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방 -이옥선 할머니 편-

김대월나눔의집 학예실장

  • 게시일2020.07.22
  • 최종수정일2020.10.27
웹진 <결>은 2019년 10월 "할머니의 내일 - 나눔의 집 김대월 학예실장 인터뷰"를 실은 바 있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공적 활동이 아닌 퇴근 후의 사적 일상을 드러낸 이 인터뷰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표현해주었다. 누구에게든 피해로만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결이 존재하며, 그 같은 결들을 받아들이고 각 존재의 고유성을 이해할 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도 높아질 것이라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웹진 <결>은 2020년 4월부터 누군가의 생애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방'이라는 공간의 가구, 물건, 사진을 통해 <나눔의 집>에 사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살펴보는 연재를 기획했다. 그 사이 <나눔의 집> 운영을 둘러싼 문제가 공론화되었고, 할머니들의 방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아직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 연재를 통해 그 자체로 보존해야 할 역사적 공간인 할머니들의 '방'을 기록으로 남기고 웹진 <결>의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나눔의 집과 할머니의 방들

1991년 우리 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복지와 생활 터전을 제공하기 위해 1992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나눔의 집>도 있었다. 이후 종로구 혜화동을 거쳐 1995년 경기도 광주시에 정착한 <나눔의 집>은 지금까지 정부에 신고된 240명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중 30여 명의 할머니에게 생활 터전을 제공하였으며, 2020년 8월 현재에도 5명의 할머니가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나눔의 집>에서 생활한 할머니들은 수많은 활동을 통해 일제의 비인륜성을 고발하였으며 증언, 그림 등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기록하였다. 이로 인해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이 남긴 수많은 흔적과 유품 그리고 그에 관한 기억들로 채워졌다. 또한 이 같은 할머니들의 활동들로 인해 <나눔의 집>은 단순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생활 터전을 넘어 일본 패전 후 전쟁 피해자의 생활과 심리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인식과 시선, 우리의 역할 등에 다양한 시사점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나눔의 집> 어디든지 할머니들의 흔적과 역사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바로 할머니들의 방이다. 할머니들의 방에는 피해자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 그리고 할머니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등이 할머니들의 물건과 소품, 사진 등을 통해 잘 나타나있다. 지금까지 <나눔의 집>에서 많은 할머니가 생활하셨지만, 현재 남아있는 방은 총 다섯 할머니의 방이다. 이중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방을 제외하면 모두 현재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들의 방이다.

하지만 2019년 여름, 할머니의 방 자체가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역사적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나눔의 집> 이사진과 운영진의 관리 소홀로 인해 할머니들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이 기본적인 포장도 되지 않은 채 비오는 날 외부에 방치되어 장맛비를 맞았다. 이로 인해 일부 물품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고, 방을 치우기 전 사진조차 남지 않아 할머니들의 방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나눔의 집> 직원들 사이에서 할머니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공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공분은 할머니들의 방을 원래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귀결되었다. 직원들은 먼저 할머니들의 물건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나눔의 집>이 소장한 사진을 포함하여 신문, 방송, SNS 등에 나온 할머니들의 방 이미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치워진 물건들을 할머니 별로 정리하고 훼손된 물건 중 복구가 가능한 것들을 먼저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이로 인해 할머니들의 방은 점차 예전 모습을 찾아갔다. 이 글은 복원된 할머니들의 방과 그 방에 깃들어 있는 할머니 한 분 한 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옥선의 방


가장 먼저 복원된 방은 이옥선 할머니의 방이었다. 이옥선 할머니는 해방 후 중국 연변에서 생활하시다 2000년이 돼서야 귀국하여 <나눔의 집>에 오시게 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있어 할머니는 1년이 넘는 시간을 국적회복과 피해자등록을 위해 보내야 했다. 뛰어난 총기와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할머니는 2004년 고(故) 김순덕 할머니가 별세한 이후, <나눔의 집>을 대표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석 및 증언 활동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20년 넘게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계신 할머니는 거실에서 TV를 보실 때에도 자기 방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누가 들어가는지를 확인하실 정도로 자기 방에 대한 애착이 강하시다. 할머니의 방은 <나눔의 집> 생활관에서 가장 앞쪽에 위치한, 직사각형 구조의 4평 남짓한 방이다. 방 끝에는 창문이 있고 그 아래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 위 다리 방면으로 서랍장이 하나 올려져 있는데, 돌침대라 가능한 일이지만 침대 위에 서랍장이 올려져 있는 것이 좀 특이하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낡은 책장이 하나 있는데, 책장에는 천주교 관련 서적과 역사책이 대부분이다.


이옥선의 낡은 책장


부산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학교에 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10살 때부터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모님께 떼를 쓰기도 하고 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부러워 오빠가 다니는 학교 담장 밖에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2019년 할머니와 함께 부산에 있는 할머니의 고향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다른 것들은 잘 기억을 못하셨지만, 오빠가 다녔던 학교와 그 학교로 가는 길 그리고 어릴 적 학교에 대한 설움은 선명히 기억하셨다. 가끔 직원이나 방문객이 할머니 방에 있는 책장을 보고 “할머니, 책이 많네요?”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항상 “저 책장에 있는 책을 내가 다 읽었다고 하면 믿겠어?”라는 말과 함께 공부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해방 후에도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연변에서 생활하셨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청년이 재미있는 책이 있다며 할머니에게 읽어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할머니가 책을 볼 수 없다고 하자, 그 청년은 할머니에게 야학을 소개해 줬다. 그렇게 야학과 인연을 맺은 할머니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가 한글을 배웠다. 할머니는 이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함박웃음과 함께 “내 거기서 받침(한글)을 뗐어!”라고 말씀하신다. 야학에 다닌 이후 책 읽는 재미에 빠져 밤마다 책을 빌려 읽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으신다. 한 번은 할머니가 너무 똑똑해 동네 사람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때 “호미 대학 농업학과를 나왔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할머니에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어보면 똑같이 대답하신다.

그리고 가끔씩 책장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위안소에 끌려간 이야기를 꺼내실 때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공부 욕심이 많아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매일 우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역 앞 우동집에 양딸로 가면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그 집의 양딸로 가게 되었는데, 현실은 온갖 허드렛일과 술 시중이었다. 이에 할머니는 그 집에서 여러 번 도망치고 잡히기를 반복하였고, 결국 우동집 주인에 의해 울산에 있는 한 여관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울산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여관집 주인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웅장한' 남자 2명에게 잡혀 중국 연길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책장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자신은 위안소가 아니라 학교에 가고 싶었다는 말이라는 것을. 

 

이옥선의 작은 TV와 서랍장 


책장 오른편에는 3단으로 된 수납장이 있는데, 그 위에는 조그만 TV와 젊은 시절 할머니의 사진이 놓여있다. 할머니는 요즘 이 TV로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 <에움길>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할머니는 매일 가장 먼저 마주친 직원에게 영화를 틀어 달라 하시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큰 미동도 없이 집중해서 관람하신다. 가끔 할머니에게 “할머니 지겹지 않아? 다른 거 볼까?”라고 물으면 “저기에 내 역사가 있어!”라고 대답하시며 다시 영화에 집중하신다. 최근에는 영화 <달마야 놀자>도 즐겨 보시는데, 극 중 싸움을 잘하는 스님이 나오면 항상 “저 스님이 깡패보다 더 쎄”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또 그 스님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식사시간이라도 그 장면은 다 보셔야 식사를 하신다.

침대와 책장, 그리고 수납장을 지나면 2단으로 된 낮은 서랍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손자의 초상화와 아주 오래된 매실주가 올려져 있다. 직원들이 가끔 할머니에게 그 매실주를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면 언제든지 마시라고 하시지만 아무도 마시지 않아 항상 그 자리에 똑같은 양으로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침대, 책장, 수납장의 맞은편에는 5단 서랍장과 옷장 두 개가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 안에는 캔으로 된 초코우유와 아이스크림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 중 초코우유는 매달 한 번씩 오는 방송인 김구라 씨가 사 오는 것이다.

할머니는 아이스초코, 아이스크림, 탄산음료를 무척 좋아하시는데, 처음 아이스초코를 드셨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냐며 놀라셨다고 한다. 직원들은 할머니가 기분이 조금 안 좋아 보이거나 답답해하는 것 같으면 아이스크림, 아이스초코, 탄산음료 중 하나를 먹으러 나가자고 제안한다. 십중팔구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신다. 그리고는 주문한 음료를 다 드시고 나면 “다 먹었다.”라고 하시거나 “이거 먹으면 속이 뻥 뚫려” 또는 “내가 이거 때문에 나오는 거야.”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이옥선의 사진들


할머니의 방에는 벽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진과 액자들이 걸려있다. 20년 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활동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할머니의 방에 있는 사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천주교와 관련된 사진, 두 번째는 가족과 관련된 사진, 마지막은 일상사진이다. 인권활동가로서의 사진도 없지는 않으나 몇 장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관련된 사진들이다. 

할머니는 가끔 방에 걸려있는 사진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시는데, 키가 닿지 않는 곳은 효자손을 이용해서 설명해주시곤 한다. 그중 할머니와 가장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사진들은 모두 천주교 신앙과 관련된 사진들이다. 먼저 머리맡 침대 위에는 오래된 묵주 2개가 걸려있고 그 아래 작은 선반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성모 마리아, 김대건 신부 등 천주교와 관련된 사진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또 침대 위 벽면에는 할머니와 신부님이 찍은 사진과 예수님의 초상화 등이 걸려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할머니가 중국에서 생활하실 때 성당에 가고 싶어 하셨는데, 자신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수녀님들이 할머니를 찾아와 누구든 성당에 올 수 있다며 할머니를 설득하였고, 그때부터 할머니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마다 성당에 다니고 계신다. 

천주교와 성당에 관련된 사진 맞은편에는 손자들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각별하여 방 곳곳에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나 손자들의 사진이 있다. 사실 할머니는 어렸을 적 '위안부' 피해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셨다. 할머니 말로는 '위안소'에 있을 때 #606주사를 맞고 수은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몸이 망가졌다고 한다. 해방 후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중국에서 애 딸린 홀아비를 만나 가족을 꾸리셨다. 딱 한번 할머니에게 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는 "내가 '위안부' 간판을 이마에 써 붙이고 부모 형제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라고 대답하셨다. 어쨌든 이때 키운 아들의 자식들이 할머니의 손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 모두 장애가 있어 손자들은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다. 현재 가끔 큰 손자가 사고치는 것만 빼면, 다들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할머니의 방에는 할머니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할머니는 자신의 방에 대해 “내 방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 다 내가 고르고 내가 산 거야. 내 방에는 없는 게 없어. 그래서 다른 방에 뭐 빌리러 갈 필요가 없어, 다들 내 방에 빌리러 오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자기 방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떠난 뒤 본인의 방이 없어질까 걱정을 많이 하신다. 특히 요즘에는 “내가 죽어도 내 방은 군자 방(고 김군자 할머니 방)처럼 그대로 둬라.”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이옥선 할머니의 방은 여느 할머니의 방과 다름없는 평범한 방이다. 동시에 특별한 방이기도 하다. 이 방에는 그동안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 사회는 할머니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억했는지도 잘 나타나 있다. 누군가에게 할머니의 방은 그냥 평범한 방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할머니를 이옥선이 아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만 보았기 때문에 이 방의 가치는 아직 평가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방이 그대로 남아 일본군'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피해자 개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기록물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Credit

일러스트 : 백정미

  • 사진_이옥선의 방
  • 사진_이옥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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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 현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할머니의 내일 展>의 총괄 기획을 맡았으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가운데 틈틈이 본인의 경험을 살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특강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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