산(추모비-장미묘역-망향의집-무연고합장묘역) → 천안 평화의 소녀상(신부공원)


#천안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건물 ©김용자


천안(天安)은 하늘아래 편안한 곳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3.1만세운동의 함성과 유관순열사의 고향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아우내 장터의 뜨거운 함성과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독립기념관으로 향한다. 독립기념관은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역사를 잊지 않고 진실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모금과 역사자료 기증 운동의 결과로 1987년 8월 15일 개관됐다. 그 뒤로 해마다 8.15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겨레의 탑 ©김용자


독립기념관에 들어서면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고 날카롭게 솟아있는 겨레의 탑이 우리를 마주한다. 겨레의 탑을 지나면 독립기념관의 대표 건물로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만든 동양 최대의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겨레의 집 뒤편으로는 총 6개의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의 테마는 ‘우리 민족의 뿌리’로 출발해 ‘민족의 시련’과 ‘겨레의 함성’, ‘독립운동’, ‘일제에 맞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제2전시관 ‘겨레의 시련’관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의 아픔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신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님과 북이 고향인 김화선 님의 증언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강제동원을 당당하게 밝히는 그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밖에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파렴치함에 주먹을 쥐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전시관을 나선다.  
 

제2전시관 - ‘겨레의 시련’관 ©김용자

 

#국립 망향의 동산 
 

망향의동산 잔디밭 ©김용자

 

장미묘역 전경 ©김용자


망향(望鄕)…. 고국을 그리워하다. 푸르른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초록의 잔디와 많은 묘역들은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한다. 저 작은 돌 아래 잠들어 있는 망자들의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과 눈물을 푸른 하늘은 알고 있을까.
 
망향의 동산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난 후 망국의 서러움과 갖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 숨진 재일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1976년 10월 2일 조성되었다. 이후 해외동포 가운데 조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지만 적당한 묘역을 구하기 어려운 분들의 경우 이곳에 모셔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위안부’피해자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해외 여러 곳을 거치며 고통을 당하셨기에 본인과 가족들이 원할 경우 이곳에 모셔지고 있다.

사실 부끄럽게도 천안 토박이인 나도 이곳 망향의 동산에 ‘위안부’피해자들이 잠들어 계신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을 기억하고자 천안시민들과 함께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을 하며 망향의 동산에 잠들어 계신 할머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김학순 님의 묘 ©김용자


장미묘역에 잠들어 계신 고(故) 김학순 님의 묘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올해는 김학순 님이 “내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다”라고 첫 공개증언을 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희생자’ 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드러내 그 ‘존재’를 증명하며 세상을 깨운 용기 있는 증언을 하신 김학순 님.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증언을 한 지 30년이나 지났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셨던 진정한 사과와 명예회복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 않음에 가슴이 아파온다. 안타깝게도 연세가 많고 건강이 안 좋으신 분들이 점점 이곳에 오고 계신다.  
 

김복동, 곽예남, 김달선 님의 묘 ©김용자

 

누구보다 강인하고 꿋꿋하게 일본의 사과를 외치며 전 재산을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나비기금에 기부하고,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기금재단을 마련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님도 2019년 2월 1일 이곳에 잠드셨다. 

1000번째 수요시위에서 “이 늙은이들 다 죽기 전에 하루 빨리 사죄하라! 알겠는가. 일본대사여.”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 치셨던 모습이 생생한데, 이제 말없이 이곳에 잠들어 계신다. 안타깝게도 김복동 님 별세 이후 몇 분의 피해자가 영면에 드셨다. 진실을 알리고 진정한 사과를 듣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치열하게 사셨던 그들이 떠나고 남은 빈 자리는 이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곽예남 님의 꽃신 ©김용자


이곳 망향의 동산의 장미묘역과 납골당인 망향의 집에는 56명의 ‘위안부’피해자들이 잠들어 계신다. 누군가의 묘비에는 노란 나비가 붙어있지만, 그렇지 않은 묘비가 더 많다. 고인의 가족들이 ‘위안부’피해자인 것을 밝히기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안식의 집 ©김용자

 

이곳에는 김학순 님과 김복동 님 이외에도 그들의 벗들이 주변에 많이 잠들어 계신다.

망향의 동산에 안장된 ‘위안부’피해자의 특별묘역을 추진하여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고인 가족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여 묘역을 별도로 만드는 것은 추진되지 않았고 2015년 8월에 ‘위안부’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추모비의 명칭은 ‘안식의 집’이며 ‘영혼의 눈-시간의 벽-연대의 벽-승화의 벽’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쪽 바닥에는 피해자의 글귀가 적힌 돌이 있다. 안식의 집의 의미를 살펴보면 영혼의 눈은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우리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이 흘렸던 눈물을 상징한다.

시간의 벽은 피해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오랜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표현했다. 연대의 벽은 피해자로 침묵하던 할머니들이 인권운동가로 연대하며 활동했던 시기를 상징한다. 승화의 벽은 추모비가 연이어 선 형상으로, 피해 할머니들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눠 두려움과 고통, 좌절, 고된 삶, 용기와 활약,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모습 등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모습처럼 고인들은 편안하게 웃으며 하늘을 날고 계실까. 그 답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무연고합장묘역 

무연고 합장묘역 ©김용자


고보댐 사죄비 ©김용자


망향의 동산 가장 위쪽 언덕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연고합장묘역이 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희생되었던 분들을 위한 묘역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기에 유골만을 추려서 합장한 묘역이다. 오른쪽에는 뜻 있는 일본인들이 세운, 고보댐 건설현장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죽음에 사죄하는 비가 있다. 고보댐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은 약 4000명에 달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 유린당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공사장에 매장되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그들의 죽음 또한 우리 역사의 비극의 한 장면이며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할 이들이다.
 

요시다 세이지 사죄비 ©김용자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있으며 역사 지우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그들의 역사왜곡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실을 잘 알려주는 것이 2017년 3월에 있었던 사죄비 무단훼손사건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연행의 책임자였던 요시다 세이지(吉田 清治)가 자신들의 범죄를 참회하고 반성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1983년12월 사죄비를 세웠다. 사죄비에는 ‘귀하들께서는 일본의 침략 전쟁 시 징용과 강제연행으로 강제노동의 굴욕과 고난에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워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나는 징용과 강제연행을 실행 지휘한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비인도적 그 행위와 정신을 깊이 반성하여 이곳에 사죄하는 바입니다. 늙은 이 몸이 숨진 다음도 귀하들의 영혼 앞에서 두 손 모아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교체된 위령비 ©김용자



그러나 요시다의 장남은 부친의 증언이 위증이라며 일본의 극우인사를 통해 사죄비를 위령비로 교체하도록 시켰다. 다행히 수사기관을 통해 범인이 잡혔고, 사죄비는 복구되었지만, 일본의 역사왜곡은 계속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더욱 경각심이 필요하다.

 

#천안 평화의 소녀상 
 

천안 평화의 소녀상 ©김용자


“우리에게는 아직 진정한 해방이 오지 않았습니다.”

‘위안부’피해자들의 가슴 맺힌 절규를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고자 2017년 8월 천안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과 학생, 기업들의 모금으로 천안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소녀상은 빈 의자와 앉아있는 소녀, 함께 해주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으로 구성돼 있다.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보며 기억할 수 있도록 소녀상은 천안의 가장 번화한 거리의 작은 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바람처럼 시민들은 계절에 따라 늘 소녀상과 함께 하고 있다. 비가 오면 우비를 씌워 주고, 겨울이 되면 망토와 모자와 덧신을 입혀준다. 어느 날에는 사탕과 초콜릿을, 어느 날에는 곰 인형을 소녀상 옆에 놓아준다. 참 고마운 마음들이다. 그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잠들어 있는 그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을 기원하며 소녀상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소녀상 뒷모습 ©김용자

 

기사 게재일: 2021.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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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자

천안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천안평화나비시민연대 사무국장
천안여성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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