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의 프로그램 개찬(改竄)사건에 관하여 (상)

나가이 사토루(長井 暁)2000년 여성법정 당시 NHK 'ETV2001' 데스크

  • 게시일2020.12.03
  • 최종수정일2024.04.09

 

 

ETV2001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2001년 1월에 방송된 NHK 방송 ETV2001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는 21세기를 맞이해 20세기에 일어난 전쟁과 무력 분쟁을 '인도(人道)에 반한 죄'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고 전쟁이 없는 미래를 구축하는 방법을 고찰하는 내용의 4회 시리즈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 시리즈의 데스크를 담당했다.

당시 NHK의 자회사인 NHK 엔터프라이즈(이하 NEP)에서 아시아 각국의 활동가와 시민단체들이 주최하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2000년 여성법정)을 취재하여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2개의 제안이 나왔다. 한편 NHK 유럽 총 지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Vichy) 정부 하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와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포로 학살 실태,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아파르트헤이트 범죄를 취재하자는 2개의 방송 제안을 보내왔다.  NEP와 NHK 유럽 총 지국으로부터 받은 제안을 결합해 4편짜리 시리즈를 만들 수 있겠다는 나가타 총괄 프로듀서(이하 CP)의 아이디어로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가 기획되었다. 

그 중 개찬(改竄, 내용을 달리하기 위해 일부러 고침)이 이루어진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2회 〈다시 묻는 전시 성폭력〉이다. 이 편은 정치인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NHK 임원들에 의해 무참하게 내용이 조작되고 말았다. 이에 우리의 취재에 협력했던 2000년 여성법정 주최 단체 중 하나인 바우넷 재팬(VAWW-NET JAPAN,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일본 여성 네트워크)이 NHK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재판으로 이어졌다.

1회차와 4회차 방송은 NHK 유럽 총 지국이 취재하고 NHK 본사의 스태프가 제작하였으며 2회차와 3회차는 NEP를 통해 방송 제작 회사 '다큐멘터리 재팬(이하 DJ)'에 제작을 재위탁했다. 따라서 실제로 개찬된 제2회를 취재 및 촬영하고 편집한 것은 DJ였다.
 

제2회 <다시 묻는 전시 성폭력>


NHK 본사가 작업을 맡게 되다

2000년 12월에 도쿄 구단(九段)회관에서 열린 여성법정에서는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을 했다. 이는 법정이라는 형태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을 명백히 밝히는 것으로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방송은 이러한 현장을 DJ가 취재 및 촬영하고, 편집한 VTR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면서 게스트들이 여성법정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으로 기획되었다.

여성법정이 열리자 NHK와 일본의 민영 방송들이 뉴스로 법정 소식을 보도하였고, 해외의 미디어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때 일본의 우익 단체가 NHK 뉴스에 "NHK가 왜 저런 편향된 시도를 뉴스로 내보내느냐"면서 항의했다. 그 때문인지 NHK의 요시오카 교양 프로그램 부장은 이 방송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일반적으로 NEP를 통해 재위탁하여 제작한 방송을 NHK 본사의 부장이 도중에 검토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방송에서는 요시오카 부장이 2001년 1월 19일 DJ에 직접 가서 시사회를 열었다. 요시오카 부장은 "방송과 법정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며 편집 수정을 요구했다. 요시오카 부장은 방송 후 우익 단체로부터 비판받을 것을 우려해 'NHK는 여성법정과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방송했다'고 반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후 '여성법정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스튜디오 촬영을 일부 추가하거나 역사적인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자료 영상을 사용하여 러셀 법정을 소개하는 VTR을 제작하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요시오카 부장은 24일의 2회차 시사회에서도 "법정과의 거리감이 지난 번과 다를 바 없이 너무 가깝다"며 OK 사인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NHK 본사가 DJ로부터 촬영물을 받아, 직접 편집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난리가 난 정치인들

NHK의 예산안이 가타야마 총무 대신에게 제출된 2001년 1월 25일, '일본의 미래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이라는 자민당 의원 연맹의 나카가와 쇼이치 회장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NHK 국회 담당 직원들이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예산안 설명회를 시작하자 일부러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우익 단체 관계자가 의원 연맹 소속의 국회의원을 찾아가 "NHK가 이런 프로그램을 방송하려고 하고 있다"며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방송을 언급했다. 그 결과, 의원 연맹인들 사이에서 "NHK가 편향된 프로그램을 방송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난리가 났다. 당시 NHK에서 국회를 담당했던 노지마 국장이 말하길, 담당 직원이 당시 의원 연맹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후루야 케이지 의원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미래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 소속 의원들이 작년 12월에 열린 '2000년 여성법정'을 화제로 삼고 있다", "NHK가 이 법정을 방송에서 특집으로 구상 중에 있다는 말도 들리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 "예산 설명 때 반드시 화제가 될 것이니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는 이후 재판에 제출한 '진술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말에 따라 노지마 국회 담당 국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회를 담당하는 국장이
방송 시사회에 참여하다

1월 26일에 NHK 방송 총 국장, 방송 제작 국장 등이 모여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특집 방송의 편집 방침을 확인하는 시사회를 진행했다. 국회 담당인 노지마 국장도 여기에 참석하였다. 참고로 국회를 담당하는 종합 기획실과 방송을 담당하는 방송 총국(보도국 및 방송 제작국)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다. 노지마 국장은 보도국의 정치부 기자 출신이긴 하지만, 국회 담당 부서 소속이므로 원래는 방송 현장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노지마 국장은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이가》가) 정치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어 어떠한 프로그램인지 파악하고 싶다"며 시사회에 참여했다.  또한 "방송 도중에 우쓰미 아이코라는 연구자가 법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으니 법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인 연구자의 인터뷰를 삽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방송 편집에 관여했다. 이때 요시오카 부장은 "이러한 방송의 설정이 불공평하고 부당한 것은 아니다. 빨간 색을 쓰니까 검은 색도 쓰자는 식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은 아마추어 같은 설정이라서 싫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노지마 국장은 "이런 미묘한 문제는 반대 측 입장도 나와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협의 끝에 법정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치던 니혼(日本)대학 소속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인터뷰를 추가로 촬영하게 되었다. 이 시사회를 통해 협의한 편집 방침에 방송 총 국장, 방송 제작 국장, 그리고 노지마 담당 국장이 모두 합의했다.


교양 담당 부장이 OK 사인을 하다

하타 이쿠히코 교수와의 인터뷰 촬영, 스튜디오 장면 추가 수록 등의 작업을 하고 있던 1월 27일, 우익 단체인 유신 정당 심뿌(維新政党・新風) 회원들이 항의하기 위해 NHK에 찾아왔다. 그들은 "어째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느냐!"면서 방송 중지를 요구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NHK 방송 센터 정문 현관(동쪽 입구)에서 시청자 센터 담당자가 "객관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설명하면서 대응에 나섰다. 이때 6대의 선전차에 올라탄 우익 단체 회원들이 서쪽 현관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안내데스크에서 나가타 CP에게 전화를 걸어 "나가타는 지금 당장 내려오라"고 요구했다. 나가타 CP가 이를 거부하자 전투복을 입은 30명 정도의 우익단체 관계자가 방송 센터 내부에 난입했다. 하지만 NHK 방송 센터는 요새처럼 거대한 건물이어서 외부 출입자들은 교양 프로그램부로 가는 길을 알 수 없다. 우익 단체 관계자들은 1층 식당 근처까지 들어왔지만,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면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에 NHK 경비원들이 달려와 그들을 진압했다. 그들은 "지금부터 나가타의 집에 갈 것이다"라며 협박조의 막말을 내뱉고는 돌아갔다. 나가타 CP는 자택 근처의 경찰에 전화를 걸어 가족의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1월 27일과 28일 이틀동안 작업을 계속해, 28일 밤에 44분 분량의 프로그램 편집본이 완성되었고 요시오카 부장의 OK 사인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베타캠이라는 카메라로 촬영해온 테이프를 직접 편집기로 편집한 후 그대로 방송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국이 제작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은 우선 타임 코드가 들어간 베타 테이프로 가편집하고, 그 데이터를 읽은 후 ECS(에디트 컨트롤 시스템)으로 영상 기술 스태프가 방송용 D3 테이프를 만든다. 이러한 작업이 29일 아침부터 하루 동안 이루어졌다. ECS가 끝나면 기본적으로 편집 내용은 수정이 불가능하며, 테이프를 이용해서 더빙 작업(내레이션, 더빙, 음악, 효과음 등을 삽입하는 작업)이나 영상 자막을 삽입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이때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ECS 작업을 1월 29일에 하고 방송 당일인 1월 30일에 더빙과 자막 삽입 작업을 동시 병행하는 매우 타이트한 스케줄로 작업이 진행됐다.


아베 관방부장관과의 면회

1월 29일 저녁, 후반 편집 작업을 하던 중 이토 프로그램 제작 국장에게 호출되어 국장실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국장실에 들어가자 이토 국장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마쓰오 방송 총 국장과 노지마 국회 담당 국장이 외근에서 돌아오니 그 때 시사회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시사회를 시작했다. 내가 내레이션을 읽고 나가타 CP가 자막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던 중 마쓰오 국장과 노지마 국장이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보자."며 시사회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 시사회는 요시오카 부장의 OK 사인을 받은 44분 분량의 완성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시사회가 단순히 프로그램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초췌한 얼굴로 방에 들어오는 마쓰오 국장의 모습을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시사회가 끝나자 노지마 국장이 돌연 "절대 안 돼! 말도 안 되는 내용이야!"라고 소리쳤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 노지마 국장과 마쓰오 국장은 시사회 직전에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副)장관과 면담을 했다. 아베 관방부장관은 관방장관에 취임할 때까지 '일본의 미래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NHK가 공표한 자료에는 이때 마쓰오 국장이 아베 관방부장관에게 '일부에서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본 프로그램이 2000년 여성법정에 대해 매일 밤 4연속 시리즈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이에 대해 아베 관방부장관은 '위안부' 문제의 어려움이나 역사 인식 문제와 외교 간의 관련성 등에 대한 지론을 말한 다음 이러한 문제를 공영방송인 NHK에서 다룬다면 공평하고 공정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마쓰오 국장은 아베 관방부장관의 지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의견을 말하지 않은 채 다각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으니 실제 프로그램을 봐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베 관방부장관은 이때의 면담에 대해 추후 본인의 홈페이지에 "이 모의재판의 방청을 희망하는 자는 '법정의 취지에 찬성한다'라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분별력 있는 관계자들로부터 NHK가 주최자 측의 의도대로 (2000년 여성법정을) 보도하려고 한다는 정보가 들어와 사실관계를 듣게 되었다. 그 결과, (2000년 여성법정에는) 재판관 역할과 검사 역할은 있어도 변호사 역할은 마련되지 않는 등 명백히 편향된 내용임을 알게 되어 나는 NHK가 특히 지켜야 하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도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2001년 1월 29일 시사회 때 요시오카 부장의 대본에 써있던 후루야 아베 아라이라는 메모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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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가이 사토루(長井 暁)

1981년 도쿄가쿠케이대학(東京学芸大学) 교육학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했다. 재학 중 베이징 대학에서 2년간 유학했다. 1987년에 NHK에 입사. 디렉터로서 "NHK 스페셜 「한국 전쟁 - 냉전의 비극 38 선(朝鮮戦争〜冷戦の悲劇38度線)", "장쉐량이 지금 말한다 - 중일 전쟁으로의 길(張学良がいま語る〜日中戦争への道)", "어전 회의 - 태평양 전쟁 개전은 이렇게 결정되었다(御前会議〜太平洋戦争開戦はこうして決められた)", "주은래의 선택 - 중일국교 정상화는 이렇게 실현했다(周恩来の選択〜日中国交正常化はこうして実現した) ", "마오 쩌둥과 그 시대 - 전편 후편(毛沢東とその時代〜前編・後編)"등 주로 동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데스크로서 NHK 스페셜의 대형 시리즈 "가도를 간다 (街道をゆく)", "4대문명(四大文明)", "일본인 머나먼 여행(日本人はるかな旅)", "문명의 길(文明の道)" 등의 제작에 관여했다.

2001년 당시는 ETV2001의 데스크로서,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제작 현장 작업을 관장. NHK프로그램 개찬 사건과 관련하여 2005년 내부 고발을 했을 당시는 방송 총국과 방송 80 주년 사무국 책임 프로듀서였지만, 내부 고발 후 NHK 방송 문화 연구소에 옮겨 주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9년 NHK에서 퇴직하고,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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