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규명을 위한 양국 간의 책임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19.09.03
  • 최종수정일2024.04.05

[좌담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쟁점과 방향 3부

진실 규명을 위한 양국간의 
책임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1부 : 2011년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위헌 결정, ‘위안부’ 문제의 흐름을 바꾸다
2부 :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법적 구속력은 어디까지인가
3부 : 진실 규명을 위한 양국간의 책임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좌담회 일자 : 2019년 6월 5일 
사회 :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패널 :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소) /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본 좌담회에 참여한 패널의 입장은 각 소속 기관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Q. 2018년 1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2015년 합의가 양국 간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음을 감안해 일본 정부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절차에 돌입했지만, 12.28 합의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간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 합의를 둘러싼 한일 간의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요. 
 

조시현

문재인 정부가 12.28 합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일합의의 존재는 인정하되, 이것이 효력이 없도록 해야 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합의의 결과물을 해체하는 것에 불과했어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요. 
 

조양현

가장 이상적인 안을 실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시는 동안 수준을 조정해서 해결하자는 이야기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절차상으로나 일본의 무성의함 등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건데, 이 부분이 아쉽거든요. 일본의 협력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우리 스스로 도덕적인 이념을 가지고 우리 자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김영삼 정부 때의 방식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물론, 문제는 많이 있지만, 방침을 그렇게 보여주면 ‘아, 이게 정부의 입장이구나’ 하고 와닿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그림이 좀 애매해요. 12.28 합의를 부정한다면 대안은 무엇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거죠.  
 

조시현

대안 부분과 관련해서 합의가 피해자들에게 주는 함의, 영향 정도는 국제 인권의 메커니즘에서 다뤄지고 있는데요.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기준이 잘 정립되어 있고, 또 과거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특별보고관이나 기구들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피해자들이 권리를 갖는데, 진실에 대한 권리,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을 받을 권리, 재발방지에 관한 권리,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문제야말로, 문제 발생 처음부터 UN에서 논의돼왔고 그 이후 전 세계 인권상황에 보편타당하게 적용이 가능한 기준으로 확립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UN의 기준에 따라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안을 마련하고 정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설득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기정

논의를 좀 확장하자면, 제3의 방법으로 합의를 완성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이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합의가 나오긴 했지만, 미완성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완성해 나가는 방법도 사실 합의 안에 있다고 봐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의 권리를 말씀하셨는데, 합의에 보면 명예회복과 상처 치유라는 말이 나와요. 그것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이 나오고요. 그래서 저는 문건을 우리가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일본에 계속 요구해야 합니다. 10억 엔밖에 잃은 것이 없다는 식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이게 과연 무슨 의미냐고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발언은 피해자의 명예회복이나 상처치유를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에 계속 합의의 완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합의를 의미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못된 합의를 제대로 된 합의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아까 조시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이 지점이 청구권 협정을 깨는 지점이거든요. 저는 이 지점을 이용해서 청구권 협정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가 전적으로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깨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되거든요. 합의는 이 작업에 지렛대로 삼을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내용을 합의에 포함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공로가 아니고요, 그동안 원칙을 견지하며 줄곧 운동을 해왔던 피해자 할머니들과 운동단체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쓸데없는 것들을 뒤에 붙인 게 잘못된 것이지, 앞에 부분은 우리 시민운동 단체가 여태까지 만들어낸 부분이기 때문에 이걸 우리는 확인하고 이후 운동의 발판으로 삼자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조양현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언론은 ‘위안부’ 합의에 부족한 부분,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한국 내부에) 문제 제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우리보다 신중한 톤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 이념성향을 떠나서 국익 대 국익 싸움이라는 외교적 접근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이 문제를 (내부적인) 정치 쟁점으로 삼으면서 일본이 느끼는 압력이 약해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양국 간의 책임 있는 대화가 이어지길

조시현

‘따고 배짱, 딴 놈이 배짱을 부린다’라는 말이 있어요. 일본은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불가능한 것을 이야기했어요. 해결이라는 것은 운동 차원에서 해결을 위한 행동의 요구이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은 ‘과정’입니다. 100년 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 면에서 불가능한 것을 해결했다고 한 합의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일본 정부는 피해자를 대변하는 (한국) 정부의 입에서 ‘끝났다’ 라는 말을 끌어냈기 때문에 이 유리한 입장을 쉽게 포기하고 싶어 하진 않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합니다. 함부로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평생 국가가 구속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아베 정부에서는 한국을 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악담을 퍼붓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좀 더 적극적인 변론을 펼쳐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응하지 않으니 그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식으로 외교를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동시에 국제 기준, 원칙에 입각하면서 끈기 있게 기다릴 필요도 있습니다.

합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두 나라가 공동의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문제의 인식이 일치해야 하는데 지금 과연 그런가. 한국, 일본 꿍꿍이가 다른데, 청구권 협정 자체도 그랬고요.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해 왔고 국민을 호도해온 측면이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12.28 ‘위안부’ 합의도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한일 간의 인식 차이를 어떻게 좁혀 나갈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양국 간의 책임 있는 대화가 시급히 재개되어야 합니다. 
 

남기정

저도 큰 틀에서는 동의하면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도자를 잘 뽑아야죠.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지만 실수할 때가 있어요. 지도자를 제대로 못 뽑을 때가 있죠. 그런데 민주주의를 이 정도로 성숙하게 만든 국가라면 시스템으로 지탱할 수 있고, 지도자와 정부가 실수할 때 국민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국민의 힘으로 탄생시킨 이 정부에서, 과거의 잘못된 합의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연히 ‘해결’이 안 되죠. 운동이 있는 한, 새로운 문제 제기는 늘 있고, 해결된 것으로 보였던 문제가 여전히 미결인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려는 정치가 있는 한 해결의 수위는 조금씩이라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것을 법으로 규정하여 해결의 수위를 확인하고 유지하게 되지만, 그게 어느 순간에 이르면 부족한 내용이 되고, 그래서 다시 운동이 전개되고, 정치가 이를 수용해 문제의 해결을 끌어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합의를 통해 해결의 수위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지 짚어주는 건 필요하다고 봐요. 

합의 내용에서 ‘위안부’ 문제란 당시 ‘일본군의 관여 하’에 발생한 일이라는 규정이 나와요. 그런데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 이상의 많은 문제를 담고 있거든요. 가령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과거 일본 정부가 직접 관여한 것이 확실해진다면 이 합의의 전제는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가령 ‘위안부’ 문제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데 혹시라도 연합국의 관여가 확인된다면, 이 또한 합의의 전제를 흔드는 일입니다. 그러면 해결의 수위도 또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구하고 진실을 규명해내서 ‘위안부’ 문제가 더 큰 틀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나아간 해법이 필요하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 겁니다.
 

조양현

방금 이야기를 받아서 의견을 나누어 본다면 대단히 아플 겁니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외교부가 담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거든요. 정부 각 부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성격이 다양하니까요. 또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 판단도 있는 것이고, NGO단체, 피해자, 국민 정서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서 외교부가 진두지휘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일 외교 앞에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무겁게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이슈가 쉽게 진전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거죠. 한국 외교에서 대일외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각 주체와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인데, 만약 제가 외교부 장관이어도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그렇지만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 12.28 ‘위안부’ 합의가 국민 정서를 대변하지 않았다면, 대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있어야 할 것 같고요. 앞으로의 대일정책, 일본 인식의 차원에서 확실한 입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김대중 정부 때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이야기가 인용되고 그럽니다만, 그때 상황과 지금이 다른 부분은, 외교가 있었다고 봅니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했죠. 그 관계를 잘 다지면서 대북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에 과거사는 그 일환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체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분절되어 있어요. 과거사는 과거사 분야에서만 보고, 북한 문제는 북한 문제에서만 보고, 미국과 중국 문제도 그 안에서만 보고 있고요. 이게 모두 연결되어있는데도요. 이런 문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에게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야 한다고 봅니다.

이웃 국가잖아요. 그리고 당장 안보와 경제를 이야기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아쉬워요. 일본도 아쉽고, 우리도 아쉬워요. 특수 관계라고 하는 부분에는 변화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과거사에 대해 과도기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판단이 있어야 외교 실무단이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너무 센 비판일 수 있는데, 저는 그게 안 되면 한 발 더 못 나간다고 생각해요. 
 

남기정

한일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양자 관계죠.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일 관계라는 것을 상상하고 구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안보 문제만 가지고 한일 관계를 이야기하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상황들이 생겼다는 거죠. 이른바 한미일 안보 삼각형의 하위 동맹으로서 한일 관계를 이야기하고 개선한다, 또는 회복한다는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이후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개시되었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상 그것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목표로 설정할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이 아닌 한일 관계 재건축인데, 이른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이어진 남북 관계에 일본을 넣어서 남북일이라는 평화 삼각형을 만들고, 이를 지탱할 밑변으로서 한일 관계를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 트랙일 땐 앞에 역사 문제가 딱 가로막으니까 뒤에 있는 열차가 못 가지 않습니까. 역사 트랙과 미래 트랙은 둘이 같이 가야 합니다. 과거처럼 역사를 팔아서 안보를 사는 한일 관계가 아니고, 평화를 만들고 평화 위에 역사를 싣는 외교를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관계를 정전상태에서 평화로 이끌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한일 사이에서 역사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한일 관계 재구축을 동기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Q.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와 한일 관계에 관해서 우리 정부에게 아쉬운 점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사실 더 갑갑한 것은 일본 정부잖아요. 현재 아베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의 노선을 밟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본 내에는 아베와 같은 역사 수정주의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요, 일본 안에서 대안적 흐름이 펼쳐질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남기정

저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정밀해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일본을 움직이는 세력으로 평화주의 세력과 이른바 전통적 국가주의(자)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평화주의에서 전통적 국가주의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 밑에는 자유주의적인 질서를 원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이 있어요. 사실은 이들의 길항 작용을 통해 일본의 주류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헌법개정을 통해 권력정치의 세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여 나가고 싶어 하지만, 평화헌법 때문에 앞으로 못 가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정치 지형에서는 여전히 리버럴, 또는 제가 말하는 제도적 자유주의자들이 존재하고 일정한 힘을 유지하고 있어요.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방주의적인 외교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제도와 레짐 같은 걸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는 건데, 이는 일본이 전통적으로 규칙이나 약속을 중시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후에 일본이 처한 국제적 지위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위안부’ 문제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위안부’ 그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는 축과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이가 하는 축, 이렇게 두 개의 축을 가지고 매트릭스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우리에게는 (1)‘위안부’ 문제는 존재하고,  ‘위안부’ 합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시민그룹과, (2)‘위안부’ 문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하는 그룹, 이 두 그룹이 싸우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이 두 그룹도 일본 안에서는 규모가 작습니다. 진짜 일본을 움직여 나가는 그룹은 (3)‘위안부’ 문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이 하라고도 하고, 한국이 완강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한미일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단 합의를 해주자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아베나 이 주변 사람들인 거죠. 속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기 때문에 계속 딴소리를 하는 거죠. 한편으로는 (4)‘위안부’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의를 발휘해서 합의를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이게 제도적인 자유주의자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합의가 있으니까 좀 지켰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합의를 파기한다고 하면 이 제도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이에 반발해서, 오히려 아베를 편들어 주는 결과가 됩니다. 저는 이 점이 굉장히 아쉽고, 이러한 일본의 지형을 고려한 외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양현

일본사회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퇴행적이다는 진단은 맞는 것 같아요. 아베의 장기집권이 지속되면서 다원주의적인 가치가 굉장히 침식되고 있다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본 정부의 프레임에 대항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가치’ 입니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의 ‘가치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을 비난해왔거든요. 중국은 전체적인 사회이고 비민주적인 사회라면서요.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자유, 인권, 평화  뭐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거죠. 프레임 전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구도로 가려면,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동맹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기정

조금 보완하자면, 저는 일본에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봐요. 평화주의적인 발전 측면에서 전후 일본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평화헌법도 있고, 1998년도 공동선언도 있고요. 그래서 ‘평화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문제를 같이 풀자고 제안할 수도 있죠. 
 

조양현

전폭적으로 공감합니다. 아베 정부의 프레임은 굉장히 이중적이에요. 북한에는 인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얼마나 이중적인 이야기예요. 일관된 논리로 인권 이야기를 하려면, 전시 여성 성범죄 문제인 ‘위안부’ 문제 해결에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죠. 그런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자기가 쓰고 싶은 가치 체계를 바꾸고 있어요. 조금 더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을 때 대단히 취약한 구도거든요. 한국과 일본이 가치 체계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일본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는 어디인가요? 동남아입니까? 인도입니까? 아니잖아요. 결국은 일본이 한국만큼 가치체계를 가깝게 공유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편적인 가치를 거론하면서 민주주의, 인권, 평화, 경제 부분에서 아베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시현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할수록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어요. 역설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두 분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더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더 세밀한 힘의 관계를 분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시민단체와 가까워서 그런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두 분께서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이제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 내의 시민단체가 더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야겠죠. 그리고 양국 정부는 그 힘을 받아서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래야 한일 관계가 갈등을 넘어서 진전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어려운 주제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기정 

수고하셨습니다. 

조양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시현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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