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명부와 복원명부에서 발견한 조선인 여성들 -하-

강정숙

  • 게시일2020.07.10
  • 최종수정일2020.09.18



명부에 실린 조선인 여성들은 누구였으며,
어디에서 왔을까?

세 개의 남방 육군병원이 있었던 곳은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입니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 이 세 병원의 #유수명부에 실린 조선인 여성들은 301명, 혹은 병상일지에서 추가 확인된 1명까지 포함하면 302명입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자카르타의 남방 제5육군병원은 1945년 8월 1일 간호부 82명을, 수마트라섬 남부 팔렘방의 남방 제9육군병원은 8월 22일 임간(臨看, 임시간호부) 78명(제9육군병원 명부의 77명에 병상일지에 기록된 1명을 추가한 인원)을, 메단의 남방 제10육군병원은 8월 30일과 31일 용인(傭人, 최하급의 #군속) 142명을 편입시켰습니다.[1]



이 병원들이 속해 있었던 남방군의 제7방면군이 담당했던 영역과 각 병원의 위치는 <그림 1>의 지도와 같습니다. 아래 지도는 공문서와 함께 피해자, 군인 #군속,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이 작성한 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 만든 것입니다. 보라색 선으로 표시된 곳이 남방군, 주황색 선으로 표시된 것이 남방군 제7방면군의 관할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남방군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 있던 일본 육군 전체를 총괄하였고, 제7방면군은 이 중 말레이시아(싱가포르 포함)와 인도네시아 지역의 육군을 담당하였죠. 붉은색 점으로 표기된 곳이 이 글에서 다루는 #유수명부 속 여성들이 있었던 병원의 위치입니다. (숫자5 : 제5육군병원, 숫자9 : 제9육군병원, 숫자10 : 제10육군병원)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이 작성한 일본군 위안소 지도는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5·9·10육군병원 #유수명부에 실린 조선인 여성 301명에 대한 개별 조사를 일일이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 여성 모두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고 단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합니다. 또한 한국 정부에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동원되었다고 신고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 모두를 이들 명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명부에 실린 여성 중 상당수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개별적으로 조사한 명부 속 여성 18명이 모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2]

그런데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 많은 조선인 여성들이 어떻게 지금도 멀게 느껴지는 인도네시아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민간인이었던 여성들이 어떻게 군의 작전지역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이 전쟁터로 여성들을 동원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1942년 1월 이후 ▲보르네오섬에 있던 일본군과 일본 외무성이 주고받은 공문, ▲대만총독부와 일본 외무성이 주고받은 공문, ▲대만군과 육군성이 주고받은 공문들을 보면 일본 육군이 군'위안부' 수송을 강력하게 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3] 공문들을 살펴보면 우선 현지군이 조선총독부, 대만총독부, 일본 내무성 등에 '위안부'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조선, 대만 등에서는 여성들을 국외로 내보내기 위해 일본 외무성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에 이 사실을 알립니다. 공문 중에서는 대만식민통치 당국인 대만총독부에서 일본의 외무성에게 군'위안부' 동원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자, 외무성이 군'위안부' 동원에 여권 발급은 우스우니 군증명서 발급으로 갈음하라고 마지못해 허락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즉, 전쟁에 나선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을 요청하자 일본군 수뇌부가 군인들의 성병 예방과 성욕 해결, 점령지의 치안 유지 등을 위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정책이라는 틀을 만들고, 이 틀을 토대로 '위안부'를 동원한 것이지요.

그러면 일본군의 요구는 어떻게 조선인 여성 한 명 한 명에게 전달되었을까요? 당시 조선에서는 동원업자들이 전쟁터로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납치, 협박 등 물리적 폭력을 포함해 인신매매와 같은 교묘한 방법도 이용하였습니다. '좋은 공장에 취업할 수 있다', '학교에 보내주겠다' 등의 사기 수법이 많았고, 부모의 빚 등을 구실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단 하나의 수법이 아니라, 여러 수법이 결합된 상태로 미성년자까지도 불법적으로 동원하였습니다. 

 

명부를 통해 조선인 여성들의
'위안부' 동원과정을 상상하다

명부에 실린 조선인 여성들의 본적지별 분포를 분석하면 위안소 업자들이 조선 내에서 '위안부'를 주로 동원한 지역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각 병원의 명부 자료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로 보내진 여성들의 고향을 살펴보면 제5육군병원 소속 여성들은 경남 출신이 28.0%로 가장 많습니다. 이어 경북 19.5%, 전남 13.4%, 경기 11.0% 순입니다. 제9육군병원은 경북 50.6%, 경남 11.7%, 전남 10.4%, 경기 9.1%로 경상남북도를 합하면 62.3%에 달합니다. 제10육군병원도 경남 출신이 38.0%로 가장 많습니다. 이어 경북 출신 28.2%, 경기와 전남은 각 7.0%입니다. 특히 제9육군병원의 명부에는 경북 중에서도 경주 출신 여성이 상당히 많습니다.[4] 경주에서 요리점을 경영하던 송경호라는 업자가 경주를 중심으로 여성들을 모아 제9육군병원이 있는 팔렘방으로 향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팔렘방에서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위안소를 경영하던 송경호는 경주에서도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요리점을 경영했었습니다. 이 외에도 전체적으로 경상도 여성의 비율이 높은 데에는 경상도가 일본과 가깝고 국외로 이동하기 편리하다는 지리적 특징, 그리고 높은 인구 밀도 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연구를 통해서 볼 때 가장 큰 원인은 위안소 경영자, 여성 동원업자 등이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남방 제9육군병원 #유수명부에서 암촌갑(岩村鉀)이 유수담당자로 기록되어 있는 여성들을 발췌해서 편집한 것입니다. <그림 7>을 보면 암촌갑은 임간(임시간호부) 7명의 '주인'으로, 여성들의 주소지는 모두 '부산부 초량정 402'로 기록되어 있습니다.[5] 암촌갑은 이 지역에 주소지를 두고 땅을 소유하고 있던 조선인 허갑입니다. 그런데 암촌갑은 실제 팔렘방에서 위안소를 경영한 업자는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의 주소지로 기록된 '부산부 초량정 402'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지역의 답사도 몇 차례 해보았지만, 아직 초량정 402번지가 암촌갑의 주소지라는 것 이외 어떤 역할을 한 곳이었는지는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6] 다만 암촌갑이 여성 7명의 주인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보아 암촌갑이 이 7명의 여성들의 1차 고용주로서 팔렘방으로 가는 위안소 업자에게 넘긴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겠지요.

흥미로운 지점은 암촌정강의 부분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암촌정강이 기록되어 있는 줄에는 #유수담당자 이름란에 암촌갑과 이등종필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가 '주인'이 아닌 '부'로 되어있습니다. 아마도 이등종필이 실제 아버지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등종필이 아버지라면 암촌정강은 이등정강이어야 하는데 이 #유수명부에서는 암촌정강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어떤 연유에 의해 암촌정강이 암촌갑의 호적에 입적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암촌갑의 호적에 암촌정강이 수양딸이나 어떠한 명목으로도 입적된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암촌정강이 인도네시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사소개업자로 판단되는 암촌갑의 수양녀로 처리되어 이동하였고, 인도네시아에서 #유수명부를 작성할 때에는 약간의 혼돈상태가 반영되어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명부를 통해 '위안부' 제도
은폐를 시도한 일본군 

제7방면군 직속 남방제1육군병원이 작성한 『남방제1육군병원약력』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 부근의 소화관(昭和館) 자료실에 정리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1945년 8월 22일 제7방면군령에 따라 임시간호부를 배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7방면군 산하 남방 제9육군병원의 『부대약력』에도 "종전과 함께 군에서는 남부 수마트라 주류부대 여 #군속 전원을 임시간호부로"[7]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통해 우리는 대부분 '위안부'였을 여성들이 일본군의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인도네시아 지역에 있던 일본 육군과 해군에 간호부 등과 같은 #군속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일본군이 명부에 여성들의 기록을 편입한 시기입니다. 제5육군병원은 패전 직전에, 제9·10육군병원은 패전 이후에 여성들을 명부에 편입했습니다.

일본군, 특히 제7방면군은 왜 이 여성들을 패전이 다가올 즈음에야, 혹은 패전 이후에야 간호부 #군속으로 편입하고 명부에 기록을 남겼을까요? 일단 여성들을 정식으로 #유수명부에 기록하여 간호인력으로 확보해야겠다는 제7방면군 수뇌부의 판단이 있었다는 해석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귀환 과정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대로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은폐하기 위해 패전 직후에 '위안부' 여성들을 간호부로 둔갑시켰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어떤 연구자는 위안소를 운영한 민간업자나 여성들을 모은 동원업자의 책임이 일본 정부나 일본군보다 더 크다고 보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 내에서 '위안부' 여성이 동원된 과정을 보면 ▲여성을 모집한 인사소개업자와 동원업자, ▲조선 내 요리점 및 가시자시키[貸座敷]라고 불리는 유흥업자 등을 통했습니다. 여성들을 모으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업자들이 나섰습니다. 하지만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위안부' 제도의 중심에는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들을 일본군에 공식적으로 편입한 사실은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의 은폐 시도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지속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명부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 성과를 쌓는다면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위안부'를 관리하고 결국 이 제도를 은폐하기까지 한 전쟁 당시의 상황을 더욱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Credit

편집 : 현승인, 변지은
감수 : 윤명숙, 김소라 
일러스트 : 백정미 

각주

  1.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인도네시아 동원 여성명부에 관한 진상조사』, 2009, 32쪽.
  2. ^ 강정숙,  「제2차 세계대전기 인도네시아로 동원된 조선인 여성의 간호부 편입에 관한 연구-留守名簿를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연구』20, 2011.6, 70-71쪽
  3. ^ 그 중 하나가 외무대신,「南方方面占領地ニ對シ慰安婦渡航方ノ件」, 『종군위안부자료집』, 吉見義明편, 大月書店, 1992, 143쪽.
  4.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앞의 책, 62쪽.
  5. ^ 성태섭, 김종진(1923년생, 충남 서천군, 2007. 11. 14. 강정숙 면담) 구술 등 팔렘방으로 동원되었던 #군속들의 구술을 통해서 확인된다.
  6. ^ 강정숙,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조선인명부를 통해 본 군‘위안부’동원」. 지역과 역사. 제28권, 2011, 305-6쪽.
  7. ^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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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정숙

일제하 안동지역 농민운동사로 학문세계에 입문한 이후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사를 연구하여 『한국여성사(근대편)』(공저, 풀빛, 1992)를 썼다. 1992년 한국정신대연구회(소)에 가입한 이후 일본군‘위안부’문제 조사와 연구에 집중하였고 <일본군‘위안부’제의 식민성 연구>로 박사학위(2010년)를 . 『일본군‘위안부’, 알고 있나요?』(2015,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 여러 논문과 책을 냈다. 지금은 여태까지의 연구성과를 모아 출판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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