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1

글 정영환 메이지학원대 교수

글 박노자 오슬로국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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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1

 

한국의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문제 제기와 여론 확산은 주로 한국(남한)의 위안부 피해자 서사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곤 한다. 하지만 남한 뿐 아니라 북한 그리고 해외동포들에게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웹진 <결>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탈분단적으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대중적 논의 차원으로 확장시키고자 재미있는 대담을 기획했다.  

첫 번째 대담자인 정영환 교수는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난 ‘조선적 재일동포 3세'로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변경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이다. 현재 메이지학원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재일동포 문제 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대표저작인 2016년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정해 논란을 빚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대담자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현재 한국 국적의 신분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교수를 모신 대담은 시간적, 물리적 문제로 인해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에 걸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DAY 1>

정영환, 박노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웹진 <결>입니다. 두 분을 모시고 온라인 대담을 진행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 대담 위키는 두 대담자가 물리적 거리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 상에서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온라인 대담은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진행이 되며,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주제의 위키가 생성됩니다. 하루에 한 번씩 본 위키에 접속해서, 새로 개설된 주제의 위키에 각자의 의견을 직접 적어주시면 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글은 기간 내에 언제든 수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첫 번째 날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의 한국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제기와 여론 확산은 한국(남한)의 위안부 피해자 서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남한 뿐 아니라 북한 그리고 해외동포들 사이에서도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한국 외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있어서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Q1.  두 분께서 생각하시기에 대한민국(남한)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주로 남한 피해자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Q2. 더불어 대한민국(남한)에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탈분단적 시각으로 확장되기 위해선 어떤 논의와 과정이 필요할까요?

Q3.  앞으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할까요?

 

박노자

A1.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의 틀 안에서는 처음에는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들의 문제는 '우리' - 즉 남성 본위의 국가/국민 공동체 - 의 여성들에 대한 일제의 유린이라는 방식으로 많이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라고 이야기할 때에 보통 '대한민국' 국경으로 확정된 공동체를 의미하는 거니까 다양한 거주지, 국적, 그리고 민족들에 속하는 다른 피해자들이 잘 주목을 받지 못한 듯합니다. 그리고 박근혜 씨의 시절에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의 문제'로 프레이밍해서, 일본 국가와의 '타결'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기초부터 잘못된 접근이죠. 물론 '한일관계'와 유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양한 피해자에 대한 전시 성폭력의 문제, 즉 인권 문제이자 젠더 문제, 그리고 식민지적 폭력의 문제입니다.

 

A2.
남한에도 북한에도 '위안부' 성노예 제도의 피해자 분들이 거주하십니다. 이북에서 거주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본적이 남한인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사실상 광의의 '이산가족' 범위에 속하시기도 하죠. '위안부' 문제가 논의될 때에 남이든 북이든 해외든 어디에 거주하시든 모든 피해자들이 이 논의에 포함돼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선구적으로 언급하고 활동해온 총련 등 해외 동포 단체들의 노력도 남한에서도 분단의 벽을 넘어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합니다.

 

A3.
식민지이었던 조선의 여성들이 입었던 피해가 특히 컸다는 사실도 당연히 있지만 총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위안소'란 다양한 지역, 민족, 국가 출신의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한 전시 성폭력, 성노예화 국가 범죄입니다. 이 차원에서 본다면 '한-일 프리즘'으로만 봐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죠. 이 문제의 일차적 본질은 일본 국가와 군대의 젠더적 폭력 행위지만, 동시에는 계급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빈농, 빈민의 딸들이야말로 일군의 폭력에 가장 쉽게 노출되곤 했습니다. 이 범죄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일본 국가와 군대에 있으며, 반인륜 범죄인 만큼 공소시효가 원칙상 없는 거죠.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동경재판의 공소장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연합국 (특히 미국)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의 책임유기에 대해서도 한일 수교 협상 과정에서 이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당국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본 온라인 대담은 팀과 커뮤니티를 위한 민주주의 플랫폼' 빠띠'에서 에서 이루어졌다. (https://parti.xyz/parties)

 

정영환

A1.
이 문제를 검토할 때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을 위한 시민운동과 일반 여론이나 언론, 정치권의 동향은 구별해서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80년대에 시작한 시민운동은 비교적 일찍이 ‘남한’이란 틀을 넘어 재일조선인이나 일본인, 중국, 동남아, 유럽,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피해자나 활동가들과의 연대를 이루어왔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운동은 이렇게 볼 때 애초부터 남한 중신적인 사고를 벗어난 국경을 넘은 여성들의 연대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고, 북측의 피해자과의 만남도 1990년대에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시도의 하나의 도달점이 2000년의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여성국제전범법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시도를 가능하게한 배경에는 1980년대 이래의 한국의 여성해방운동의 치열하면서도 창조적인 투쟁이 있었고, 특히 이 운동이 탈분단적 시각을 갖고 있었음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지역적 공간적으로 남한의 틀을 넘어 일본군의 성폭력 피해를 받은 각지역의 당사자나 지원자, 활동가들과의 인연을 맺고 경험을 교환하며 함께 일본군의 책임을 추궁할 뿐 아니라, 한국군의 베트남참전이나 콩고내전시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도 이루고 있어, 시간적인 제한을 넘어서 보편적인 전시성폭력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이런 해결운동이 이룩한 국가적인 틀을 넘어선 연대의 성과가 남한의 대중적인 매체나 정치권에서 재현 될 때 ‘남한 피해자 중심’적인 시각으로 전환되어버리는 데 있겠지요. 저는 일본의 거주하고 일상시 남한에서 생활하지 않기때문에 생활감각적으로 알기는 어려운데, TV나 신문, 잡지에서 다루어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질문하신대로 ‘남한 피해자 중심’적인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각이 발생한 원인으로서 박노자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 처럼, 한국의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이 작용할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더 역사적인 단계를 구분을 해서 검토를 해보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1948년이래의 반공주의적 내셔널리즘이 직접 작용한 결과 뿐만이 아니라--물론 반공주의를 제외해서 한국의 ‘분단적 시각’의 문제를 파악하지는 못합니다만--1987년의 민주화이후의 내셔널리즘이 갖고 있는 제한성과 문제점—1987년체제가 갖는 ‘분단적 시각’—을 도마위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Q2와 관련이 있기에 차후에 재론하겠습니다.

 

A2.
‘탈분단적 시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개념을 정리/공유하면서 논의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웹진 <결> 편집측에서는 ‘분단적 시각’을 북측이나 재외동포의 존재를 외면하여 한국의 피해자 중심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정의를 한다고 저로서는 받아들였습니다. 이 개념을 전제로 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앞서 남한과 일본의 관계에 제한된 인식의 틀이 형성된 배경에는 내셔널리즘이 작동하였을 뿐만 아니라—저는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봅니다—제2차세계대전 후의 전후세계질서,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의 심대한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전쟁/식민지지배 책임문제를 연합군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형사적인 책임(동경재판)도 민사적인 책임(배상청구권)도 남북은 부정당했습니다. 1948년의 분단이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일강화에 틀에서 배제되었고 한국은 또한 강화회의에 참가를 못한 채 미국 패권하의 종속적인 위치에서 한일회담을 시작하게됩니다(1948년, 1952년체제). 그래서 식민지 배상문제는 애초에 ‘청구권문제’로 환골탈태되어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재산의 반환’이란 틀에서만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1965년에는 이 결과 한일조약과 각 협정이 맺어지게 됩니다. 즉 1965년체제의 형성입니다.

1965년체제는 두가지의 논의를 ‘봉인’한 체제였습니다. 첫째는 일제 식민지지배의 피해논의의 ‘봉인’, 둘째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화의 ‘봉인’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일본이란 쐐기를 식민지기 피해자와 정부, 그리고 남북간에 박았던 체제이지요.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여전히 ‘분단적 시각’에 머물러 있는 배경에는 이렇게 전후체제가 만들어낸 다층적으로 얽힌 체제—1948, 1952, 1965년체제가 남한에서 식민지의 피해문제를 바라보는데 인식의 틀에 아직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문제는 남한의 대내적인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의 문제이면서도 위계적인 국제관계로서의 전후체제에 문제인 것 입니다. 1987년의 민주화이후 1965년체제에 대한 재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1948년체제는 공고합니다. 2018년10월30일의 신일철주금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획기적인 손해배상 판결은 1965년체제에 대한 귀한 토전이었던 반면에 원고중에는 전시 말기에 청진의 제철소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북지역에서 일어난 식민지지배하의 피해에 보상에 관한 쟁점은, 이건 대한민국 헌법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논의가 되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전후체제를 근원적으로 묻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탈분단적 시각으로 확장되기 위해서 필요한 논의로서 다 한가지 올리자면 반식민주의/반제국주의와 여성주의적 시각의 결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재일조선인사 연구로부터 시작했는데 <제국의 위안부>사태를 둘러싼 논의에 개입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던 것은 특히 일본에서의 주류 여성주의 시각에서 반식민주의적 관점을 거위 찾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탈민족주의/개인주의/자유주의적인 시각을 통해 한국의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소녀상 비판과 <제국의 위안부> 옹호에 합류하였습니다. 한국에 경우도 반식민주의는 민족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오해될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가져오는 억압은 피지배자를 민족적으로 배제함과 동시에 개급, 젠저적인 차원에서의 분단을 이용하여 증복시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이런 근대세계가 낳은 부의 측면을 근면하게 습득하여 그 폭력성이 전면적으로 틀어난 된 제도가 일본군성노예제도였던 만큼 저희들의 시각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식민주의에 대한 검토를 깊혀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여성인권의 보편성이란 가치는 반식민주의와 반제국주의적 시각과 결부할 때 처음으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A3.
앞서 말씀을 드렸던 것 처럼 그간의 해결운동은 이미 '탈분단적 시각'에 입각하여 많은 실천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강조를 하게 됩니다만, 이미 운동은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실천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일동포들도 그렇습니다. 그 실천에 배우면서 '외교적'차원에 해소되지 않는 당사자와 활동가, 연구자의 경험과 연구를 축적하며 역사화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법정에서 배우면서 일본군의 만행과 책임을 더욱 체계적으로 밝히고 남북의 교류를 통해 이북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의 증언수집과 경험교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또한 세계의 식민주의하의 전시성폭력의 진상규명을 위해 실천하는 활동가나 연구자를 맺는 거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DAY 2> 에서 계속됩니다. 

글쓴이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양교육센터 교수. 역사학 특히 조선근현대사 및 재일조선인사 전공. 저서에 『朝鮮独立への隘路: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法政大学出版局、2013年)、『忘却のための「和解」:『帝国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2016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임경화역, 푸른역사, 2016년)등이 있다. 

chong@gen.meijigakuin.ac.jp
글쓴이 박노자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오슬로대학교 인문학부 동방언어 및 문화연구 학과 교수, 한국학 및 동아시아학 전공. 현재로서 한국 민족주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 역사, 근현대 불교사, 사학사 등 연구 집중. 근작으로 <주식회사 대한민국>, <전환의 시대>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금년에  발표된 논문으로  "Sin Ŏnjun (1904–1938) and Lu Xun’s Image in Korea: Colonial Korea’s Nationalist Transnationalism",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Right Movement and the Historical Wars in 2000s South Korea" 등이 있다.

vladimir.tikhonov@ikos.ui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