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사람의 역사가 기억되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 사회정의교육재단 손성숙 대표 인터뷰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19.08.27
  • 최종수정일2022.11.28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역사-사회과학 교과과정 지침에 2015년 한일합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합의에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 뒤에는 일본 정부의 열성적인 로비 활동이 있었다. 역사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에 맞서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약자와 피해자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뛰고 있는 사회정의교육재단(Education for Social Justice Foundation, ESJF)의 손성숙 대표를 만나 미국 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과 반응, 그리고 ‘위안부’ 역사 교육의 현황을 들어보았다.

 

사회정의교육재단 손성숙 대표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 발의안부터 교재 개발, 교사 워크숍까지

Q. 안녕하세요, 대표님. 웹진 결 독자 여러분께 사회정의교육재단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네, 저희는 과거 부당하게 외면당한 역사를 교육을 통해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비영리 교육단체이고요, 2017년 다인종 멤버로 구성된 활동가와 현직교사들이 함께 모여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저희가 다루는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주제이고요, 이외에 731부대 문제와 같은 의학 잔혹행위, 아시아인들의 초기 미국 이민 역사와 같이 크게 3개의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모두 식민지 역사와 연결된 문제들이죠. 

Q. 2017년에 재단을 설립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교육에는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전직 샌프란시스코 공립학교 이중언어 교사거든요. 1994년에 샌프란시스코 통합교육구 교사로 한글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죠.

교육에 대한 관심이 ‘위안부’ 이슈로 연결된 계기는 세 가지예요. 우선 저희 할머니께서 김학순 할머니보다 2년 전에 태어나셨어요. 어려서 ‘위안부’ 역사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 할머니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안부’ 문제에 공감과 채무감을 항상 느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2015년에 합의 아닌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정확한 ‘위안부’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어요. 사실 그 합의 직전 10월에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에서 ‘위안부’ 역사를 공립학교 10학년 과정에서 가르칠 것을 제안하는 발의안이 상정되고 통과됐잖아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두 달 뒤에 말도 안 되는 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잘못하면 이번에도 묻히는 게 아닌가 싶어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그리고 이게 재단 설립을 서두른 이유가 될 텐데요. 2016년 12월에 일본 지바 시에 있는 조선초중급학교에서 학생 미술전이 있었어요. 학생 출품 작품 중에 2015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이 두 개 있었는데요. 그걸 구마가이 지바 시장이 보고 이듬해 봄에 그 학교의 시 보조금을 삭감해버렸죠. 이 사건을 보고 지바 조선학교를 조금이라도 빨리 돕고 싶었어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한 두 학생에게 그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지지하고 싶었고, 그 두 학생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한 지바 조선학교에게 혹시라도 미안해할까 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2017년에 조금 급하게 재단을 설립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바 조선학교에 작은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Q. ‘위안부’ 역사 교육을 위한 교재까지 직접 만드셨죠.

2015년 10월에 발의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제안으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샌프란시스코 교육시스템 안에서 실천이 되려면 부모님들의 지지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2016년 1월에 학부모님들과 캠페인을 했어요. ‘발의안을 지지한다. 빨리 교실에서 가르쳐달라’는 내용으로 샌프란시스코 통합교육구에 편지를 보낸거죠.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샌프란시스코 통합교육구에서 ‘가르치겠다, 그런데 관련 자료가 너무 없으니 좀 구해달라’고 요청을 해왔죠. 그래서 저 나름대로 모아서 2016년 말에 제출했어요.

그런데 그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점검해서 학습안을 만들고 커리큘럼을 짜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지 2017년 봄학기가 그냥 지나가더라고요. 통합교육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위안부’ 역사를 같이 가르치라고 제안했는데, 보통 샌프란시스코 교육 커리큘럼에서는 그걸 봄학기에 많이 가르치거든요. 발의안이 2015년에 통과되었는데 2016년 봄학기도 넘기고 2017년 봄학기까지 넘기게 되다 보니, 그냥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17년 말부터 자료를 모아서 만들기 시작해서 2018년 3월에 교재를 출간하게 된 거죠.

Q. 교재는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교사용과 학생용이 있어요. 교사용 지침서는 세 부분인데, 첫 부분은 ‘위안부’ 역사의 배경이에요. 한국에서 시작해서 다른 나라로 퍼져간 ‘위안부’ 운동사와 기림비 건립 및 제작 과정을 다룹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사료, ‘위안부’ 관련 1차 문서를 소개하고, 세 번째 부분에 학습안과 활동지를 담았어요. 학습안은 샌프란시스코 현직 교사들이 직접 만들었고, 활동지는 학부모님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학생용 교재에는 교사가 보는 학습안 부분만 빠져있습니다.

Q. 교재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참 좋아요. 작년 4월에 교육구에 교재를 가지고 가니, 담당자가 직접 샌프란시스코 18개 공립 고등학교에 전부 배포했어요. 지금은 고등학교, 대학교 특강과 워크숍 등에 활용되면서 교재가 다른 여러 도시로 퍼지고 있습니다. 두 달 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는데, 그 수업의 교수님이 저희 교재가 아주 잘 만들어졌다며 앞으로도 수업 시간에 활용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고무적인 반응이죠.

Q. 직접 워크숍도 열고 계시죠? 

네, 캘리포니아의 교육제도는 교사들의 자율 영역이 굉장히 커서, 중앙에서 무엇을 가르치라고 해도 교사들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제안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위에서 아래로 전달은 됐으니, 이제 재단이 밑에서 위로도 일을 해야죠. 그래서 저희가 만든 교재로 직접 워크숍을 합니다. 교재를 그냥 드리는 것보다 워크숍을 하면서 몇 쪽에는 어떤 내용이 있고 몇 쪽에는 무슨 문서가 있다고 얘기하면, 교사분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잖아요. 직접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데, 워크숍에는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의 교사들도 많이 오세요. 

사회정의교육재단에서 제작한 위안부 역사 교육용 교재

 

난관과 도움, 잊을 수 없던 순간들

Q.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설립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재단의 활동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움직임은 없나요?

저를, 저희 재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엽서는 받아요.(웃음) 확실히 미국에 있는 일부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손 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어떤 단체가 프린스턴 대학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Princeton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라는 이름을 내걸고 ‘위안부’ 자료를 자기네 입맛에 맞추어 써서 캘리포니아 전역에 배포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미국에서 저희가 할 일이 더 많아졌구나,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참 역설적인 게 뭐냐면요, 일본 수정주의자들이 이러면 이럴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위안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더 커져요. 물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들이 오히려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오사카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시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는 것을 적극 반대하더니 작년에 결국 1957년에 맺은 샌프란시스코-오사카 자매 도시 결연을 파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죠. 

또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고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음으로 양으로 다들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반대를 해도 결국은 도움이 되고, 도와주시는 것도 도움이 되는 거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Q. 워크숍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재미난 에피소드는 아니고, 좀 마음에 남는 일이 있었어요. 작년 가을이었죠. 한 일본인 교사가 워크숍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하시는 말씀이, 본인이 일본 사람이라 약간 걱정을 하셨대요. 일본의 전범 책임이라든가 일본인 혐오라든가 한일 양국의 대립 같은 것이 언급될까 걱정했는데, 막상 와서 들어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육을 통해서 인권을 보장하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우리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는 자리여서 너무 좋았다고요. ‘위안부’ 문제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는 본인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Q.  그 때 정말 보람이 크셨겠네요.

이 일을 하면서 감사와 보람을 느낄 때가 참 많아요. 지난 6월 19일에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정의기억연대에서 주최한 교사워크숍과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콩고, 우간다 그리고 코소보 성폭력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오셨어요. 저희 발제가 끝난 다음에 그분들이 오셔서 교재를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귀국해서 지침서처럼 쓰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교재를 쓰신 교사 중에 크리스티나 탱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탱 선생님은 고등학생 때 우연히 ‘위안부’ 역사에 대해 알게 돼서, 만약 나중에 교사가 된다면 이 문제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자신과 약속하셨대요. 그런데 진짜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되셔서, 그 약속을 지키고 계셨어요. 제가 만나기 몇 년 전부터.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정말 감동을 많이 받고 큰 힘을 얻습니다.

 

가부장제, 전시 성폭력, 미투 운동 - ‘위안부’ 문제는 현재의 현실이다

Q. 미국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가 낯설 듯도 한데, 수업 후의 반응은 어떤가요?

고등학교 수업에 가서 직접 강의를 해보면, 아이들이 굉장히 세심하게 잘 들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의 당시 연령이 학생들과 비슷해서 더 잘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 같아요. 수업에서 현재 벌어지는 여러 전시 성폭력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정치에 국한된 문제로 학생들이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는 연결되는 주제가 많은 것 같아요. 가부장제라든가, 식민지라든가, 제국주의라든가, 여성혐오라든가.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문제가 너무나 많은 나라에서 아직 진행 중이다 보니, 우간다나 콩고에서는 전시 성폭력 문제에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나라에서도 현재의 문제에 ‘위안부’ 문제를 접목시켜서 교육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가르치라고 제안하죠.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에서는 여성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가르치도록 제안하고요. 실제로 둘 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막상 저희에게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요새는 미투 운동 그리고 성폭력, 그 다음에 샌프란시스코의 ‘위안부’ 운동 역사, 이런 것이 제일 많아요. 그러면 저희도 그분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이슈부터 시작해서, ‘위안부’ 문제 관련 사료처럼 기본적인 부분까지 함께 알려드리고 있죠.

Q. 미국 내에서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과 같은 맥락에서 할머니들의 피해생존자로서의 증언, 고발과 그 이후 인권운동가로서의 면모에 관심을 두고 있군요.

맞아요. 저는 미투 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1990년대에는 미투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지만, 피해자 할머님들을 미투 운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해요. 너무나도 불행하게 1990년대에도 고발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고발을 해야 하고 운동을 하고 있으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분발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죠.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은 성폭력, 다른 나라 다른 상황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하고요. 미국은 다인종이 모인 나라이다 보니, 다른 나라 피해자들도 얘기하는 게 너무나 당연해요. 자칫하면 한국 피해자한테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들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걸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교사 페이 콴의 나비 그림 ©사회정의교육재단 홈페이지

 

피해자가 스스로 바로잡아가는 역사, 그 어마어마한 움직임과 함께

Q.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힘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원동력이요?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의미 있는 일을 같이 하면서 느끼는 보람, 감동이라고 할까요. 2017년 말에 갑자기 교재를 쓰게 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열정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 발의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킨 에릭 마 시의원, 기림비 작가 스티븐 화이트, 엘렌 위슨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고를 해주셨고, 교재 디자인해주신 분들은 제가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개선점을 찾아 작업해주시기까지 했어요.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저희가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사례금을 아주 작게 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 두 분이 함께 학습안을 쓰셨어요. 나중에 이분들께 작은 사례를 하는데 정말 안 받으시려는 걸 우겨서 드렸어요. 많은 분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교육을 위해서 열성적으로 동참해 주셨어요. 저희 홈페이지에도 교재 안에 있는 나비 그림이 있는데요. 학습안을 쓰신 페이 콴이라는 교사분이 직접 그려주신 거예요. 정말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집단의 노력이에요. 저는 협업의 중요성을 진짜 믿습니다.

Q.  앞으로 교육 이외의 활동도 더 확대하실 계획인가요?

저는 교육이면 돼요. 다른 것은 많이 부족하고요. 교육은 해왔던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교사들과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인데, 미국 교사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지식이 좀 협소한 것 같아요. 교사뿐만이 아니겠죠, 일본에 의해 강점당한 것, 한국전쟁이 있었던 것. 요 두 가지로만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가 굉장히 멋진 나라인데 말이죠.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 역사, 문화, 사회,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그런 것도 교사들한테 같이 알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남겨주시겠어요.

우선, 저희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중언어교사였고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모든 언어가 동등하게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듯이 모든 사람들의 역사는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기억되어서, 가진 자들만의 역사가 아닌 모든 이들의 역사가 교육될 수 있게,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롭고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저희 재단은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위안부’ 운동 역사는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잖아요. 그게 운동사의 맥락에서 보면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죠.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제 이슈에서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주도해서 가해자 중심으로 서술되는 역사를 바로잡았다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사는 교포로서 이 움직임이 한국에서 시작되고 한국에서 이끌고 있다는 걸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고, 참 뿌듯합니다.

사회정의교육재단(Education for Social Justice Foundation, ESJF)은, 미국 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등한시되고 있는 소수의 역사를, 교육을 통해 학생∙교사∙교수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탄생한 비영리 교육단체이다.

손성숙 대표는 15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로, 언어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후 샌프란시스코 교육구에서 한글 이중언어 교육프로그램을 최초로 실시했다. 범아시아계 ‘위안부정의연대’(CWJC·2015년 10월 결성) 교육위 공동의장으로 ‘위안부’ 교육 교재 만들기를 주도했고, 아시아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수의 역사’, ‘잊혀진 역사’를 다시 써 나가고자 사회정의교육재단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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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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